대검찰청. 김혜윤 기자 unique@hani.co.kr
[전국 프리즘] 이정하 | 전국부 기자
지난달 22일부터 경기도청 4층 공용회의실 2호실에 검찰 수사관들이 상주하는 사무실이 마련됐다. 쌍방울그룹의 대북송금 의혹 사건을 수사 중인 수원지검 형사6부(부장 김영남)가 경기도와의 연관성을 찾고자 도청 사무실 압수수색에 나선 뒤의 일이다.
앞서 국외로 도피했다가 타이 현지에서 붙잡혀 지난 1월17일 압송된 김성태 전 쌍방울 회장은 검찰에서 “경기도의 북한 스마트팜 지원 사업비를 대납했다”고 진술했다. 2019년 북한에 800만달러를 송금한 혐의 등으로 구속기소된 그는 이 가운데 500만달러를 당시 이화영 경기도 평화부지사 요청으로 대납했다고 진술한 것으로 전해졌다. 평화부지사 취임 전 1년가량 쌍방울그룹에서 사외이사로 근무했던 이 전 부지사는 경기도의 대북사업을 총괄해왔다.
통상 압수수색 영장의 유효기간은 7일이지만, 이번 영장 유효기간은 지난달 22일부터 오는 15일까지 무려 22일이다. 기간이 3주 넘는 압수수색 영장도 드문 일이지만, 압수수색을 위해 검찰 상주 사무실까지 차려진 경우는 전례를 찾기 어렵다. 압수수색 대상과 범위도 상당히 폭넓다. 이 전 부지사가 근무했던 경제부지사실(전 평화부지사실)과 산하 부서, 대북사업 유관 부서, 경기도의회 사무처 등 22곳(부서)에 이른다. 상주하는 검찰 수사관이 압수수색 대상 사무실의 직원 컴퓨터 기억장치(하드디스크)를 복사한 뒤 ‘대북사업’ 등 사건 주요 검색어를 입력해 추출하는 방식으로 사건 관련 자료를 확보하는 것으로 전해진다.
유효기간이 7일을 넘긴 압수수색 영장 발부가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법관이 필요하다고 인정하는 경우엔 그 기간을 늘려 잡을 수도 있다. 대표적으로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당시 한달짜리 압수수색 영장이 발부됐는데, 수사기관의 일방적인 영장 집행이 불가능하고 사전 조율에 시일이 꽤 소요되는 청와대가 그 대상이었다. 영장 집행을 거부할 수 없는 경기도청과는 경우가 다르다.
이번 압수수색은 사실상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를 겨냥한 것이다. 압수수색 대상에는 지난해 7월 취임한 김동연 경기지사의 사무실과 새로 바꾼 컴퓨터는 물론, 지난 9일 극단적 선택을 한, 당시 이재명 지사의 초대 비서실장 전아무개씨가 근무했던 도지사 비서실도 포함돼 있다. 이 전 부지사를 연결고리로 이 대표와 쌍방울 사이 접점을 찾으려는 시도인 셈이다. 민선 8기 출범 뒤에도 이 대표와 관련한 압수수색이 13차례 이뤄졌고, 압수수색한 문건만 6만5185건에 이른다고 한다. ‘나올 때까지 파는’ 먼지 털기식 영장 집행이라는 말이 무색할 지경이다. 검찰 수사의 타깃도 아닌 김동연 지사가 “민주주의 국가가 아니라 검주주의 국가”라고 한탄할 정도다.
검찰이 법원에 청구한 압수수색 영장 발부율은 지난해 98.4%(청구 36만1630건, 발부 35만5811건)였다. 법원이 도장만 ‘쾅’ 찍어주는 ‘영장 자판기’가 아닌지, 강제수사 절차에서 국민의 기본권을 지키는 최후의 보루인 법원의 적정한 사법통제가 이뤄지고 있는지 의문이 제기되는 이유다.
대법원 행정처는 이런 문제를 해결하겠다며 1997년 도입한 구속 전 피의자심문(영장실질심사) 절차처럼 ‘압수수색 영장 발부 전 심문’ 도입을 추진 중이다. 현재는 판사가 수사기록만 검토해 압수수색 영장 발부 여부를 결정하는데, 앞으로는 판사가 의문스러운 사항이 있다고 판단하면 수사기관 관계자나 제보자 등을 불러 물어보겠다는 취지다. 강제수사 절차의 일부를 사법부가 보다 객관적으로 들춰보고, 거르는 절차를 만들겠다는 것이다. 이에 검찰은 반발하지만, 심리 대상이 제한적이어서 검찰이 우려하는 수사기밀 유출이 일반화할 가능성은 작다. 반면에 수사기관의 편의주의적, 먼지 털기식 강제수사를 억제하고 통제하는 장치 마련은 절실하다. 헌법이 정한 영장주의의 본질이 후퇴하지 않도록 사법부가 ‘영장 자판기’라는 꼬리표를 뗄 수 있을지 지켜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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