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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빚 줄이기의 고통

등록 2023-09-12 19:30수정 2023-09-13 02:38

지난 7월12일 중국 베이징의 궈마오 거리를 한 주민이 걸어가고 있다. 베이징/로이터 연합뉴스
지난 7월12일 중국 베이징의 궈마오 거리를 한 주민이 걸어가고 있다. 베이징/로이터 연합뉴스

[한겨레 프리즘] 전슬기 | 금융팀장

중국 경제가 가라앉고 있다. 배경엔 중국 정부의 ‘의도된 디레버리징(빚 줄이기)’이 존재한다는 점에서 한국 경제에 주는 시사점이 적지 않다. 중국은 부동산 시장의 거품을 빼기 위해 경제 혼란을 감수하고 있다. 우리도 가계부채 축소를 추진 중이나 경제 충격에 대한 우려로 속도를 내지 못하고 있다. 한번 과도하게 쌓인 빚은 ‘경제 위기’란 고통 없이 줄이기 어렵다는 것을 중국이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중국 대형 부동산업체들은 연일 채무불이행 위기에 빠져들고 있다. 소비와 투자도 얼어붙으며 경기는 빠르게 추락 중이다. 미국의 월스트리트저널은 ‘중국의 40년 호황이 끝났다’고 평했다.

위기는 의도된 측면이 크다. 중국은 개발업체와 지방정부를 주축으로 부동산 경기를 띄우며 경제성장을 도모해왔다. 그러자 비금융기업의 부채가 국내총생산(GDP)의 159%까지 불어났다. ‘빚’이 경제를 옥죄어오자 중국 정부는 부채 축소에 들어갔으며, 2020년엔 부동산 개발업체의 부채 비율을 제한하는 ‘세개의 레드라인’도 도입했다. 업체들은 자금 조달이 어려워졌다. 그러나 정부는 기분양 주택의 완공만 지원할 뿐 과거와 같은 부동산 경기부양책은 꺼내지 않았다. 헝다그룹, 비구이위안 등의 잇따른 채무불이행에는 정부의 의도된 구조조정이 깔린 셈이다.

시진핑 국가주석의 `공동부유’(함께 부유해지자)도 위기의 도화선이 됐다. 정부는 공동부유라는 분배 정책의 하나로 주택 투기 수요에 경고를 보내고 있으며, 부동산세 부과 가능성도 내비치고 있다. 상황이 이렇자 주택 구매 심리는 크게 위축되고 있다. 자금난을 겪던 개발업체들은 코로나19 봉쇄 해제로 매수 심리가 살아나리라 기대했으나 별 효과는 없었다.

이 때문에 전세계는 중국 정부가 정책을 바꿀지 예의주시하고 있다. 일본식 대차대조표 불황, 중국판 금융위기 등이 터질 수 있어 정책을 고수하지 못할 것이라는 예상이 나온다. 반면, 중국 정부가 버틸 것이라는 시각도 있다. 중국 부동산업체들은 금융권 차입 비중이 크지 않고 파생상품도 발달해 있지 않아 금융위기 가능성이 작다는 것이다. 대신 부동산업체에 직접 투자한 개인들이 많아 소비 위축으로 인한 실물경제 위기가 나타날 수 있으나, 이 역시 중국이 부동산 가격을 통제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일본식 장기 불황은 오지 않을 것이란 분석이다.

중국 상황은 우리에게도 고민거리를 던진다. 한국도 디레버리징이 중요한 과제여서다. 실제 한국은행이 2021년 8월부터 기준금리를 올린 배경엔 물가뿐 아니라 1천조원이 넘는 가계부채를 줄이려는 의도도 있었다. 효과도 있었다. 작년 9월부터 전 금융권 가계대출은 꾸준히 감소했다.

그러나 정부는 곧 난제를 만났다. 디레버리징은 필요하나 그 충격이 우려된 것이다. 부동산 경기가 갑자기 꺼지고, 여기에 얽힌 각종 부채가 부실화되면 경제 위기가 불가피하다는 공포다. 이에 정부는 부동산 경기 연착륙을 위해 ‘특례보금자리론’과 같은 대출 규제 완화 방안 등을 내놨다.

문제는 대책으로 이번엔 디레버리징이 멈췄다는 점이다. 가계대출은 올 4월부터 다시 늘고 있다. 집값도 들썩인다. 과다 부채와 부동산 가격 거품이 제대로 조정되지 않은 채 ‘빚’이 다시 쌓이는 정책 실패가 나타나고 있다.

중국에서 보듯 디레버리징을 경제 위기 없이 달성하기는 매우 어렵다. 장기적인 부채 축소와 그 과정에서 산발적으로 올 경제 충격 사이에서 균형을 찾아야 한다. 경계할 점은 섣부른 조바심과 부동산 경기 부양에 대한 유혹이다. 이창용 한은 총재는 지난달 “위기를 겪지 않고 디레버리징을 한 경우는 굉장히 드물다. 불황이 오면 가장 먼저 손쉽게 할 수 있는 일이 부동산 시장을 띄우고 대출을 해주고, 호황이 오면 좀 줄이는 것이다. 그런 유혹을 견딜 수 있는가”라고 했다. 부채 축소 성공 여부는 정책 의지에 달렸다는 뜻이다.

sgju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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