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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오철우의 과학풍경] 식물 기반 백신 연구는 계속된다

등록 2023-08-22 18:24수정 2023-08-23 10:40

항원 물질을 생산하는 식물 기반 백신 생산의 플랫폼으로 주목받고 있는 오스트레일리아 고유종 담배 ‘니코티아나 벤타미아나’(Nicotiana benthamiana). 오스트레일리아 퀸즐랜드공대 중심의 국제 연구진이 최근 이 담배종의 자세한 유전체 정보를 해독해 그 데이터를 공개했다. 퀸즐랜드공대 제공
항원 물질을 생산하는 식물 기반 백신 생산의 플랫폼으로 주목받고 있는 오스트레일리아 고유종 담배 ‘니코티아나 벤타미아나’(Nicotiana benthamiana). 오스트레일리아 퀸즐랜드공대 중심의 국제 연구진이 최근 이 담배종의 자세한 유전체 정보를 해독해 그 데이터를 공개했다. 퀸즐랜드공대 제공

오철우 | 한밭대 강사(과학기술학)

이달 중순 담배속 식물인 니코티아나 벤타미아나의 유전체(게놈) 정보를 완전 해독했다는 논문이 ‘네이처 플랜츠’에 실렸다. 연초용 담배와는 다른 종이다. 게놈 해독 기술이 눈부시게 발전한 요즘에는 이런 소식이 특별하게 들리지 않을 수도 있지만, 이 식물종의 경우는 얘기가 좀 다르다. 한두해 전만 해도 이 담배종은 코로나19 백신을 만드는 ‘분자농업’의 대표 식물로 한껏 주목받았다. 백신과 치료물질을 생산하는 그 식물의 게놈을 해독하고 데이터를 공개(nbenth.com)한다니 화제를 불러일으킬 만했다. 하지만 이 소식은 언론에 별 주목을 받지 못했다. 여기에는 생명공학 기업의 안타까운 성공과 침몰의 뒷이야기가 있다.

식물에서 백신용 항원 물질을 수확한다는 식물 기반 백신의 신선한 발상은 등장부터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코로나19 팬데믹으로 기대는 더욱 커졌다. 국내외 연구자들이 코로나바이러스의 일부 유전자를 담배 세포에 전달해 유사 바이러스 입자(VLP)를 생산하는 기술 개발에 경쟁적으로 나섰다. 이 입자는 인체에 면역반응을 일으키지만 증식하지 않는 항원 역할을 한다. 마침내 2022년 2월 그 성과가 나타났다. 주인공은 캐나다의 식물생명공학 기업 메디카고였다. 메디카고는 담뱃잎에서 수확한 백신 코비펜즈(Covifenz)의 임상시험을 성공적으로 마쳤고, 백신 개발을 전폭 지원해준 캐나다 정부가 곧바로 사용 승인을 했다. 식물 기반 백신은 기술력만 갖춘다면 불과 3~4주 만에 만들 수 있어, 감염병에 신속 대응할 수 있고 공정도 간편하고 값싼 유망한 백신 기술로 떠올랐다.

하지만 영광의 시간은 짧았고, 한때 식물성 백신 강자로 떠올랐던 메디카고는 이제 웹사이트도 찾을 수 없는 사라진 기업이 되었다. 뜻밖에 담배 기업과의 관계 문제가 발목을 잡았다. 다국적 담배 기업인 필립모리스 인터내셔널이 메디카고 지분의 3분의 1가량을 보유했는데, 담배나 무기 기업과 연관된 사업에 엄격한 규제 정책을 펴는 세계보건기구(WHO)가 그해 3월 담배규제 기본협약에 따라 이 백신의 긴급 사용을 불승인하는 결정을 내린 것이다. 보건금연 단체들도 담배 기업이 인류 건강을 챙긴다는 홍보 수단으로 악용할 수 있는 이른바 ‘말보로 백신’ 출시에 반대했다.

메디카고는 결국 무너졌다. 지난해 12월 대주주인 미쓰비시 계열사가 필립모리스 지분을 인수했지만, 백신 시장이 불확실해지면서 결국 미쓰비시는 지난 2월 메디카고 운영을 포기하고 말았다. 윤리적 백신 생산에 미리 주의를 기울이지 못한 정부와 기업의 문제로 연구자들의 성취는 물거품이 되었다.

식물을 이용한 녹색 백신의 기대가 사라진 것은 아니다. 세계보건기구도 메디카고 사태가 담배 기업과의 관계 문제에서 비롯했을 뿐 식물 기반 백신의 잠재력은 여전하다고 평했다. 주목받을 만했던 담배 게놈 해독 소식은 조용히 전해졌지만, 데이터 공유는 더 탄탄한 기초연구에 활용될 것이다. 이미 그 가능성이 임상시험 단계까지 입증된 터라, 식물체가 다양한 백신과 치료물질 생산 플랫폼의 하나로 자리잡는 날도 그리 멀지는 않은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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