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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강수돌 칼럼] 자본주의 교육의 낙인효과

등록 2023-09-21 13:48수정 2023-09-22 02:37

자본주의 교육에서 사람들은 ‘부정적 낙인’을 받을까 봐 두려움에 싸인다. 동시에 ‘긍정적 낙인’을 받지 못할까 봐 불안감에 떤다. 두려움과 불안감이 지배적 분위기가 될수록 인간(민주시민) 교육 내지 인격체 육성이라는 교육 본연의 목표는 잊힌다. 남은 것은 오직 ‘내 것’을 지키기 위한 권리 투쟁뿐! 이제 인간적 소통과 합의, 사과와 용서, 이해와 화해 등 구체적 인간관계 회복 대신 돈과 돈, 권리와 권리, 변호와 변호 간의 추상적 논리전이 난무한다. 사람들은 상처투성이가 되고 법정과 병원만 번창한다.

강수돌ㅣ고려대 융합경영학부 명예교수

사례1. ‘축 ○○초등학교 ○회 졸업생 ○○○ ○○고시 합격’, ‘축 ○○○씨 자녀 ○○○ ○○대 합격’, ‘축 ○○학교 ○회 동기 ○○○ 당선’…. 명절 때가 되면 소도시나 시골엔 이런 펼침막이 흔하다. 분야는 달라도 나름 성공하고 출세한 주인공의 가족과 지인이 기뻐한다. 가끔 언론에선 유명인이 된 ○○○의 과거 담임까지 인터뷰하며 ‘스승의 은혜’를 상기시킨다. 그러나 딱 그까지! 고시 합격 ‘이후’ 그가 과연 양심과 정의를 위해 일관된 길을 가는지, ○○대 합격 ‘뒤’ 얼마나 모범적인 인생을 사는지, 당선 ‘다음’ 과연 숭고한 목적을 위해 일하는지는 아무도 묻지 않는다.

사례2. “2011년 ○○ 중학생 자살 사건이 발생해요. 동료 학생의 괴롭힘으로 자살했기에 학교폭력예방법이 개정됐죠. 당시 이명박 정부 이주호 교육부 장관도 ‘학교폭력 관련 내용을 학교생활기록부(생기부)에 기재하라’ 해요.” 그 핵심은 가해자의 잘못을 생기부에 기재, 폭력을 예방한다는 취지! 하지만 의도치 않은 결과가 나타난다. 능력 있는 가해자 부모는 인맥과 돈으로 변호사까지 동원, 학폭 사실이 생기부에 오르지 않도록 잘도 요리한다. 규정에 충실한 교사를 ‘(내 아이) 정서 학대’라며 압박하고 고발한다. 피해자 부모 역시 능력이 된다면 변호사를 동원, ‘내 아이’를 괴롭힌 가해자를 더 확실히 처벌하라며 분노하고, 교사가 가해자를 감싼다며 원망한다.

얼핏, 사례1은 존경받는 교사를, 사례2는 자괴감에 빠진 교사를 비춘다. 두 사례를 관통하는 점은 자본주의 교육의 ‘낙인효과’다. 원래 낙인이란 어떤 대상을 부정적으로 규정, 고정관념을 만드는 것! 대표적으로, ‘○○지역인들은 ○○하다’는 식! 그런데 긍정적 낙인도 있다. 학교폭력 생기부 등재가 ‘부정적 낙인’이라면, 성공·출세의 현수막은 ‘긍정적 낙인’ 사례다.

우선, 부정적 낙인을 보자. 만일 생기부에 ‘학폭 가해자’로 기재되면, 이른바 ‘빨간 줄’이라 불리는 전과기록이나 금융권 신용불량자 등록처럼 치명적이다. 대입이 어려워질 가능성이 커지고, 취업 등 그 이후 인생에도 영향을 끼친다. 결국 ‘이생망’, 이번 생은 망했다! 이 세상 누구보다 사랑하는 ‘내 아이’가 인생을 망치게 됐으니, (긍정적 낙인을 가진) 부모는 모든 역량을 동원, ‘(왕의 자녀 같은) 내 새끼’ 구하기에 나선다. 돈과 인맥이 개입한다. 정순신, 이동관의 경우처럼!

다음, 긍정적 낙인은 어떤가? 이른바 스카이(SKY)대 출신, 사법·행정·외무고시 합격, 당선 등 ‘성공·출세’의 상징들은 실제 삶에선 선한 영향보다 오히려 부정적 영향을 낳기 일쑤다. 왜 그런가? 예컨대, 누군가 일류대, 고시 출신이라 하면 우리는 대개 ‘훌륭한’ 사람이라며 그 얼굴을 다시 본다. ‘존경’이 다시(re) 보기(spect) 아니던가. 그러나 자본주의는 경제가치를 최고로 친다. 경제가치란 화폐나 상품으로 표시되는 가치, 곧 돈이다. 나라 경제 전체를 국내총생산(GDP)으로 표시하는데, 이는 한해 동안 나라 안에서 생산된 상품 총액이다. 이 지디피가 크는 게 경제성장이다. 스카이대, 고시 출신, 기관장과 사장들은 경제성장에 기여한 만큼 출세하고 돈도 잘 번다. 인생 성공!

그러나 지디피는 경제가치만 포함하지 인간다운 삶에 더 중요한 사회가치나 생명가치는 배제한다. 일례로, 스카이대 출신 경영진과 고시 출신 자문단을 갖춘 대기업이 수출을 많이 할수록 경제가치가 오른다고 외친다. 하지만 그 회사의 자원채굴이나 오·폐수 배출이 자연을 훼손하고, 온실가스 방출로 기후위기를 불러도(생명가치 훼손), 노동자를 억압·착취·차별해도(사회가치 훼손) ‘모르쇠’다. 오히려 출신과 경력 등 ‘화려한’ 긍정적 낙인을 무기로 인맥과 언론을 동원해 현실을 가린다. 설사 법정에 가도 사태의 진실 규명이나 책임자 처벌 대신 ‘범죄세탁’이 일어나기 일쑤다.

이런 점에서 자본주의 교육은 아이들을 (사회적 위계질서와 마찬가지로) 1등급에서 5등급까지 질서 있게 분류하고, 1등급에겐 긍정적 낙인을, 5등급에겐 부정적 낙인을, 2~4등급에겐 ‘평범’ 낙인을 찍는다. 더 간단히, 1등급만 승자, 나머지는 실질적 패자다. 과거엔 부모가 4~5등급이라도 ‘개천에서 용 나듯’ 더러 아이가 1등급이 됐지만, 요즘은 부모의 등급이 거의 대물림된다. 아니, 갈수록 1등급 경쟁은 살벌해지고 대다수는 하향한다. 그 과정에서 타자와의 공감이 핵심인 사회가치나 우리 모두의 생존 기반인 자연의 생명가치는 체계적으로 무시, 훼손된다.

이러한 자본주의 교육에서 사람들은 ‘부정적 낙인’을 받을까 봐 두려움에 싸인다. 동시에 ‘긍정적 낙인’을 받지 못할까 봐 불안감에 떤다. 이 두려움과 불안감이 자본주의 교육의 모든 행위자(학생, 학부모, 교사·교장, 교육청·교육부 관료)를 압살한다. 두려움과 불안감이 지배적 분위기가 될수록 인간(민주시민) 교육 내지 인격체 육성이라는 교육 본연의 목표는 잊힌다. 남은 것은 오직 ‘내 것’을 지키기 위한 권리 투쟁뿐! 이제 인간적 소통과 합의, 사과와 용서, 이해와 화해 등 구체적 인간관계 회복 대신 돈과 돈, 권리와 권리, 변호와 변호 간의 추상적 논리전이 난무한다. 사람들은 상처투성이가 되고 법정과 병원만 번창한다. ‘사회’의 죽음!

영화 ‘그녀의 조각들’에서 출산을 앞둔 마사(버네사 커비)는 가정분만을 위해 1급 조산사를 부른다. 일정 탓에 초보자 대리 에바(몰리 파커)가 오는데, 최선을 다하나 실수로 아기가 죽는다! 삶이 산산조각 난다. 에바를 상대로 한 긴 소송에서 마사가 최후 진술한다. “원인이 있겠지만 그걸 여기서 찾진 못해요. 보상을 받는다고 정말 보상이 될까? 죽은 애가 돌아오진 않죠.” 마사는 자신이 승소한들 결국 고통 전가에 불과하기에, 모두 내려놓는다. 마사도 살고 에바도 산다!

다행히 교육 현장에선 아직 시간이 있다! 생기부도 소송전도 아닌, 우애와 공감의 관계 회복이 열쇠다. 가해자-피해자 전쟁을 넘어 ‘평등한 자유인의 공동체’를 구축할 때 죽어가는 교육도 구한다. 법적 보호는 중요하다. 총체적 관계 회복은 더 중요하고 근본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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