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해 | 한겨레말글연구소 연구위원·경희대 교수
‘아’ 다르고 ‘어’ 다르다. 하지만 누가 말하느냐에 따라 같은 ‘아’도 다르게 들린다. 언론은 누구의 목소리를 들려주는가? 주류 언론은 자본의 목소리를 대변한다. 한국 사회의 근본 병폐에 눈감고 이 체제가 최선이라고 되뇐다.
그런 점에서 노동자의 목소리를 들려주는 <한겨레>의 노력이 돋보인다. 노동자의 글쓰기. 지난해 5월부터 시작한 기획 연재
‘6411의 목소리’는 이제 50회에 이르렀다. 비정규직, 청소노동자, 상담노동자, 플랫폼 노동자, 돌봄노동자, 배달라이더, 이주민, 대리기사 등 ‘존재하지만 그 이름으로 불리지 못하는’ 투명인간들이 자신의 노동과 삶의 이야기를 직접 쓴다. 임금노동자 2172만명 중 비정규직이 815만명. 출근길에 나선 세 사람 중에 하나는 계약직, 촉탁직, 사내하청, 외주용역, 기간제, 파트타이머, 프리랜서라는 이름으로 일한다. 이들의 목소리가 들린다.
주간지 <한겨레21>은 재작년부터
‘내 곁에 산재’라는 기획 기사를 3주마다 싣고 있다. 산업재해 피해자나 유족을 만나 그들의 육성을 받아 적고 있다. ‘떨어지다, 끼이다, 부딪히다, 깔리다, 잘리다’. 재해 유형을 나타내는 저 말들은 뱃가죽을 찌르도록 감각적이다(가장 많은 산재가 ‘떨어짐(37%)’이라지). 한국 사회는 참 많이 죽고 많이 다친다(지난해 산재 사망자 2223명. 재해자 13만348명).
잡지에 소개된 산재 피해자 15명의 목소리를 버무려 만든 연극이 무대에 오른다. 게으른 나도 27일부터 시작되는 연극 <산재일기>를 보려고 한다. 노동자의 목소리는 더 크고 직선적으로 들려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