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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때로 실망했어도…20만 관중의 팬심은 진심 [김양희의 스포츠 읽기]

등록 2023-04-04 15:49수정 2023-04-05 02:33

지난 2일 두산 베어스와 롯데 자이언츠의 경기를 보기 위해 잠실야구장에 모인 팬들. 연합뉴스
지난 2일 두산 베어스와 롯데 자이언츠의 경기를 보기 위해 잠실야구장에 모인 팬들. 연합뉴스

#의사가 되기를 원하는 재수생 지인이 있었다. 그는 도쿄올림픽 경기를 보다가 여자배구 IBK기업은행 알토스의 김희진에게 빠져들었다. 그의 부탁으로 김 선수의 응원 사인을 받았다. 내용은 “공부 열심히 해서 꼭! 의사 되시길 바랍니다”였다. 지인은 힘든 재수 생활 끝에 의대에 합격했다. 그리고, 김희진의 응원 문구가 담긴 A4 용지를 개인 SNS에 올렸다. “덕분에 합격했습니다!”

김희진에게 이와 같은 사실을 전하니 그가 더 기뻐했다. 그러면서 말했다. “오히려 저에게 큰 힘이 될 것 같습니다! 앞으로 멋진 의사가 되길 바라겠습니다!”

#막 세상에 태어난 아이의 이름을 고민하던 프로야구 기아(KIA) 타이거즈 팬이 있었다. 2007년 당시 윤석민(KIA)은 불운이 이어지면서 낮은 평균자책점(3.78)에도 시즌 최다패인 18패(7승)를 당했다. 그래도 타이거즈 팬은 아이에게 ‘석민’이라는 이름을 지어줬다. “(아들이) 커가면서 몇 번쯤은 감당하기 힘든 불운과 어려움에 맞닥뜨릴 것을 알지만, 그런 어려움을 이겨내가는 모습을 눈앞에서 보여줄 멘토가 돼줄 사람이 필요하고, 그런 사람이 윤석민 선수라고 믿는다.”

윤석민은 2011년 시즌 4관왕(다승, 평균자책점, 탈삼진, 승률)에 오르며 정규리그 최우수선수(MVP)로도 우뚝 섰다. 타이거즈 투수가 최우수선수가 된 것은 1990년 선동열 이후 처음이었다.

스포츠 팬들은 일련의 과정을 거치며 구단, 선수와 내적 친밀함을 만들어간다. 누군가는 태어나면서부터 타이거즈 팬이 되고, 또 누군가는 우연찮게 경기를 보고 알토스 선수에게 빠져든다. 물리적 거리감은 상당하지만 심리적 거리는 꽤 가까워서 팀, 선수 행동 하나하나에 반응하게 된다. 가끔은 조금 과한 팬심도 있지만 그 밑바닥에는 ‘우리 팀’, ‘우리 선수’라는 자부심이 있다. 부침이 심한 팀, 선수일수록 더욱 끈끈해진다. 선수의 성장통은 팬의 성장통이 된다.

세계야구클래식(WBC) 1라운드 탈락, 서준원(롯데 자이언츠 방출)의 미성년자 불법 촬영 혐의, 장정석 기아 단장(해임)의 선수 뒷돈 요구, 그리고 KBO 간부의 횡령 혐의로 인한 사무실 압수수색 등 악재가 끊이지 않았는데도 지난 주말 야구장을 꽉 채운 팬들만 봐도 그렇다. 주말 2연전 동안 야구장을 찾은 19만6945명의 관중이 일련의 불미스런 사건들을 용서했다고는 볼 수는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떼려야 뗄 수 없는 정이 켜켜이 쌓여 있어 차마 ‘우리 팀’, ‘우리 선수’에게서 등을 돌리지 못한다.

스포츠 팬덤을 연구한 미국 머레이주립대 대니얼 완 교수는 지난 2020년 7월 〈씨엔비씨〉(CNBC)와 한 인터뷰에서 “스포츠팬은 스포츠에 전혀 관심이 없는 사람과 비교해 자존감이 높고 덜 외로워하며 삶에 더 만족하는 경향이 있다”고 말했다. 또 다른 연구에서는 “다른 사람과 친밀감을 느끼는가”라는 질문에 스포츠팬 61%가 “그렇다”고 답했다. 비 스포츠팬의 경우는 37%에 그쳤다. 그깟 스포츠라고? 절대 아니다.

스포츠의 순기능을 생각하면 선수, 구단, 그리고 리그가 가장 무서워해야 하는 대상은 결국 팬이다. 최근 야구나 축구(승부조작 선수 등 100명 기습 사면, 선수 음주운전)의 행태를 보면 이를 간과하는 듯하다. 누군가에게는 미래의 희망을 주고, 누군가에게는 일어설 용기를 주는 게 스포츠라는 사실을 잊지 말자.

김양희 기자 whizzer4@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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