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컨대, 핵심은 변별력이 아니라 ‘분별력’이다. 분별력이란 무엇인가? 변별력이 최우수 학생과 아닌 학생을 구분하는 차별화의 힘이라면, 분별력이란 참과 거짓, 옳고 그름, 의미와 무의미를 헤아리는 지혜의 힘이다. (…) 사리를 정확히 판단하고 옳은 방향으로 근본 해법을 추구하는 힘인 ‘분별력’을 도외시한 채, 오로지 타인보다 우위에 서려는 ‘변별력’ 테스트에서 승승장구한 이들을 보라.
강수돌 | 고려대 융합경영학부 명예교수
“킬러 문항 탓에 사교육만 팽창했다”, “공정 경쟁을 위해 사교육 이권 카르텔을 혁파해야 한다”… 윤석열 대통령과 정부·여당 쪽 발언들이다.
“대통령이 대한민국 교육의 최대 리스크다”, “핵심은 ‘성적 줄세우기’와 ‘경쟁 교육’인데, ‘킬러 문항’만 배제하는 건 본질을 회피하는 것”…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 등 야당과 시민사회진영 쪽 발언들이다.
과연 ‘킬러 문항’은 무엇이고 한국 교육문제의 핵심은 무엇인가? ‘킬러 문항’이란 특히 대학 입시와 관련해 최우수 학생과 그렇지 않은 학생을 가르는, 매우 까다로운 시험문제란 뜻. 이른바 ‘변별력’ 있는 문제!
‘변별력’과 관련한 나 자신의 경험이 있다. 약 50년 전 중학생 때였다. 중간·기말고사에서 좋은 성적을 얻고자 극도로 열심히 공부했다. 그런데 막상 시험문제를 받고서는 ‘이럴 바에야 공부 안 해도 다 맞겠는걸! 선생님은 왜 이렇게 쉬운 문제로 그간의 내 고생을 헛수고로 만드나?’라며 혼자 불평하기도 했다. 소위 ‘킬러 문항’이 없었던 것! 그러나 그런 나의 오만함은 두가지 계기로 사라졌다.
첫번째는 1979년 예비고사에 이어 1980년 초 대입 본고사에서 보란 듯 낙방한 일! 나름 열심히 했기에 거뜬히 합격하리라 장담했건만, 담임 선생님의 “아직도 네 이름이 (합격자 명단에) 안 들어오네!”란 말에 멘붕이 왔다. 그 뒤로 나는 오만함을 지극히 경계한다.
두번째는 1981년 대학생이 된 뒤 ‘군부독재 타도와 민주화 운동’에 피라미 역할을 하면서 세상 보는 눈이 달라진 것! 그동안 내 가치관은 공부해서 좋은 대학 가고, 좋은 곳에 취업해 남부럽지 않게 살자는, 보통의 물신주의였다! 그러나 알고 보니, 사회 구조는 극히 불평등하고 차별적이었다. 설사 내가 출세해도 누군가는 저 아래서 허덕이는 구조! 마치 노예와 주인의 자리가 바뀌어도 노예제는 여전히 존속하는 이치! 이 깨달음에 이르자 마지막 남은 오만함도 녹아내렸다. 동학의 ‘인내천’(사람이 곧 하늘)처럼 모두 존중받는 사회를 만드는 데 일조하는 게 내 삶의 지향이 됐다.
요컨대, 핵심은 변별력이 아니라 ‘분별력’이다. 분별력이란 무엇인가? 변별력이 최우수 학생과 아닌 학생을 구분하는 차별화의 힘이라면, 분별력이란 참과 거짓, 옳고 그름, 의미와 무의미를 헤아리는 지혜의 힘이다.
소설가이자 극작가 안톤 체호프(1860~1904)의 단편에 ‘굽은 거울’이 있다. 조상 대대로 물려받은 낡은 집, 주인공과 아내가 들어서니 쥐들이 놀랄 정도다. 낡은 벽에는 선조들 초상화가 여럿 걸렸다. 특히 증조할머니의 몰골 흉한 초상이 눈에 띄는데, 그 옆엔 거울이 있다. 검은 청동 테가 둘린 제법 큰 거울! 할머니는 거금을 들여 이 거울을 산 뒤 죽을 때까지 손에서 놓지 않았다. 식사 자리, 잠자리에서도 애착했다. 관 속에다 넣어 달라 유언할 정도로 마술 같은 거울! 주인공이 수북한 먼지를 털어내고 거울 속을 봤다가 곧장 크게 웃었다. 알고 보니, 그 거울은 굽어 있어, 얼굴을 온통 찌그러뜨렸다. 코는 왼뺨에 붙었고 턱은 둘로 갈라져 삐죽 나왔다. 누가 봐도 웃겼다. 이에 아내가 궁금해 거울 속을 본다. 갑자기 아내는 얼굴이 창백해지고 몸을 떨다가 비명과 함께 정신을 잃었다. 꼬박 하루 뒤 정신을 차렸다. 일주일 내내 아내는 식사도 거부하며 거울을 요구했다. 자칫 ‘큰일 난다’는 의사 말에 주인공이 거울을 주었다. 그러자 아내는 행복하게 웃으며 거울을 껴안고 입도 맞춘다. ‘그래, 이건 나야. 모두 다 거짓말을 해도 이 거울은 정직해!’라며…. 이 굽은 거울에 주인공은 “하하하!” 거칠게 웃은 반면, 행복에 젖은 아내는 “난 정말 아름다워!”라 속삭였다. 굽은 거울의 불편한 진실!
이 작은 얘기엔 변별력과 분별력이 모두 있다. 정확하진 않아도 굽은 거울은 외모를 정반대로 ‘변별’한다. 스스로 굽었기에, 잘생긴 얼굴은 못난이로, 몰골이 이상할수록 멋진 얼굴로 재현했다. 반면, 주인공은 ‘분별’ 있는 이, 그 아내나 증조할머니는 분별 없는 이다. 체호프의 이 ‘굽은 거울’은 우리 교육에 어떤 시사를 주는가?
첫째, 대학입시를 위한 수능시험 자체가 ‘굽은 거울’이다. 원래 교육이란 내면의 잠재력을 끌어내 사회적 자아실현을 돕는 과정이다. 그러나 지금 자본주의 교육은 돈벌이에 필요한 노동력을 위해 노동 능력과 노동 의욕만 북돋을 뿐! 양심적이고 당당한 인격체로 살고자 할수록 현 교육에선 저평가되고, 그와 무관 우수 노동력의 자질을 갖출수록 고평가된다. 그러니 교육 시스템 자체가 ‘굽은 거울’!
둘째, 수능시험에서 ‘킬러 문항’을 없애 사교육 카르텔을 막아야 한다는 말이 진정 교육을 고뇌하는 맥락이라면, 단순히 ‘변별력’ 논란에 머물 게 아니라 교육의 총체적 변화를 도모해야 한다. 그 변화란 모든 아이가 나름의 개성(재미, 재주, 의미)을 존중받고 그 잠재력 증진을 위한 실력 향상 과정에 공적 지원을 받으며, 무슨 대학, 어떤 학과를 나와도 사람답게 대우받는 삶의 구조를 만드는 것! 단순한 ‘킬러 문항’을 둘러싼 ‘변별력’ 시비를 넘어 참된 교육혁명을 논하는 ‘분별력’이 그래서 절실하다. 인간다운 삶은 결코 돈과 지위가 아니니!
셋째, 사리를 정확히 판단하고 옳은 방향으로 근본 해법을 추구하는 힘인 ‘분별력’을 도외시한 채, 오로지 타인보다 우위에 서려는 ‘변별력’ 테스트에서 승승장구한 이들을 보라. 분별력의 빈곤! 일례로, 핵발전소 방사능 폐수를 “잘 정화되면 얼마든 마실 수 있다”는 학자들, “쓸데없는 괴담으로 불안하게 한다”는 정치가, “누구 말이 옳은지 모르겠다”는 어른들, 이 모두 ‘변별력’ 교육의 피해자들이다. ‘분별력’ 있는 느낌, 생각, 판단, 행동의 시간들을 오지게 도둑맞은 결과다.
지금부터라도 오만한 엘리트주의 사고와 정치경제적 계산을 버리고 사람답게 사는 법을 고민하시라. 교육, 노동, 경제, 농사, 생태, 지구, 평화, 생존…. 삶의 모든 영역에서 ‘변별력’ 아닌 ‘분별력’이 절박하다. 도시의 밝은 빛에 도둑맞은 밤을 되찾듯, 우수 노동력 선발 교육에 도둑맞은 분별력을 되찾아야 한다. 돈과 권력이라는 물신에 젖은 사회 전반의 ‘굽은 거울’을 과감히 깨부수는 분별력만이 희망의 열쇠다. 부디, 제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