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도에 밀려와 해안에 쌓인 플라스틱 쓰레기 더미. 플라스틱 쓰레기가 지구촌의 갈수록 심각한 골칫거리가 되면서, 플라스틱을 분해하는 미생물에서 해법을 찾으려는 연구도 활발해지고 있다. 위키미디어 코먼스
오철우 | 한밭대 강사(과학기술학)
집에서 할 수 있는 학생 실험 중 하나로 플라스틱 먹는 애벌레 관찰 활동이 있다. 2015년 미국 연구진이 갈색거저리 애벌레(밀웜)가 플라스틱의 일종인 스티로폼을 먹고 소화한다는 연구논문을 발표해 화제가 됐는데 이를 재현하는 실험인 셈이다. 실험을 잠시 지켜본 적이 있는데 밀웜의 스티로폼 소화력은 신기할 따름이었다. 지난해 6월에는 훨씬 큰 몸집으로 왕성한 식욕을 과시하는 슈퍼웜을 오스트레일리아 연구진이 찾아냈다는 소식도 전해졌다. 그런데 사실 신기한 능력의 주인공은 애벌레가 아니다. 플라스틱 고분자를 잘게 분해해 소화할 수 있게 하는 주인공은 애벌레의 장내 미생물이다.
플라스틱을 먹는 미생물은 오래된 쓰레기 더미에 훨씬 더 많다. 이 분야 연구를 종합한 논문을 보면, 플라스틱을 분해하는 박테리아와 곰팡이 미생물은 1974년 폴리에스터 분해 곰팡이가 보고된 이래 2020년 4월까지 무려 436종이나 되는 것으로 추산됐다. 절반 이상은 2010년대 이후 집중적으로 발견됐다. 2016년엔 가장 흔한 플라스틱 페트(PET)를 잘 분해하는 박테리아가 일본에서 발견됐고, 이어 박테리아에서 찾아낸 분해 효소를 활용한 연구들이 줄이었다. 잘 분해되지 않는 폴리스티렌(PS)과 폴리우레탄(PU)을 분해하는 곰팡이도 뒤이어 발견된 바 있다.
새로운 소식은 지금도 계속된다. 이번에는 저온에서 분해 능력을 발휘하는 박테리아가 새롭게 발견됐다. 지난 5월 스위스 연구진은 알프스 고지대와 북극 그린란드 등에서 생분해성 플라스틱을 먹으며 사는 박테리아 균주 19개를 찾아내어 <미생물학 프런티어스>에 보고했다. 흔히 분해 효소는 섭씨 30도 이상에서 작용하는데, 이 박테리아들의 분해 효소는 섭씨 15도에서도 분해 능력을 보여 활용 가능성을 넓혀준다.
플라스틱의 작은 세상에 붙어 사는 미생물 군집도 자세히 관찰됐다. 영국 큐 왕립식물원을 중심으로 한 국제 연구진은 최근 <위험물질 연구>에 보고한 논문에서 염습지의 플라스틱 쓰레기에서 토양 생태계와 아주 다른 미생물 군집을 발견했다고 밝혔다. 이들은 중국 황해 연안 옌청시의 다펑 자연습지에서 생분해 플라스틱을 먹는 다양한 박테리아와 곰팡이 균주를 무더기로 찾아냈다.
여러 연구는 생태계의 최후 분해자로 불리는 박테리아와 곰팡이가 썩지 않는 플라스틱을 분해하는 데에도 능력을 발휘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미생물들은 탄소·수소가 단단히 결합한 플라스틱 고분자 사슬을 작은 조각으로 깨뜨려 성장에 필요한 탄소와 에너지를 얻는다.
미생물은 플라스틱 골칫거리를 풀 실마리가 될까? 분해 효소는 플라스틱을 분해하고 재활용하는 데 얼마나 활용될 수 있을까? 가장 큰 문제는 미생물의 분해 속도에 비해 해마다 3억톤 넘게 버려지는 플라스틱 쓰레기가 너무 많다는 데 있다. 다양한 플라스틱을 안정된 효율과 빠른 속도로 분해하게 하는 미생물 공정을 찾는 일도 만만찮다. 근본 해법은 여전히 플라스틱을 줄이고 대체하고 재활용하는 데 있다. 그래도 활발해지는 미생물 연구에서 플라스틱 문제를 줄여줄 해법의 실마리가 나오기를 함께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