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희림 방송통신심의위원장이 지난달 25일 오후 서울 양천구 방송통신심의위원회에서 전체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종규|저널리즘책무실장·논설위원
요즘 방송통신심의위원회(방심위)가 ‘열일’ 중이다. 윤석열 대통령이 마음에 쏙 들어 할 것 같다. ‘가짜뉴스 척결’이라는 대통령의 명령을 몸 던져 받들고 있으니 왜 안 그렇겠나. 방심위가 이렇게까지 존재감을 드러낸 적이 또 있었나 싶다. 언론을 향해 ‘심의’라는 무소불위의 칼을 마구 휘두르는 걸 보니, 이명박 정부 시절 ‘이동관 홍보수석실’을 능가하는 ‘언론 탄압 빌런’으로 등극할 날도 머지않은 듯하다.
방심위는 “독립적으로 사무를 수행하는”(방송통신위 설치법) 민간 기구다. 방심위의 ‘사무’가 헌법이 보장하는 표현의 자유와 직결되는 방송·통신 ‘내용’을 심의하고 규제하는 일이라는 점에서 방심위의 독립성은 매우 중요하다. 방심위가 스스로를 ‘민간 독립기구’라고 애써 강조해온 이유도 ‘정치권력에 의한 검열’ 논란을 피할 요량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요즘 방심위의 행태를 보노라면, ‘감히 민간 독립기구를 참칭하지 말라’는 말이 목구멍까지 차오른다. 윤 대통령이 개시한 ‘가짜뉴스와의 전쟁’에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달려들고 있어서다. 그 ‘전쟁’의 실체가 기실 ‘비판 언론 손보기’라는 걸 방심위만 모르는 것 같다.
이동관 방송통신위원장은 지난달 4일 국회에서 뉴스타파의 ‘김만배-신학림 녹취파일’ 보도를 언급하며 “수사와 별개로 방심위 등 모니터하고 감시하는 곳에서 엄중 조치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언필칭 민간 독립기구인 방심위를 자기가 마음대로 부려도 되는 수하 조직쯤으로 여기는 태도다. 방심위는 기다렸다는 듯 맞장구를 쳤다. 다음날 이 사안을 긴급심의 안건으로 상정한 것이다. 류희림 방심위원장(당시엔 위원)은 대통령실이 그날 오전 공식 성명까지 발표해 ‘희대의 정치공작’으로 규정한 사실을 언급하며, “방심위의 명운을 걸고 철저하게 심의해야 한다”고 했다. 권력의 ‘청부심의기관’을 자임한 거나 다름없다.
돌이켜보면 윤 대통령에게는 다 ‘계획’이 있었던 것 같다. 방심위의 심의 권력을 활용해 정권에 대드는 언론의 손목을 비틀겠다는 계획 말이다. 그 계획을 실행하려면 먼저 해야 할 일이 있다. 방심위 장악이다. 윤 대통령은 8월17일 옛 여권(더불어민주당) 몫으로 위촉된 정연주 방심위원장과 이광복 부위원장을 해촉했다. 방통위가 방심위에 대한 회계검사를 벌여 업무추진비 부당 집행 등을 이유로 ‘경고’ 처분을 한 것이 해촉 사유였다. 황성욱 상임위원(국민의힘 추천)은 같은 이유로 경고 처분을 받았지만 자리를 지켰다. 윤 대통령은 바로 다음날 류희림 위원을 위촉했다. 이로써 방심위 여야 구도는 3 대 6에서 4 대 4로 바뀌었다.
방심위 장악은 정민영 위원 해촉으로 대미를 장식했다. 국민권익위원회가 지난달 8일 오전 야권 추천인 정 위원에 대해 ‘징계가 필요하다’고 밝히자, 그날 오후 윤 대통령은 국외 순방 중에 인사혁신처가 올린 해촉안을 재가했다. 보수 언론단체가 이해충돌 방지 규정 위반으로 정 위원을 고발한 지 열흘 만이다. 정 위원 해촉으로 여야 구도가 4 대 3으로 뒤집히자, 방심위는 불과 30여분 뒤 류 위원을 위원장으로 선출했다. 류 위원은 위촉될 때부터 위원장 내정설이 돌았던 인물이다.
이렇듯 방심위 장악은 매우 짧은 시간에 전광석화처럼 이뤄졌다. 잘 짜인 군사작전을 방불케 했다. 그동안 이사진 재편을 통한 공영방송 장악은 정권이 바뀔 때마다 되풀이된 일이지만, 정권이 방심위까지 손을 댄 것은 전례가 없다. 총선은 시시각각 다가오는데 방송 장악 속도가 기대에 못 미치니 조바심이 났을 게다.
사실 방송을 길들이는 데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제재 수단을 지닌 행정기관의 심의다. 제재를 받게 되면 조직 전체에 불이익이 가는 만큼 보도나 프로그램 제작이 위축될 가능성이 크다. 조직 구성원들의 내면에 알게 모르게 자기 검열 기제가 작동하리라는 건 불문가지다. 특히 지금처럼 정권에 불리한 보도에 죄다 ‘가짜뉴스’ 딱지를 붙이는 상황에선 정부를 비판하거나 권력 주변의 의혹을 제기하는 보도에 부담을 느낄 수밖에 없다. 보도물에 대한 방심위의 심의를 두고 국가권력에 의한 검열이라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더욱이 방심위는 심의의 대상을 확장해 인터넷 언론의 보도에 대해서도 규제에 나서겠다고 밝혔다. 그 첫 타깃이 뉴스타파다.
지난 6일 방심위의 팀장급 직원 11명은 실명이 담긴 의견서를 내부 온라인 게시판에 올렸다. 이들은 의견서에서 “위원회의 ‘가짜뉴스 심의 추진’과 관련해 사회 각계각층에서 표현의 자유 침해, 언론 탄압 및 검열 논란, 나아가 민간 독립 심의기구로서의 위원회 존립 이유에 대한 근본적 의문을 제기하는 등 비판의 대상이 되고 있다”고 우려했다. 위원들이야 임기가 끝나면 그만이지만, ‘정치 심의’의 멍에를 짊어지게 될 직원들은 무슨 죄인가.
저널리즘책무실장·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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