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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오철우의 과학풍경] 지질에 새겨진 오염, 암석플라스틱

등록 2023-04-18 18:17수정 2023-04-19 02:37

플라스틱과 모래, 조개껍데기, 나뭇조각이 섞이고 뭉쳐 만들어진 플라스틱 돌덩이. 2014년 캐나다 지질학자들이 미국 하와이 해안에서 수집한 이런 암석들에 새로운 유형의 지질학적 물질이라는 의미에서 ‘플라스티글로머레이트’라는 이름을 붙였다. <지에스에이(GSA) 투데이> 제공
플라스틱과 모래, 조개껍데기, 나뭇조각이 섞이고 뭉쳐 만들어진 플라스틱 돌덩이. 2014년 캐나다 지질학자들이 미국 하와이 해안에서 수집한 이런 암석들에 새로운 유형의 지질학적 물질이라는 의미에서 ‘플라스티글로머레이트’라는 이름을 붙였다. <지에스에이(GSA) 투데이> 제공

오철우 | 한밭대 강사(과학기술학)

2차 세계대전 시기 자연 자원을 대체하는 인공합성물 플라스틱이 나일론을 시작으로 대량생산되기 시작한 지 80여년이 흘렀다. 쉽게 만들고 쉽게 버리는 플라스틱의 생산과 소비는 그동안 엄청난 속도로 증가했다. 유엔 자료를 보면, 1950년 200만톤이던 플라스틱 폐기물은 2017년 3억4800만톤으로 늘었고 2040년 다시 두배가 될 것으로 예상된다. 몇 세대를 거친 플라스틱은 이제 지구 역사에 등장한 적 없는 새로운 유형의 지질 기록으로 지질학계에 관심사가 되고 있다.

플라스틱 암석은 다양한 이름으로 불리기 시작했다. 2014년 캐나다 지질학자들은 미국 하와이에서 모래, 조개껍데기, 플라스틱이 섞이고 뭉친 암석 덩어리를 수거해 새로운 유형의 지질학적 물질이라는 의미로 ‘플라스티글로머레이트’(plastiglomerate)라는 이름을 붙였다. 이후 플라스틱 돌덩이의 대표 이름이 됐다. 당시 연구진은 이런 플라스틱 암석이 인간 활동으로 지구 지질이 변화하는 인류세 시대를 상징하는 지표석이 될 수 있다고 제안했다.

2019년엔 바닷가 바위에 껍질처럼 눌어붙은 ‘플라스티크러스트’(plasticrust)가 북대서양 마데이라 화산섬에서 발견돼 학계에 보고됐다. 플라스틱과 햇빛, 파도, 바람이 이런 지질층을 만들어냈다. 2020년엔 브라질에서 플라스틱뿐 아니라 다른 쓰레기들이 섞인 새로운 퇴적암이 발견돼 ‘안트로포퀴나스’(anthropoquinas)로 명명됐다. 지난해 3월엔 ‘플라스티타르’(plastitar)라는 이름이 등장했다. 북아프리카 카나리아제도에서 발견된, 기름 유출 사고로 바다에 떠다니던 타르에 미세플라스틱이 들러붙어 굳은 돌덩이에 이런 이름이 붙었다.

플라스틱은 분자구조에서 자연과 진정한 복합체를 이루기도 한다. 플라스틱이 그저 물리적으로 달라붙거나 섞인 게 아니라 자연석과 화학적 결합을 이룬다는 분석이 최근 나왔다. 지난달 중국 연구진은 국제저널 <환경 과학과 기술>에 플라스틱과 암석 간 화학적 결합을 처음 확인했다고 보고했다. 플라스틱의 탄소는 햇빛 또는 미생물 대사의 영향으로 암석의 규소와 화학적 결합을 이룰 수 있었다. 플라스틱 암석에서는 잘게 쪼개진 미세플라스틱이 쉽게 만들어져 바다로 흘러든다.

요즘에는 바닷가 모래사장에서 조약돌 같은 알록달록한 플라스틱 조각을 어렵지 않게 주울 수 있다. 기억하기도 어려운 이름으로 지질·환경학자들의 관심사가 된 암석 아닌 암석 플라스틱은 우리에게 무얼 말해줄까? 자연의 자리에 들어선 새로운 자연-인공 복합체는 플라스틱 오염이 지구 역사에 얼마나 깊숙이 새겨지고 있는지, 얼마나 길고 복잡한 영향을 끼치고 있는지를 말해주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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