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심 5100m의 클라리온-클리퍼턴 지대(CCZ) 해저에서 사는 노란색 해삼. 다람쥐 닮은 꼬리를 지녀 ‘고무 다람쥐’라는 별명으로 불린다. 꼬리 부분을 포함해 길이가 60~80㎝에 달한다. 미국해양대기청(NOAA) 제공
오철우 | 한밭대 강사(과학기술학)
태평양 한복판, 멕시코와 하와이 사이에는 평균 수심 5000m 아래에 600만㎢나 되는 진흙 평원이 끝없이 펼쳐져 있다. 클라리온-클리퍼턴 해역(CCZ)이라는 이름으로 불린다. 한반도 면적이 22만 ㎢인 점을 생각하면, 해저 평원이 얼마나 광활한지 짐작할 수 있다. 해저면엔 광물 자원이 풍부하게 퇴적돼 있어, 근래 들어 광물 채굴 사업자들이 눈독을 들이고 있다. 온통 진흙으로 덮인 심해 평원은 황량해 보이지만, 이곳도 다양한 심해 생물들에겐 삶의 현장이다. 최근 이곳에서 지금까지 알려지지 않은 5000여 생물 종이 발견돼 학계에 보고됐다.
영국 자연사박물관 중심의 공동연구진은 최근 생물학술지 <커런트 바이올로지>에 낸 논문에서, 이곳에서 발견된 생물 종이 5578종에 이르며 그 가운데 아직 학명이 없는 새로운 종이 90%나 된다고 밝혔다. 실제로는 더 많은 종이 살 것으로 추정된다. 같은 지구에 살지만 우리가 알지 못했던 생물 세상이 처음 공개된 셈이다.
신기한 모양과 색깔의 해삼과 해파리, 장식 조명등 닮은 해면, 오징어처럼 헤엄치는 벌레, 광물 틈새와 진흙 바닥에서 사는 벌레들은 연구자들에게 놀라운 존재였다. 일부 종은 바다 아래로 가라앉는 식물성 플랑크톤 같은 유기물을 먹으며 산다. 일부는 단단한 광물 덩어리에 달라붙어 삶의 터전을 꾸린다.
하지만 심해 생물 소식은 반가움과 더불어 이들이 맞을 미래를 걱정하는 우려로 이어진다. 사실 이곳에는 대규모 해저 광물 채굴 사업이 추진되고 있기 때문이다.
심해 채굴을 추진하는 쪽은 기후위기 시대에 에너지 전환을 위해 심해 광물 채굴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전기차 배터리와 재생에너지 기술에 필요한 니켈, 코발트, 망간 같은 광물 수요가 늘면서 이런 광물이 대량으로 매장된 이곳 심해저는 채굴 후보지로 손꼽힌다. 심해 평원의 진흙 바닥에는 수백만년 동안 여러 금속 광물이 들러붙어 만들어진 감자 크기의 광물 덩어리(다금속 단괴)가 수십억t이나 흩어져 있다.
심해 채굴을 우려하는 국제환경단체들은 광물 덩어리 자체가 심해 생물에게 필요한 삶터인데다 소음과 흙탕물이 예측할 수 없는 연쇄효과를 일으켜 대량 멸종을 초래할 것이라고 경고한다. 이번 논문의 연구진은 보도자료에서 “심해에 어떤 생물 종이 사는지 충분히 알기도 전에 광물 채굴 탐사가 이뤄지고 있다”며 채굴 사업 결정이 신중하게 이뤄져야 한다고 요구했다.
태평양 심해 채굴 탐사에는 우리나라도 참여하고 있다. 해저 광물 자원을 관리하는 국제해저기구(ISA)의 누리집을 찾아보니, 해저 광물 탐사 계약자에는 중국, 인도, 일본, 독일, 러시아 사업자를 비롯해 한국도 포함됐다. <뉴욕 타임스> 보도에 따르면, 심해 채굴은 이르면 내년 본격적으로 시작될 것으로 보인다.
지구 환경을 위해 재생에너지 기술과 배터리에 쓸 더 많은 광물을 얻고자 심해 환경과 생물을 위협하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뭔가 잘못된 길은 아닌지 돌아봐야 한다. 어느 날 출현한 굴착 기계에 내몰릴 심해 생물을 떠올리며, 돌아가더라도 지속가능한 대안의 길이 적극 모색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