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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합리적인 외국인력 도입 논의의 전제조건

등록 2023-08-28 19:21수정 2023-08-29 18:29

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이 지난 23일 정부서울청사 별관에서 ‘노동시장 활력 제고를 위한 킬러규제 혁파 방안'에 대해 발표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이 지난 23일 정부서울청사 별관에서 ‘노동시장 활력 제고를 위한 킬러규제 혁파 방안'에 대해 발표하고 있다. 연합뉴스

[세상읽기] 이철희 |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국가미래전략원 인구클러스터장

어느새 한국도 이민 문제가 뜨거운 정치적·정책적 논쟁거리인 국가가 되었다. 가파른 인구변동과 급격한 산업·기술의 변화가 우리 노동시장에 심각한 수급 불균형을 초래할 것이고, 이를 완화하기 위해서는 적극적으로 외국인 근로자 유입을 늘려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다른 한편, 이민자 유입이 늘어나면 내국인 근로자의 일자리를 빼앗고 임금을 떨어뜨릴 것이라고 우려하는 이들도 적지 않다. 그렇다면 어떤 주장이 더 타당할까? 내국인 근로자에 미칠 수 있는 피해를 최소화하면서, 우리 노동시장의 필요를 충족시킬 수 있는 합리적인 외국인력 도입 방안을 찾을 수는 없을까?

이 질문의 답을 모색하는 출발점은 국내 노동수급 여건과 이민자 유입이 끼치는 영향의 정도가 부문(산업, 직종)과 유형(학력, 숙련 수준)에 따라 다르다는 사실이다. 대량으로 외국인력을 들여왔는데 이들의 업종이나 숙련 수준이 우리 노동시장의 필요에 맞지 않는 경우, 정작 일손이 부족한 기업에 도움을 주지 못하고 내국인 일자리만 잠식하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반면, 내국인 근로자의 공급이 부족한 부문 혹은 지역을 정확하게 식별하여 이에 맞춰 외국인 근로자 유입을 늘리고, 내국인과의 대체·경합 관계가 없거나 상호보완 관계가 강한 외국인 근로자를 선별적으로 받아들인다면, 노동수급 불균형을 해소하면서도 내국인에 대한 부정적인 영향을 줄일 수 있을 것이다.

이처럼 노동시장의 필요와 내국인 보호 사이에 적절한 균형을 맞출 수 있는 외국인력 정책을 수립하기 위해서는 현재의 노동수급 여건을 정확하게 파악하고 장래 세부적인 부문·유형별 노동수급 불균형 규모를 정밀하게 예측하는 시스템 구축이 선행되어야 한다. 이민자 의존도가 높은 선진국들은 최근의 노동시장 여건에 대한 정량적 분석을 수행하고, 중장기적인 부문 및 숙련 수준별 노동수급 변화를 수량적으로 전망하여, 그 결과를 외국인력 정책에 활용하고 있다.

예컨대, 영국은 최근의 임금, 노동시간, 고용, 빈 일자리 등 지표를 분석하여 노동력 부족 직종을 선별하고, 여기에 포함된 일자리에는 외국인력 도입에 각종 혜택을 주고 있다. 유럽연합, 캐나다, 오스트레일리아 등은 산업·직업별로 향후 5~10년간 노동수요 및 노동공급 변화를 전망한 결과를 현재의 노동수급 조사 결과와 결합하여 외국인력 정책에 활용하고 있다.

한국은 다른 이민 수용 국가들에 비해 중장기 노동수급 전망의 필요성과 유용성이 특히 높다. 빠른 인구 변화와 산업·기술 변화로 인해 노동시장 수급 사정이 급격하게 바뀌고 있으며, 고급인력을 포함한 일부 외국인력의 경우 장래의 수급불균형에 대응한 선제적인 유치 정책이 필요할 수 있기 때문이다. 최근 필자가 경희대 엄상민 교수, 이화여대 이종관 교수와 함께 수행한 연구 결과는 인구 및 산업·기술 변화로 인하여 몇년 내에 보건업, 사회복지 서비스업을 비롯한 일부 부문에서 대규모의 노동력 부족이 발생할 것이라는 전망을 제공해준다. 1년 혹은 2년 전의 노동수급 지표에 기반한 정책만으로는 이와 같은 급격한 구조적 변화에 대응하기 어려울 것이다.

외국인 근로자 유입 규모를 합리적으로 결정하기 위해서는 수량적인 장래 노동수급 전망 결과에 다양한 정성적인 조사 결과를 반영하여 보완해야 한다. 우선, 고용주 및 관련 분야 전문가들에 대한 체계적인 의견 조사를 통해, 수량적인 분석이 간과할 수 있는 산업 현장의 사정을 외국인력 정책에 반영할 필요가 있다. 또한 장차 노동력 부족이 예상되는 일자리에 대해서도 외국인 근로자 유입의 적정성을 면밀하게 검토하는 과정이 요구된다. 예컨대 외국인력 도입이 내국인 고용에 미치는 부정적인 영향이 큰 일자리의 경우에는, 더 보수적으로 외국인력 도입 규모를 결정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일자리의 성격과 노동시장 여건을 잘 살펴서, 외국인 근로자 유입 확대와 내국인 진입 장려 중 무엇이 장기적으로 더 나은 방안인지 판단할 필요가 있다.

가파른 인구변화가 초래할 노동수급 불균형에 대응하기 위해 외국인 근로자 유입 확대는 피하기 어려운 시대적 과제가 되었다. 동시에 내국인 보호가 우선이라는 당위성 역시 저버리기 어렵다. 효율적인 제도 구축과 과학적인 근거 확보에 기반하여 합리적인 외국인력 도입 정책을 시행하는 것이 그 둘 사이의 적절한 균형을 찾을 수 있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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