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19일 부산 남구 해군작전사령부 부산작전기지에 입항한 미국의 오하이오급 핵추진 탄도유도탄 잠수함(SSBN) 켄터키함(SSBN-737) 내부를 시찰하며 잠망경을 살펴보고 있다. 미 해군 제공
[특파원 칼럼] 이본영 | 워싱턴 특파원
강경파의 미덕은 직설적으로 말한다는 것이다. 강해 보이고 싶은 그들은 말 돌리는 것을 싫어한다. 자신감이 충만하니 굳이 누구를 배려하지도 않는다. 그래서 다른 이들이 얼버무리며 감춘 사안의 본질이 가끔 그들 입을 통해 드러난다.
미국 의회 대중 강경파인 마이클 매콜 하원 외교위원장이 23일 에이비시(ABC) 방송에 출연해 한 말도 그런 식이다. 그는 미국 전략핵잠수함이 부산에 기항한 것은 중국에도 “공격적 행동에는 대가가 따른다는 점”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북한뿐 아니라 중국의 대만에 대한 위협도 겨냥했다는 얘기다.
조 바이든 행정부에서는 미국이 북한 문제를 멀찌감치 미루고 중국 문제에 총력을 쏟는 경향이 두드러진다. 하지만 미국의 중국에 대한 ‘집착’은 훨씬 오래된 일이다. 19세기 이래 서구 제국들은 너무 멀리 있으면서 너무 큰 시장인 중국을 독식하기 어려우니 사이좋게 각자 몫 챙기기를 원했다. 뒤늦게 쟁탈전에 뛰어든 일본은 미국의 강력한 반대를 무시하고 중국을 독차지하려다 급체했다. 미국은 태평양전쟁에서 일본과 직접 싸우는 동시에 중국을 도왔고, 미국의 승리에는 중국이 크게 기여했다.
27일 정전 70돌을 맞은 한국전쟁에의 미국 참전을 설명해주는 것도 중국이다. 미국에서는 한국전쟁 발발 8개월 전 중국공산당이 내전에서 승리해 중화인민공화국을 건설한 사건을 ‘중국 상실’이라고 표현했다. 중국을 이용해 소련을 견제하고 싶었고 광대한 중국시장에 기대를 품어온 미국으로서는 공든 탑이 가루로 변한 사건이었다. 책임론에 시달린 해리 트루먼 대통령은 스탈린이 김일성을 움직인 것으로 보이는 한국전쟁에 뛰어들기로 결심했다.
리처드 닉슨 대통령의 중국과 데탕트는 미국이 중국을 되찾은 사건이다. 한국전쟁에서 미국에 큰 상처를 안긴 중국과의 화해는 충격으로 받아들여졌지만, 사실 미국의 근본적 이해관계 측면에서 일관성이 있는 행위였다. 미국은 소련을 더 강하게 견제할 수 있었고 결국 중국시장도 열렸다. 더 큰 적을 꺾기 위해서는 누구와도 연합하는 게 병법의 기본이라면, 그것을 가장 잘 구현해온 게 미국이다. 미국은 장제스의 반발로 무산되기는 했으나 태평양전쟁 때 중국공산당 병력을 무장시키려고도 했다.
지금 미국의 대중 정책은 ‘2차 중국 상실’에 대한 대응이다. 중국은 러시아 견제에서 의미가 없어졌다. 도리어 러시아와 밀착하고 있다. 중국시장은 미국의 번영 지속에 어느 정도 기여했지만 무역적자가 불어났다. 미·중이 첨단산업에서도 경쟁하니 중국시장에 대한 환상도 깨지고 있다. 무엇보다 중국은 미국의 헤게모니에 도전하는 가장 강력한 세력이 됐다.
요컨대 미국에는 언제나 중국이 문제였다. 그리고 중국에 대한 미국의 태도는 한반도의 운명에 거듭 결정적 영향을 끼쳤다. 사드, 평택기지, 한·미·일 군사 협력도 미-중 관계의 장기적 굴곡과 변주 속에 진행된다. 대중 반도체 수출 통제 등을 둘러싼 미국의 요구는 한국의 희생이 시작됐음을 보여준다. 70년 전 미봉된 한국전쟁이 내전인 동시에 국제전과 대리전 성격을 지녔음을 되새겨야 할 때다.
미국 전략핵잠수함에 승선한 윤석열 대통령 뇌리에 이런 고민이 들어 있긴 한지 궁금하다.
ebon@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