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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경제 ‘정책’이 아니라, ‘주술’이다 [아침햇발]

등록 2023-09-07 16:01수정 2023-09-08 02:38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6월28일 청와대 영빈관에서 2023년 국가재정전략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공동취재사진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6월28일 청와대 영빈관에서 2023년 국가재정전략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공동취재사진

정남구ㅣ논설위원

윤석열 정부의 경제 정책은 목표가 무엇인가?

지난해 7월5일, 윤 대통령은 국무회의에서 이렇게 말했다. “민생 현장에 나가 국민 여러분의 어려움을 듣고 매주 비상경제민생회의를 주재하겠다.” 전달 소비자물가가 24년 만의 최고인 6% 오른 것으로 발표된 날이었다. 사흘 만인 7월8일 1차 회의를 열고, 8천억원 규모의 ‘고물가 부담 경감을 위한 민생안정 방안’을 발표했다.

회의는 곧 옆길로 샜다. 바이오헬스 산업 혁신 방안(4차), 수출경쟁력 강화 방안(7차), 대한민국 디지털 전략(8차)을 논의했다. 10월27일 11차 회의는 ‘경제 활성화 추진 전략’이란 주제로 열어 생중계를 했다. 장관들은 경제 활성화 실적 자랑에 열을 올렸다.

회의는 그 뒤에도 여덟차례 더 열렸다. 민생은 달라진 게 없다. 8월 물가상승률이 3.4%다. 상승세가 아직도 가파르다. 한달에 7천억원씩 유류세를 깎아 낮춘 휘발유·경유 값, 한전의 누적 적자를 47조원으로 키우면서 원가 이하로 매기는 전기요금은 장차 청구서를 보내올 것이다. 물가 탓에 2분기 가계 실질 소득이 지난해에 비해 3.9% 줄었다. 금리가 올라, 가계의 소비 여력도 줄었다. 하반기에 확 좋아질 것이라던 경기는 아직 바닥이다.

이 모든 것이 정부 탓은 아니다. 현재는 과거의 누적이요, 정부가 손대지 못하는 외부 변수의 영향도 적잖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상황에 맞는 정부의 대응, 대처를 더 중시한다. 그런데 그걸 생각하면 더욱 아득해진다.

정부 경제 정책의 중심 기둥은 세금과 예산, 재정 정책이다. 윤석열 정부는 무엇에 집중하고 있는가? 지난해 5월 새 정부 출범 이후 지금까지 말과 행동을 돌아보면, 두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감세’와 ‘재정적자·국가채무 억제’다.

정부는 지난해 세제 개편에서 법인세(27조9천억원), 소득세(15조7천억원), 종합부동산세(8조1천억원)를 중심으로 2023년부터 5년간 누적 60조2천억원의 감세를 했다. 올해는 5년간 3조1천억원을 감세하는 세제 개편안을 국회에 보냈다.

세수 예측은 어이없이 빗나갔다. 감세에 경기 후퇴가 겹쳐, 올해 7월까지 세수가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43조4천억원이나 적다. 이대로 가면 연간 50조∼60조원 줄 것이다. 내년 세수 형편도 아주 나쁘다. 내년 예산안의 국세 수입이 367조3천억원으로 작년 중기재정운용계획보다 51조4천억원이나 적다. 2년간 100조원 넘게 빈다.

그런데 ‘자유’를 숭상하는 윤 대통령은 걱정은커녕, 쾌재를 부르고 있을 것이다. 27년간 끼고 다녔다는 밀턴 프리드먼의 책 ‘선택할 자유’가 주창하는 바를 바로 실천할 수 있게 됐으니까. “정부 지배력이 미치는 범위를 확대하는 어떠한 새 정책에도 반대하고, 기존 정책도 폐지하거나 개선”할 절호의 기회가 왔으니까. “세금과 세출의 제한”이 아주 쉽게 현실이 되고 있다.

내년 예산안 확정을 한달 남겨둔 6월28일 재정전략회의에서 윤 대통령은 보조금을 ‘제로베이스’에서 재검토하라고 하는 등 강력한 예산 삭감을 지시했다. 기획재정부는 각 부처에 며칠 안으로 예산안을 다시 짜 오게 했다. 추경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8월11일 국민의힘 지도부를 만나 올해 5.1%인 예산 증가율을 내년엔 3%대로 하겠다고 알렸다. 그러나 최종 예산안에선 사상 최저치인 2.8%로 낮춰졌다. 누구 뜻이었을지 짐작하기 어렵지 않다.

경제가 활력이 없는 시기에 정부가 재정 긴축을 결행하는 것을 이해할 사람은 드물다. 기획재정부와 국민의힘도 속으론 끙끙 앓고 있을 것이다. 한국 경제는 노동과 자본의 투입을 늘려 성장을 견인하던 시대를 마감하고, 기술 혁신에서 성장 동력을 찾아야 하는 국면에 있다. 게다가 세계는 지금 기술전쟁 중이다. 그런 때, 연구개발(R&D) 예산을 16.7%나 깎았다. ‘화끈’하다.

어떻게 기술 혁신을 살려 잠재성장률의 추락을 막을 것인가? 고령화, 인구 감소가 진행되는 가운데 소득격차 확대와 내수 침체의 악순환을 어떻게 제어할 것인가? 가계부채를 잔뜩 삼키고 거대한 풍선처럼 부푼 집값 거품을 어떻게 가라앉힐 것인가? 우리 경제는 무거운 숙제를 등에 지고 있다. 그런데 길잡이는 주문 외듯 ‘건전 재정’만 반복해 외친다. 마치 국가가 아무 일도 하지 않아야 문제가 해결된다는 식이다. 근거는 없다. 설명·설득하려는 시도 한번 없었다. 이건 정책이 아니다. 주술이다. 샤머니즘이다.

jej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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