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양한 모양의 엘이디(LED) 조명제품. 연합뉴스
[삶의 창] 이명석 | 문화비평가
나는 세상의 모든 게 궁금한 사람이다. 하수구 뚜껑이 이상한 모양이면 옛 문헌에서 유래를 뒤지고, 카페의 음악에서 특이한 소리가 들리면 영상을 찾아 악기를 확인해야 한다. 하지만 절대 궁금하지 않은 게 있다. 내 몸속과 집 안의 전기, 하수, 수도 설비. 왜냐하면 그게 궁금할 때는, 곧바로 해결하지 않으면 아주 곤란한 상황에 처한 거니까.
이사온 지 6년째, 천장 등이 깜빡깜빡 빈사 내지 절명의 상태로 들어서고 있다. 이미 충분하게 수명을 다했으니 갈아주는 게 당연하다만, 유리덮개를 열자 난감해졌다. 당연히 형광등만 갈면 될 줄 알았는데, 전자제품 내부 같은 무시무시한 부속들이 나왔다. 알아보니 엘이디(LED) 등이라 기판과 안정기 전체를 교체해야 한단다.
‘10분이면 누구나 하는 엘이디 전등 교체’ 블로그나 유튜브에 좋은 정보들이 많이 올라와 있었다. 하지만 첫 단계부터 난관에 부딪혔다. 엘이디 기판은 표준사이즈가 없어 아무 제품이나 꽂아넣을 수 없었다. 껌껌한 전등 구석에서 외계인 암호 같은 기종번호를 스마트폰으로 찍은 뒤 검색하자 희망과 절망이 교차했다. 희망편. 나와 똑같은 기종을 찾는 사람이 있었다. 절망편. 단종됐다. 기판 크기를 잰 뒤 동네 전파사에 가서 상담했다. 거기 또다른 절망이 기다리고 있었다. 내 방 등이 매입형이라 딱 맞는 크기의 기판이어야 하고, 못 구하면 전등 자체를 갈아야 하는데 그러면 천장이 흉해진단다.
갑갑한 심정에 에스엔에스(SNS)에 해결책을 문의했다. 해결사 대신 피해자만 여럿 나왔다. “나는 그래서 거실에 스탠드만 세개 켜놓고 살아.” 친구는 설비업자 추천으로 집안 등을 전부 바꾸었는데 그때 기사가 말했단다. 이 등을 바꾸려면 자기가 다시 와야 한다고. 엘이디 전등이 전기를 아낀다는 건 알고 있다. 그런데 이렇게 교체가 어렵고 인건비까지 들면 과연 경제적이라 할 수 있나?
의문은 일단 접어뒀다. 동병상련으로 에너지를 충전하며 다짐했다. 내가 먼저 해결하고 도와주자. 현자의 추천으로 자석형 기판을 샀고 애매하게 안 맞는 모양은 판매업자와 연락해 조정했다. 조립은 외로웠고 뜻밖의 변수가 많았다. 결국 전구 틀까지 분해해 나사 구멍을 뚫고, 부끄러운 임시방편으로 안정기를 걸친 뒤 두근대며 스위치를 올렸다. 앗, 눈부셔!
프로메테우스의 선물을 받은 최초의 인류처럼 감격했지만, 나는 친구에게 차가운 진실의 문자를 보냈다. “당신 혼자서는 못해.” 전기를 다뤄본 적 없다면 무섭고, 전동 드라이버 같은 공구가 없으면 힘들고, 자기 키보다 높은 설비를 다루다 보면 예상 못할 위험을 만날 것이다. 나는 전구 바꾸기에 최적화된 길쭉한 체형인데도, 머리 위로 무거운 전등 틀을 끼워 넣고 전선을 연결한 뒤 나사를 돌리다 바닥에 떨어뜨려 발가락으로 주우려다 허리를 삐끗했다.
‘모든 게 궁금한 사람’으로 돌아와 찾아보니, 정부는 2028년부터 형광등을 사실상 퇴출할 계획이라고 한다. 엘이디가 에너지 소비를 획기적으로 줄인다니 당연히 찬성할 일이다. 그런데 백열등, 형광등처럼 간단히 갈아 끼울 수 있는 표준화는 안 되는 걸까? 1인 가구와 고령 인구가 급증하고 있다. 허리 굽고 눈 침침한 노인들은 형광등 하나 갈기도 쉽지 않다. 주간 69시간 노동을 마치고 돌아온 직장인이 어두운 방에서 전동 드라이버를 들어야 한다는 사실도 안타깝다.
현금 없는 버스, 무인주문기 식당, 모바일로만 예약 가능한 표…. 어떤 효율을 위해 새로운 시스템이 들어서면 그 과정에서 누군가 돈을 벌겠지. 하지만 급격히 차선을 바꾸는 과정에서 멀미를 일으키는 사람들에 대한 배려는 어디 있나? 어두운 방에 불을 밝히는 삶의 기초에서도 기대할 수 없다면, 다른 분야는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