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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30% 대통령의 ‘무난한’ 레임덕 [아침햇발]

등록 2023-11-07 17:22수정 2023-11-08 02:43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달 31일 국회 시정연설을 마친 뒤 퇴장하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와 악수하고 있다. 연합뉴스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달 31일 국회 시정연설을 마친 뒤 퇴장하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와 악수하고 있다. 연합뉴스

강희철ㅣ논설위원

스승의 오만과 독선을 더는 좌시할 수 없었던 모양이다.

“떠받들며 동조하는 자는 친하게 대하고, 가부를 따져 의견을 개진하는 자는 소원하게 대하며, 잘못을 바로잡으려는 자에겐 후환이 따르지만 고분고분 순종하는 자에겐 재앙이 없으니, 이것이 바로 세상을 압도하는 큰 명성에도 불구하고 내면의 덕성이 병든 이유입니다.”

당대의 권신 송시열을 겨냥한 논고가 꼭 오늘의 얘기 같다. 이 ‘신유의서’(1681)는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달 경북 안동에서 자랑스럽게 언급한 10대 종조부 윤증이 우암의 편협한 인사와 독단, 불통을 준열히 비판한 글이다. 여론조사에서 윤 대통령에 대한 부정 평가 상단에 항상 들어 있는 이유들과 정확히 겹친다.

‘30% 대통령’ 윤석열을 만든 제1요인은 인사, 즉 용인이다. 조사(갤럽)에 고스란히 나타나 있다. 지난해 5월10일 취임 직후 52%였던 지지도는 두 달도 못 돼 28%(7월 4주)로 폭락했다. 앞의 숫자가 4, 3, 2로 차례차례 내려앉은 세번의 큰 변곡점에서 부정 평가 1위는 예외 없이 인사였다. 다른 모든 요인을 압도했다. ‘잘하고 있다’는 평가는 그 뒤로 지금껏 40%대를 회복한 적이 없다. 지난 3일 나온 ‘정부 출범 1년6개월 분야별 정책 평가’에서도 ‘공직자 인사’는 7개 분야 중 꼴찌(긍정 17, 부정 61)를 기록했다.

분명한 사전 경고가 있었으나, 반영되지 않았다. 취임 직후 ‘인사청문회에서 가장 용납할 수 없는 문제’를 묻는 질문에 사람들은 탈세·재산증식을 첫손(52%)에 꼽았다. 부동산(35%), 입시·취업 부정(32%), 전관예우(21%), 표절 등 연구부정(20%), 병역(15%)이 뒤를 이었다. ‘정답’이 만천하에 공개된 셈인데, 윤 대통령은 ‘오답’만 골라 썼다. 버티다 하는 수 없이 낙마로 정리한 장관(후보자 포함)들 가운데 하나 이상 저촉되지 않은 사람이 없다. 입법부의 청문보고서 채택 없이 임명한 18명에도 해당자가 여럿 있다. 전임 문재인 대통령도 34명이나 임명을 강행했지만, 5년 임기를 통튼 숫자다. 지금 속도면 신기록이 틀림없다.

심지어 사법부 수장마저 ‘오답’ 후보자를 골라 부결을 당했다. 그러고도 또 대학 동기동창을 헌법재판소장에 지명했다. 법무부의 인사검증은 대통령의 옹고집을 합리화하는 ‘알리바이’가 되고 말았다.

고위 공직만의 문제도 아니다. 이준석을 몰아내고 ‘체급’ 미달인 김기현을 국민의힘 대표로 앉힌 것도, 여당을 사당으로 만든 것도, ‘보궐선거 유발자’ 김태우를 초고속 사면해 같은 자리에 공천하도록 한 것도, 10·11 보선에 참패한 김기현을 굳이 유임시킨 것도 다 윤 대통령이 한 인사다. 그때마다 지지율은 속절없이 뚝뚝 떨어졌다. 대통령은 ‘대통령의 사람들’로 평가받는다는데, 인사가 그만 ‘망사’가 된 것이다.

사람들이 낯설어하는 ‘지인 집착형’ 용인술이, 대통령 몸엔 배어 있다. 검찰총장이 청와대, 법무부와 협의·확정해 내려보낸 ‘청내 인사안’을 뒤엎은 게 서울중앙지검장 때 일이다. 자기 사람들로 채운 인사안을 새로 짰다. 문재인 청와대와 잘 통하는 검찰 후배를 메신저로 내세워 대통령 재가도 받아냈다. 일개 지검장이 인사 명단을 자기 마음대로 바꾼 건 검찰사상 전무후무한 일이다. 2년 뒤 검찰총장이 되자 문제의 ‘윤석열 사단’을 더 높은 자리들에 포진시켰다. 검찰 울타리를 넘어 법무부 요직에까지 자기 사람을 심었다. 이윽고 대통령이 돼서는 같은 인사 패턴을 온 나라 고위직에 확대 적용하고 있다.

보선 참패 뒤 윤 대통령은 여러 차례 “반성”을 입에 올렸다. 사람들의 이목을 끌었다. 그러나 며칠 못 가 인책 사퇴한 ‘윤핵관’을 도로 여당 인재영입위원장에 앉혔다. ‘총선 직할+인사 불변’ 선언이다. ‘인간 윤석열’을 오래, 가까이서 봐온 검찰 출신들은 “그것 보라”고 했다. “그래도 변화 가능성…”을 물으면 웃고 만다. 30% 대통령의 ‘하던 대로’는 총선 패배-무난한 레임덕으로 이어지는 탄탄대로다.

“어리석고 미혹한 나로서는 끝내 이해할 수 없네.” 송시열이 윤증에게 보낸 답글엔 성찰 대신 조롱이 가득하다. 현실에서도 변화는 없었다. 이른바 ‘예송논쟁’ 때부터의 정적(윤휴)이 역신으로 몰려 사사를 당할 때 ‘사문난적’(이단)의 낙인을 찍고, 노론의 영수가 되어서는 사나운 당파 투쟁을 멈추지 않았다. 하지만 그 역시 정적과 같은 운명을 피하지 못했다.

hcka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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