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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여성혐오 범죄 맞습니까?

등록 2023-05-14 18:23수정 2023-05-15 02:38

김현숙 여성가족부 장관이 신당역 역무원 피살 사건을 여성혐오 범죄로 보지 않는다고 밝힌 것과 관련 지난해 9월19일 오전 정부서울청사 앞에서 진보당, 녹색당, 전국여성연대, 불꽃페미액션 관계자들이 김 장관 사퇴를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김현숙 여성가족부 장관이 신당역 역무원 피살 사건을 여성혐오 범죄로 보지 않는다고 밝힌 것과 관련 지난해 9월19일 오전 정부서울청사 앞에서 진보당, 녹색당, 전국여성연대, 불꽃페미액션 관계자들이 김 장관 사퇴를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젠더 프리즘] 장수경 | 젠더팀장

지난 11일 새벽, 서울 강남 번화가에서 한 남성이 처음 보는 여성을 폭행했다. 연락처를 알려달라는 가해자 지인의 요구를 피해자가 거절한 뒤에 벌어진 일이었다. 피해자는 얼굴과 코뼈가 부러져 전치 6주 진단을 받았다고 한다.

그에 앞서 3월31일엔 서울 노원구에서 70대 남성이 자신이 스토킹하던 60대 여성을 살해했다. 그는 피해자가 거부 의사를 밝혔는데도 일방적으로 호감을 표시하고 반복적으로 만남을 요구하다 범행을 저지른 것으로 알려졌다.

17일이면 취임 1년을 맞는 김현숙 여성가족부 장관에게 물어보자. 이것은 여성혐오 범죄인가, 아닌가. 김 장관은 여성혐오 범죄가 아니라고 말할 것이다. 이미 전력이 있다. 김 장관은 지난해 9월 발생한 신당역 스토킹 살해사건을 두고 ‘여성혐오 범죄라고 보지 않는다’고 말했다. 또 지난해 7월 인하대 성폭력 사망 사건에도 ‘여성에 대한 폭력이 아니다’라고 했다가 비난을 받자 정정했다.

김 장관 취임 뒤 1년을 돌아보자. 자신이 임명된 이유가 ‘여성가족부 폐지’라고 공식적으로 밝혔던 그는 1년 동안 ‘여성 지우기’에 앞장서 왔다. 먼저 여성폭력방지기본법에 근거해 시행된 첫 ‘2021 여성폭력 실태조사’는 ‘조용히’ 묻힐 뻔했다. 여가부가 예정보다 5개월이나 늦은 지난해 8월 발표하면서 조사 결과를 여가부 누리집에만 올리고 말았기 때문이다. 언론을 상대로 통상적으로 해왔던 보도자료 배포나 브리핑은 없었다. 친밀한 관계 폭력, 교제폭력, 스토킹 피해 등 여성 상대 폭력을 파악하기 위해 진행된 이 조사에는 성인 여성 34.9%가 ‘여성폭력’을 한번 이상 경험했다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여성폭력’ 실태조사의 소극적 공개는 ‘여성폭력’ 지우기로 이어졌다. 여가부는 ‘제3차 양성평등정책 기본계획(2023~2027년)’에서 ‘여성폭력’ 용어를 대폭 삭제했다. 대과제 5개와 중과제 14개, 소과제 43개로 구성된 기본계획에서 ‘여성폭력’이란 용어는 한차례만 등장한다. 나머지는 ‘폭력’으로 대체됐다. 지난 25년 동안 매년 발표해온 ‘통계로 보는 여성의 삶’은 ‘통계로 보는 남녀의 삶’으로 바뀌었다. 의도적인 ‘여성 지우기’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김 장관은 여성가족부가 폐지되기 전까진, ‘여성’을 뗀 ‘가족부’ 수장 역할만 수행하려는 것처럼 보인다. 물론, 여기서 말하는 가족은 혼인·혈연·입양 등으로 맺어진 법적인 가족이다. 여가부는 2021년 4월 다양한 가족 구성을 법적 가족으로 인정하는 내용의 4차 건강가정 기본계획을 발표했는데, 김현숙 장관 취임 이후 이를 번복했다. ‘여성’과 ‘성평등’ 문제에 손을 놓은 김 장관은 올해 3월 열린 한국여성대회 때 ‘성평등 걸림돌’ 상을 받기도 했다. 성평등 주무부처 장관으로서 부끄러워해야 할 일이었다.

김 장관이 취임 1년을 맞는 17일은 강남역 살인사건 7주기다. 이 사건은 ‘여성폭력’이 대중에게 각인되는 계기가 됐지만, 정부는 ‘여성폭력’은 없다고 말하고 있다. 이런 정부에서 여성이라는 이유로 살해당하는, 이른바 페미사이드 통계를 내달라는 요구가 받아들여지지 않는 건 당연한 일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통계 없이는 아무리 ‘폭력’ 대응을 강화한다고 말한들, 강남역 살인사건 피해자 혹은 최근 자신을 스토킹하던 70대 남성에게 살해당한 60대 여성의 경우처럼 ‘여성혐오’ 범죄에 대한 제대로 된 대책을 세우지 못할 것이다. 윤석열 대통령 취임 1년, 서울 용산 대통령실 앞에서 ‘우리는 되돌아가지 않을 것이다’라는 여성들의 외침은 이런 상황을 두고 보지 않겠다는 다짐이다. ‘김현숙 여성가족부’ 장관은 되풀이되는 여성들의 죽음을 막기 위해서라도 ‘여성폭력’의 의미를 다시 한번 살펴야 한다.

아차차! ‘여성가족부’는 올해 4월 공개하기로 한 ‘2022 성폭력 안전실태조사’ 최종 결과도 아직 발표하지 않고 있다. 또 모를 일이다. 여가부 누리집에만 조용히 올리고 말지도.

flying710@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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