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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윤 대통령, 형법전으로 경제를 살릴 순 없다 [아침햇발]

등록 2023-08-10 15:12수정 2023-08-11 02:39

윤석열 대통령이 8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국가위기관리센터에서 열린 태풍 ‘카눈’ 대비 긴급 점검 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윤석열 대통령이 8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국가위기관리센터에서 열린 태풍 ‘카눈’ 대비 긴급 점검 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정남구 | 논설위원

20대 대통령 선거 다음날인 지난해 3월10일 이 ‘아침햇발’ 코너에 “말 위에서 나라를 다스릴 수 있겠습니까?”라는 제목으로 글을 썼다. 중국 한나라를 세운 유방의 참모 육가가 “말을 타고 천하를 얻을 수는 있었지만, 말 위에서 천하를 다스릴 수 있겠습니까?”라고 고언한 말에서 따온 것이다. 선거에서 이겼으니, 이제 윤석열 대통령은 권력투쟁보다 우리나라의 해묵은 숙제와 당면 과제를 해결하는 데 더 매진해야 성공한 대통령이 될 수 있다는 주문이었다. 선거가 끝나고 1년 반이 다 돼간다. 그러나 윤 대통령은 아직도 말에서 내릴 생각이 없는 것 같다.

나라를 이끌어가는 일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경세제민, 경제다. 지금 당장 먹고사는 문제를 넘어, 희망과 기대를 살리는 일이다. 그런데 윤석열 정부는 이 경제 운용에서 ‘무철학, 무능, 무책임’을 여지없이 드러내고 있다. 고물가·고금리의 고통과 올해 1.4% 안팎으로 예상되는 낮은 성장률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사태를 다루는 태도와 능력을 보니, 앞날이 몇배 더 걱정스럽다는 이야기다.

윤 대통령이 아무런 울림도 없는 ‘자유, 자유’를 반복하는 것부터 잘못됐다. 실제론 자유가 아니라, ‘명령’으로 경제를 꾸려가고 있다. 전리품 챙기듯 공기업 임원 자리를 빼앗아 ‘캠프’ 사람에게 넘기고, 민간기업인 은행, 통신 기업의 경영진 선임에 무리하게 개입한다. 잼버리 파행 대응에도 공기업과 민간기업을 마구잡이로 동원한다. 우리 경제 상황에서 정작 중요한 ‘자유’는 독점의 횡포를 막고 기업 간 경쟁을 활성화하는 것인데 그런 것은 눈 씻고 찾아봐도 없다.

올해 경기의 ‘상저하고’는 시기가 느리고 정도가 약하더라도 현실화되기는 할 것이다. 반도체 업종 경기가 바닥을 치고 있다. 그런데 경기가 나빠지는 동안 정부는 무얼 했던가. 대규모 감세로 세입 기반을 약화시켜놓고, 줄여놓은 예산조차 제대로 집행을 안 하고 있다. 고집만 세고, 합리적 계산은 할 줄 모른다. 전기요금 인상, 유류세 원상회복 문제에서 우왕좌왕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무능하고, 무책임한 일이다.

경기 회복세가 이어진다고 장담하기도 어렵지만, 호황은 더욱 기대하기 어려워 보인다. 그동안 우리나라의 성장을 이끌어온 수출 제조업의 당면 문제는 기술 경쟁력의 약화다. 정부는 이 문제에 별 고민이 없어 보인다. 그저 상투적으로 ‘투자 활성화’를 말할 뿐이다. 박근혜 정부 4년(2013∼2016년) 국내 총투자율은 평균 29.8%였고, 문재인 정부 5년간은 31.8%였다. 뭐가 문제라는 판단도 설명도 없이, 그저 기업들에 대규모 감세를 해주고, 상속세를 줄여줄 뿐이다. 노동자 임금을 억제하고 노동조합 활동을 억누를 뿐이다. 뿌리를 튼튼하게 하려면 기업들을 경쟁 압력에 더 강하게 노출시켜야 하는데, 거꾸로 사탕만 물려주고 있다.

앞날에 희망을 갖지 못하는 젊은이들은 결혼·출산을 기피하고, 인구 고령화가 빠른 속도로 진행되고 있다. 인구 감소 추세는 점차 가팔라질 것이다. 오래전 시작된 내수 부진의 골이 더 깊어질 수 있다. 사회 안전망을 더 확충하고, 국가의 재분배 노력을 더 확대해야 할 국면이다. 건전재정이란 명분으로 국가가 뒷짐을 지고 서 있는 것만도 곤란한데, 윤석열 정부는 실질 최저임금을 삭감하고, ‘시럽급여’란 딱지를 붙여 몇푼 안 되는 구직급여마저 빼앗으려 한다.

문재인 정부는 집값 폭등을 막지 못한 것이 가장 큰 실책이었다. ‘코로나 저금리’가 배경이었다 해도 ‘집값은 반드시 잡는다’고 큰소리 뻥뻥 쳤으니 책임을 면할 수 없다. 집 없는 이들의 가슴에 쌓인 분노, 늘어나는 세금에 대한 집부자들의 불만은 ‘불도장’처럼 새겨졌다. 윤석열 정부는 세금을 깎아줘 집부자들의 환심을 사면서 집값이 떨어지는 것을 막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정책대출을 늘리고, 대출규제를 완화하며 ‘집 사서 돈 벌라’고 부추긴다. 가계대출이 다시 늘고, 서울을 중심으로 집값이 꿈틀한다. 집 없는 이들은 희망을 잃었고, 주택대출을 많이 받은 가계는 원리금 상환의 덫에 걸려들어 있다. 인구가 감소하는데, 집값 거품이 영원히 유지될 리 없다. 경제위기의 폭발력을 키우는 어리석은 짓을 멈춰야 한다.

윤석열 대통령은 그저 이권을 챙기고 ‘패밀리’에게 배분하기 위해 권력을 잡은 것인가? 그렇지 않다면 이미 물러난 지 오래된 전 정권과 싸움을 그만두고, 사태를 직시해야 한다. 형법전으로 경제를 살릴 수는 없다.

jej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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