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용현 | 논설위원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구속영장이 기각된 뒤에도 검찰은 무리한 수사에 대한 성찰 대신 법원 결정에 불만을 쏟아내며 또다른 가지치기식 수사를 벌이고 있다. 나아가 윤석열 대통령의 명예를 훼손했다며 언론의 대선후보 검증 보도에 형사처벌의 칼을 들이밀고 있다. 김건희 여사의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의혹에는 여전히 침묵하고 있다. 이 모든 게 ‘정치적’이다.
미국에서도 수사·기소의 정치화를 둘러싼 논란이 진행돼 왔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재임 시절 검찰의 독립성을 침해하는 발언을 노골적으로 했고 당시 법무장관도 수사에 개입하는 발언을 공개적으로 했다. 트럼프는 퇴임 뒤 수사를 받는 처지가 되자 이번엔 정치적 수사라며 반발하고 있다. 논란의 와중에 시민단체 ‘민주주의를 지켜라’(Protect Democracy)가 흥미로운 보고서를 내놨다.
‘민주국가에서 정치 지도자에 대한 수사·기소: 법치인지 권한남용인지 판별하는 방법’. 이 보고서는 정치인에 대한 수사·기소가 정당한지, 아니면 정치적인지를 언론이 평가할 때 고려해야 할 핵심 질문들을 제시한다. 이 단체는 권위주의의 위협으로부터 민주주의와 법치를 지키는 것을 목적으로 전직 연방검사 등 법률가들이 조직했으며 정치적으로 중도를 표방한다.
보고서에 제시된 핵심 질문들 가운데 몇가지를 국내 수사에 적용해본다.(이 질문들을 통해 현재 진행중인 트럼프에 대한 수사·기소가 정치적인지 여부를 논한 뉴욕타임스 칼럼
‘정치적 기소 여부를 어떻게 알 수 있나’도 참조하면 좋을 듯하다.)
“공개된 증거로 볼 때 혐의가 뒷받침되나?”
정치적 수사 논란이 있는 사안일수록 명쾌한 증거가 필요하다는 것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복잡한 법률적 쟁점이 있는 사안일수록 더욱 그렇다.
대장동 사건의 경우 ‘총 5503억원을 공공환수한 모범사례’(이재명 대표 주장)냐, ‘성남시에 4895억원의 손해를 끼친 배임’(검찰 주장)이냐는 양극단의 시각이 부딪치는 복잡한 사안이다. 그래서 이재명 대표가 ‘숨은 지분 428억원을 받기로 했다’는 의혹이 주목받았다. 이 혐의가 입증된다면 재개발 사업의 복잡한 구조를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이라도 범죄 혐의가 있다고 판단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검찰은 이 혐의를 기소 대상에 포함시키지 못했다. 이 대표가 부정한 이득을 취했다는 증거를 제시할 수 없었던 것이다.
백현동 사건이나 대북송금 사건도 영장실질심사에서 혐의를 소명할 증거가 제시되지 못했다.
“
같거나 비슷한 행위로 수사·기소된 전례가 있나?”
그동안 재개발 사업과 관련해 지방자치단체장이 형사처벌받은 사례들은 뇌물 등 부정한 이득과 관련돼 있다. 정책적 판단만을 문제삼아 처벌한 사례는 찾아보기 힘들다.
이 대표 영장실질심사에서 판사는 백현동 사건과 관련해 ‘시와 도시개발공사 사이에 배임이 문제된 전례를 못 찾겠으니 검찰이 찾을 수 있으면 자료를 내달라’고 주문했다고 한다.
예전에는 형사처벌하지 않던 사안을 특정 정치인에게만 적용하려 한다면 정치적 수사일 가능성이 높다는 게 ‘민주주의를 지켜라’의 지적이다.
이 질문은 반대로 물어볼 수도 있다. 처벌된 전례가 많은 행위인데도 권력과 가까운 인물에 대해선 수사조차 하지 않는다면? 이 또한 정치적이란 비판을 면하기 힘들다. 김건희 여사의 주가조작 의혹이 이런 경우다.
이런 질문도 가능하다. 같거나 비슷한 행위를 한 사람들 중 일부만 선택적으로 수사·기소한다면? 현재 진행 중인 ‘윤석열 후보 검증 보도’에 대한 검찰 수사가 그런 경우다. 대선 당시 윤석열 이외의 후보들에 대한 검증 보도 중에도 사실과 다른 것으로 판명된 것들이 있는데, 유독 윤석열 후보 검증 보도만 집중 겨냥하고 있으니 이 역시 정치적 수사라는 의심을 사기에 충분하다.
“
법원·배심원 등 검찰 밖의 기관이 수사·기소 내용을 인정했나?”
당연한 질문이다. 제3의 객관적 기관이 수사·기소 내용을 인정한다면 정치적이란 의구심은 줄어들 수 있다.
이 대표 구속영장은 법원이 기각했다.
반면 김건희 여사 의혹의 경우 김 여사 계좌들이 주가조작에 활용됐다는 법원의 판결이 잇따라 나온 바 있다.
“대통령을 비롯한 고위직의 정치적 인물들이 해당 수사·기소에 대해 언급하거나 개입하려 했나?”
윤석열 대통령은 후보 시절 이재명 후보와의 양자토론을 거부하며 “확정적 중범죄 후보와 토론은 어렵다”고 했다. 대통령이 된 뒤 이런 인식을 바꾸었다는 신호는 없었다. 여당도 “범죄 피의자와 회담할 수 없다”는 입장을 밝혀왔다. 한동훈 법무부 장관은 ‘잡범 발언’을 비롯해 이 대표를 겨냥한 공격적 언사를 쏟아냈다. 국회 체포동의안 설명 때도 역대 장관들과 달리 장황하고 구체적으로 피의사실을 공개했다. 이원석 검찰총장은 구속영장 기각에도 수사의 적절성을 되돌아보기는커녕 “법원과 입장이 다르다”고 강변했다.
이런 모습들이 결국은 정치적 수사라는 의구심을 키우는 요소다.
뉴욕타임스 칼럼은 ‘현 법무장관이 여당의 기대와 달리 트럼프라는 이름조차 입에 올리지 않는 등 트럼프 수사·기소에 대해 철저히 말을 아낀 점, 트럼프를 기소한 특검도 기소 발표 기자회견 외에는 사건에 대해 일절 침묵한 점’ 등을 트럼프 기소가 정치적이지 않다는 하나의 근거로 들었다.
이번 질문은 맨 처음 질문과도 연관돼 있다. 야당 정치인이 큰 죄를 저질렀다면 조용히 수사해 모두가 납득할 만한 결정적 증거를 찾아 기소하면 된다. 반대로 시끌벅적하게 수사를 벌이고 결국 결정적 증거도 내놓지 못한다면 정치적 수사라는 비판을 피할 수 없다.
“법무부·검찰 내부의 감시기구가 수사·기소의 부적절성을 지적하거나 우려를 표하고 있나?”
수사·기소는 법률적 판단을 포함하고 있고 일반에 공개되지 않는 많은 자료를 근거로 하기 때문에 수사·기소가 적정한 것인지 가장 잘 판별할 가능성은 수사기관 내부에 있다. 그래서 미국 법학계에서는 검찰의 정치화를 방지할 제도적 대안으로 법무부 감찰관실 등 내부 감시장치의 강화를 꼽기도 한다.
그러나 우리 법무부나 검찰에서 그런 장치가 작동할 수 있을까? 성매매나 성추행을 한 검사도 제대로 징계하거나 축출하지 못하는 게 현재 법무부·검찰의 감찰 기능이다. ‘제 식구 감싸기’의 유구한 전통이 검찰 문화를 지배하고 있다. 이재명 대표 수사를 지휘하는 검사의 비위 의혹이 국정감사에서 제기됐는데, 검찰총장을 비롯한 검찰 고위 간부들은 ‘왜 그런 문제를 국정감사에서 제기하느냐’는 어이없는 답변을 하는 게 우리 검찰의 수준이다.
“정권과 검찰이 태생적으로 얼마나 근접해 있나?”
이 질문은 ‘민주주의를 지켜라’가 제시한 질문들엔 없다. 그러나 지금의 한국적 상황이 미국에서도 벌어졌다면 당연히 포함됐을 질문이다.
검찰총장 출신 검사가 대통령이 되고 검찰 내 핵심 세력이 정치적 결사체처럼 대통령과 혼연일체가 돼 움직이는 지금의 상황은 어느 민주국가도 경험해보지 못한 것이다. 검찰의 정치적 편향에 대해 훨씬 더 엄밀한 감시와 추궁이 이뤄져야 하는 상황이다.
‘민주주의를 지켜라’는 보고서에서 정치적 반대 세력을 탄압하기 위한 ‘검찰의 무기화’는 민주주의의 쇠퇴요 권위주의의 출현 조짐이라고 밝히고 있다. 이를 막기 위해선 검찰의 독립성 확보가 필요하고, 대중에게 그런 믿음을 주는 게 필요하다고 지적하고 있다. 민주국가에서 중요한 정치적 인물을 수사·기소할 때는 시민 대다수가 납득할 만한 증거가 있었다는 점도 상기시키면서.
야당과 비판 언론은 전방위로 수사하면서 살아있는 권력의 의혹은 외면하는 검찰의 현실을 보며 더 깊은 질문과 씨름하게 된다.
“한국 검찰은 민주국가의 검찰인가, 아니면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검찰인가?”
piao@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