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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유레카] 의협 파업? ‘전공의’에 쏠린 눈

등록 2023-05-08 16:35수정 2023-05-08 18:45

버스 안에서 한 청년이 호흡곤란을 일으키며 쓰러진다. 얼떨결에 의사로 불려 나간 차정숙(JTBC 드라마 <닥터 차정숙>의 주인공)은 간단한 응급처치도 못 하는 스스로의 모습에 좌절한다. 차정숙이 허둥지둥하는 동안, 대학병원 외과의사 로이 킴은 능숙한 손길로 환자를 구한다. 로이가 ”비의료인이 의료행위를 해선 안 된다”고 지적하자, 차정숙은 억울함을 토로한다. “의사가 맞긴 맞아요.”

그렇다. 차정숙은 의사다. 의과대학(예과 2년·본과 4년) 졸업자들은 의사 국가시험을 통과하면, 보건복지부 장관으로부터 의사 면허를 받는다. 하지만 차정숙은 응급환자도 살리지 못하는 ‘장롱 의사 면허’ 소지자다. 20년 전 인턴만 마치고 레지던트는 거치지 않은 ‘경단녀’다.

우리나라에서 인턴·레지던트 제도가 본격 시행된 것은 1958년이다. 1951년부터 전문의 제도가 도입됐는데, 이후 종합병원 수련 없이 전문의가 될 수 없도록 요건이 강화됐다. 이에 따라 의사면허를 취득한 일반의는 인턴(수련의·1년)→레지던트(전공의·3~4년)→전문의→전임의(펠로)의 수련 단계를 거친다. 인턴은 모든 과를 돌지만, 레지던트가 되면 26개 전문과목 가운데 하나를 골라야 한다. 외과·내과·가정의학과·예방의학과 등은 3년을, 나머지 과들은 4년간 레지던트 수련을 받는다. 이후 자격시험을 거치면, 비로소 전문의가 된다. 대형병원에서 1~2년 더 머무르며 추가적인 공부를 하는 의사들도 있는데, 이들을 펠로라고 부른다.

‘2021 의료급여 통계’(건강보험심사평가원·국민건강보험)를 보면, 우리나라의 전체 의사 수는 10만9937명이다. 이 가운데 인턴이 2981명, 레지던트가 9853명이다. 수련 과정에 있는 의사들이 전체의 12% 정도다. 이들은 전국 240여곳 수련병원 및 기관에서 일하고 있다. 올해 차정숙과 같은 레지던트 1년차 동기는 3465명(모집 인원 기준)이 선발됐다.

첫 출근 날, 동료 전공의가 ‘주 80시간 근무를 해도 괜찮겠냐’고 묻자, 차정숙은 주 100시간 근무와 100일 당직 등 ‘라떼는~’을 시전한다. 실제로 전공의들의 살인적 노동시간은 의료계의 고질적 관행이었다. 전공의는 전문의가 되기 위해 배우는 신분인 동시에, 실제 진료를 하는 의사로서의 역할도 맡는다. 비용을 줄이려는 병원들이 인건비가 싼 전공의들에게 과다한 업무를 부여하는 관행이 굳어져온 것이다. 1998년 대한전공의협의회가 결성되고 2015년 전공의법(주 80시간 수련 초과 금지, 인턴·레지던트 적용)이 제정된 것도 이런 배경에서다.

대한의사협회가 파업을 벌일 때마다, 그 파급력은 전공의 움직임에 달렸다. 응급실·중환자실 등 필수의료의 핵심 인력은 전공의들이다. 대형 병원의 경우, 전공의만 500명 이상 일한다. 이들이 일손을 놓게 되면 의료 공백이 불가피해진다. 첫 단체행동은 1971년에 있었다. 그해 6월 국립의료원 인턴들이 임금 인상 등을 요구하며 집단 사표를 냈다. 이어 대학병원 인턴·레지던트들이 동참하면서 전국적으로 번졌다. 비교적 근래에는 2000년 의약분업, 2014년 원격의료, 2020년 의대 증원 반대 파업의 주력군이었다. 최근 의협은 간호법 제정 반대를 촉구하며, 17일 의료계 총파업을 예고했다. 명분 없는 파업에 국민 건강을 볼모로 삼지 말라는 목소리가 따른다.

황보연 논설위원 whyno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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