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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아침햇발] 윤송합니다

등록 2023-08-17 14:59수정 2023-08-17 18:32

윤석열 대통령과 김건희 여사가 2일 2023 새만금 제25회 세계스카우트잼버리 개영식에서 스카우트 최고의 예우를 표하는 장문례를 받으며 입장하고 있다. 대통령실 제공
윤석열 대통령과 김건희 여사가 2일 2023 새만금 제25회 세계스카우트잼버리 개영식에서 스카우트 최고의 예우를 표하는 장문례를 받으며 입장하고 있다. 대통령실 제공

이재성ㅣ 논설위원

올림픽과 월드컵을 훌륭하게 치러낸 나라에서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느냐는 국민과 외신의 질문에 우리가 찾는 답의 절반이 숨어 있다. 올림픽과 월드컵도 치렀는데, 애들이 와서 텐트 치고 노는 잼버리쯤이야 어떻게든 되겠지 하는 오만과 복지부동, 불통과 이기주의가 중앙과 지방 가릴 것 없이 전국의 공직 사회에 퍼져 있는 것이다. 책임있는 사람들은 사과하지 않고 국민들이 대신 잼버리 대원들에게 미안하다고 말하고 있다.

이 모든 사태의 정점에 사과와 반성을 모르는 윤석열 대통령의 무오류주의 리더십이 있다. 윤 대통령의 무오류주의는 권한(수사권과 기소권)을 행사하되 책임은 지지 않(아도 되)는 한국의 기형적인 검찰 제도가 만들어낸 신념 체계다. 잘못을 인정하지 않으니 시정하지 않고, 시정하지 않으니 반복된다. 그의 사전에는 책임이나 의무라는 단어는 없고 권한과 명령만 있다. 본인이 이러니 부하들한테도 책임지라고 요구하지 못한(않는)다. 이태원 참사의 행정적 책임자 이상민과 윤희근이 여전히 행정안전부 장관과 경찰청장이고, 빨간 옷이 잘 보이게 입수하라고 지시한 해병대 사단장은 수사 대상에서 제외하는 이유다. 현장에 가보지도 않았던 김현숙 여성가족부 장관이 폭염과 태풍 대책도 다 세워놨다고 당당하게 말해놓고, 행사가 이렇게 망가졌는데도 위기 대응 역량을 보여줬다며, 정신승리할 수 있게 하는 든든한 백이 대통령이다. 검찰의 고질병인 ‘제 식구 봐주기’의 행정부 확장판이다.

편가르기 좋아하는 윤 대통령은 우리 편의 결백을 상대 편의 유죄로 입증할 수 있다고 믿는다. 전라북도와 전 정권에 모든 책임을 떠넘기는 정부여당의 행태로 보아, 잼버리 사태에 대한 감사와 수사도 이미 방향은 정해져 있다고 봐야 한다. 사법의 정치화로 정권을 잡은 윤 대통령 취임 이후 정치의 사법화는 절정에 이르렀다. 직무에 관한 결정조차 수사의 대상이 되면서 공직 사회의 복지부동은 일상이 됐다. 잼버리 사태의 저 깊은 곳에, 사후 책임에 대한 공무원의 공포가 똬리를 틀고 있었을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말해봤자 바뀌지 않을 것이라는 불통과 불신의 문화도 한몫 했을 것이다.

잼버리 파행의 직접적 원인 중 하나라고 할 수 있는 폭염과 배수 대책 미비의 책임도 연원을 찾아 거슬러 올라가면 윤 대통령에 이르게 된다. 행사 두 달 전 잼버리 조직위원회가 100억원에 가까운 긴급예산을 요청했으나 대부분 묵살된 배경에 윤석열 정부의 부자감세와 긴축재정이라는 ‘이념적 경제정책’이 있기 때문이다. 이 정부가 그토록 강조하는 건전재정이란 세출이 세입을 초과하지 않는 상태를 말하는데, 무리한 감세로 세입을 줄여놓고 건전재정을 지키려니 지출도 줄일 수밖에 없게 된 것이다. 경제정책도 양두구육이다. 올해 들어 6월까지 정부 총수입은 지난해 같은 기간에 견줘 38조1천억원 줄었는데, 같은 기간 총지출은 57조7천억원이나 감소했다. 세수 펑크 사태에 놀라 수입보다 지출을 더 크게 줄이고 있는 것이다. 외환위기와 금융위기 때도 늘렸던 연구개발(R&D) 예산을 20~30% 삭감하겠다는 정부의 통보를 받았다고 과학기술계는 말한다.

지지세력에 대한 보은이 아니라면, 대체 무엇을 위한 감세인지 이 정부는 자신있게 말하지 못한다. 세금을 줄여 경제를 살린다는 낙수이론의 허구성은 세계적으로 증명된 지 오래다. 그러는 사이 올해 경제성장률은 미국은 물론이고 일본보다도 낮아질 가능성이 커 보이고, 경제규모는 2021년 세계 10위에서 지난해 13위로 내려앉았다. ‘고의에 의한 무능’이라고 말할 수밖에 없다.

세계적으로 창피를 당한 행사를 수습하려고 케이팝을 동원한 임기응변도 윤 정부다웠다. 수출이 9개월 연속 줄고 있는데도 반도체만 쳐다보는 정부의 안이한 태도는 마치 반도체를 경제의 케이팝 같은 존재로 여기는 것처럼 느껴진다. 하지만 한국 반도체가 세계 최고라는 생각도 오만이고 착시다. 한국이 세계 1위인 메모리 반도체 시장 규모는 전체 반도체 시장의 3분의 1도 안 되고, 비약적으로 성장하는 인공지능(AI) 산업과 함께 시스템(비메모리)반도체의 비중은 더욱 커질 수밖에 없다. 민간이 알아서 키운 케이팝과 달리 반도체 산업의 성과는 정부와 기업, 학계의 공동 노력으로 이룩한 것이라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제2, 제3의 반도체를 발굴하기 위해서라도 연구개발 예산을 줄이면 안 된다. 제발 그런 일이 없기를 희망하지만, 만약 우리가 여기서 중진국으로 주저앉게 된다면, 그것은 대통령과 여당이 저주하는 ‘강성노조’도 ‘망국적 복지병’도 아닌 ‘축소지향의 경제정책’에서 비롯했음을 역사가 기억할 것이다.

대통령 입만 쳐다보는 아부형 관료들로 가득 찬 이 정부에 이런 쓴소리를 전할 사람이 있을 리 없다. 보수가 갈수록 무능해지는 건, 커지는 욕심에 반비례하여 열정과 애국심은 작아지기 때문이다. 박정희 정부와 전두환 정부는 부패했지만, 경제발전에 대한 열정은 있었다. 이명박, 박근혜 정부는 적어도 국민 눈치를 보고 사과할 줄은 알았다. 이렇게 뻔뻔하고 애국심 없고 무능한 보수는 처음이다. 잼버리 대원들에게 국민들이 대신 사과했듯이, 쪼그라든 경제를 이어받을 후손들에게 우리는 이렇게 말해야 할지도 모른다. ‘윤송합니다(윤석열을 대통령으로 뽑아 죄송합니다).’

s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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