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오피니언 칼럼

‘애니싱 벗 문’을 넘어

등록 2023-10-22 18:58수정 2023-10-23 02:41

윤석열 대통령이 19일 충북 청주 충북대 개신문화관에서 생명과 지역을 살리는 필수의료혁신 전략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연합뉴스
윤석열 대통령이 19일 충북 청주 충북대 개신문화관에서 생명과 지역을 살리는 필수의료혁신 전략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연합뉴스

[한겨레 프리즘] 조혜정 | 정치팀장

‘애니싱 벗 문’(Anything But Moon, 문재인만 아니면 돼)

윤석열 대통령을 지켜보면서, 이 문구를 떠올린 게 나뿐만은 아니었을 거다. ‘문재인이 미워서 대통령이 됐고, 대통령이 된 뒤엔 싫은 티 팍팍 내며 그가 했던 모든 걸 뒤집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시간들이었다. 급기야, 자신에게 비판적인 세력엔 “공산 전체주의” 딱지를 붙이며 혼자만의 이념전쟁을 벌이기에 이르렀다. 여권 내부에서조차 비판과 우려가 쏟아졌지만, 윤 대통령은 귀를 닫고 오직 자신만 옳다는 태도를 고수했다. 그 결과가 지난 11일 서울 강서구청장 보궐선거의 국민의힘 참패다.

며칠 미적지근한 태도를 보이던 윤 대통령은, 보선 일주일 뒤인 18일 “국민은 늘 무조건 옳다. 우리가 민생 현장에 더 들어가 챙겨야 한다”고 했다. 전날 “반성도 좀 많이 하겠다”고 말한 사실도 이날 공개됐다. 그간 선보인 ‘뚝심’에 비하면 수줍은 표현이지만, 변화를 예고한 것이다.

그리고 다음날, 윤 대통령은 ‘의과대학 정원 확대’ 방침을 밝혔다. 2025학년도 대학입시부터 적용하겠다며 시한도 못박았다. 얼마나 늘릴지 구체적인 수치는 아직 확정되지 않았으나, 현재 의대 정원(3058명)의 3분의 1 수준인 1천명가량은 늘려야 한다는 요구와 기대감이 크다.

윤 대통령이 ‘반성’을 언급한 뒤 내놓은 첫 정책이, 문재인 전 대통령이 하려던 일이라는 점은 꽤 흥미롭다. 정무적으로 보자면, 국민적 지지와 공감대가 높고, 더불어민주당의 협조도 비교적 원만하게 이뤄지리라는 판단이 크게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그럼에도, ‘전 정부 뒤집기’에 사명감을 느끼는 사람처럼 굴었던 처지에선 ‘문재인 정부 때 추진했던’이라는 꼬리표가 달갑진 않았을 것이다.

그래서일까. 윤 대통령은 지난 19일 의대 증원 방침을 밝히면서 “의료 남용을 초래할 수 있는 보장성 확대에 매몰되어 의료서비스 전달체계를 개선하고 인력 수급을 원활하게 하는 구조 개혁이 지체돼 아쉽다”며 전 정부에 화살을 돌렸다. 무엇보다, 단 한차례도 ‘공공성’을 언급하지 않았다. 의료 공공성은 국민의 보편적 의료 이용을 보장하는 것이고 그 출발은 공공의료인데, 윤 대통령의 구상에는 그게 빠진 것이다.

사실, 지난 정부 정책이 ‘의대 정원 확대 및 공공의대 설립 추진방안’이었던 데 비해, 이번엔 ‘필수의료 혁신전략’으로 방점이 다르게 찍혀 있다. 의대 정원을 얼마나 늘릴지, 어디를 어떻게 늘릴지는 아직 밑그림이 나오지 않은 반면, 의료사고 때 법적 위험 부담 완화와 건강보험 수가 인상 등 필수의료 분야 인력 유인책은 비교적 구체적으로 제시됐다.

남인순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보건복지부에서 제출받은 자료를 보면, 지난해 말 기준으로 한국의 공공의료 비중은 의료기관 수로 5.2%, 의사 인력으로 10.2%에 그쳐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가운데 꼴찌다. 민간·대형병원 중심으로 의료시장이 굴러가는 현실의 보완책을 마련하지 않으면, 의사를 아무리 늘려도 민간병원이 흡수한다는 얘기다. 지역 간 의료 격차와 수도권 쏠림 역시, 의대생을 선발할 때부터 지역에 정착할 의사 육성 방안을 구체적으로 마련하지 않으면 해소하기 어렵다.

이 때문에 문재인 정부는 증원할 400명 가운데 300명을 ‘지역의사 전형’으로 뽑아 의사면허 취득 뒤 해당 지역의 공공의료기관 또는 중증·필수의료 기관에서 10년 동안 의무복무하게 하고, 공공의대를 신설하는 안을 추진했었다. 그러나 그조차도, 의료 공공성을 확보하기엔 턱없이 부족하다고 지적받았다.

윤 대통령은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는 것은 국가와 정부가 존재하는 첫번째 이유”이고 “의료 혁신의 목적은 국민을 위한 것”이라고 했다. 맞는 말이다. 그렇다면, 그렇게 할 수 있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 성공하면 온전히 ‘윤석열표’가 된다. 이미 흘러간 정부와 싸우는 건 “각자가 보고 듣고 싶은 사실만을 선택하는 반지성주의”(윤 대통령 취임사)다.

zesty@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오피니언 많이 보는 기사

일상적 불심검문에 대학생·시민들 ‘불복종’…공권력 바꿨다 1.

일상적 불심검문에 대학생·시민들 ‘불복종’…공권력 바꿨다

이제 윤석열과 검찰이 다칠 차례다 2.

이제 윤석열과 검찰이 다칠 차례다

‘윤 부부 비방 글’ 논란, 한동훈은 왜 평소와 다른가 3.

‘윤 부부 비방 글’ 논란, 한동훈은 왜 평소와 다른가

[사설] 대통령 관저 ‘유령건물’ 의혹 더 키운 대통령실 해명 4.

[사설] 대통령 관저 ‘유령건물’ 의혹 더 키운 대통령실 해명

시국선언 초안자에게 주문한 두 가지 [말글살이] 5.

시국선언 초안자에게 주문한 두 가지 [말글살이]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