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해 | 한겨레말글연구소 연구위원·경희대 교수
마음은 몸과 이어져 있다. 볼 수도 없고 보여줄 수도 없건만, 몸이 티를 내니 숨길 수가 없다. 기쁘면 입꼬리를 올리고, 슬프면 입술을 씰룩거린다. 실망하면 어깨가 처지고, 부끄러우면 얼굴이 화끈거린다. 분하면 어금니를 깨물고 긴장하면 몸이 굳는다. 두려우면 닭살이 돋는다. 몸은 마음이 하는 말이다.
‘망신’(亡身). 몸을 망가뜨리거나 몸이 망가졌다는 뜻이었으려나. 고행처럼 몸을 고통 속으로 밀어 넣어 육신의 욕망을 뛰어넘고 참자유에 이르겠다는 의지였으려나. 서면 앉고 싶고, 앉으면 눕고 싶고, 누우면 자고 싶은 게 사람 마음인데, 몸을 잊음으로써 인간의 존재 이유를 묻는 것이겠지. 오체투지, 단식, 묵언, 피정, 금욕도 망신(고행)의 일종이다. 일상에서 벗어나 새로운 삶을 궁리하는 일이라면 여행이나 산책마저도 망신이려나? ‘몸을 잊고 던지는’ 망신은 쉽지가 않다.
그래서 그런가. 몸은 안 던지고, 세 치 혀만 잘못 놀려 스스로 무덤을 판다. 아는 척, 잘난 척, 있는 척 헛소리를 하고 허세를 부리다가 들통이 난다. 자초한 일이니 누구를 탓하랴. 망신은 망심(亡心). 얼굴을 들 수 없고 낯이 깎인다(대패에 얼굴이 깎여나가는 아픔이라니). 망신도 크기가 있는지, ‘개망신’을 당하면 며칠은 집 밖에 나갈 수 없고, ‘패가망신’을 당하면 전 재산을 잃고 몰락한다. 홀로 감당하지 않고 ‘집안 망신’이나 ‘나라 망신’을 시켜 민폐를 끼치기도 한다.
인간은 실수하는 동물이다. 크고 작은 망신을 피할 수 없다. 다만, 망신살이 뻗쳤는데도 낯을 들고 다니는 사람이 늘고 있는 건 분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