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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KBS 장악인가 정상화인가, 그 간단한 기준

등록 2023-11-29 07:00수정 2023-11-29 08:10

‘더 라이브’ 유튜브 갈무리
‘더 라이브’ 유튜브 갈무리

[세상읽기] 임재성 |  변호사·사회학자

이 글의 목적은 하나다. 지금 한국방송(KBS)에서 벌어지는 일들이 ‘방송 장악’인지 ‘방송 정상화’인지 구분하는 것.

내 편/네 편 대립 한가운데 있는 권력을 균형감 있게 평가하긴 어렵다. 그래도 합의할 수 있는 기준은 있다. 그 권력이 당대에 존재하는 절차를 지키는가. 그 권력이 자신의 행위를 온전히 설명하는가. 전자가 법치, 후자가 책임이다. 이 최소한의 기준도 지켜지지 않는다면, 권력은 폭력과 다르지 않다.

지난 13일 박민 사장 취임 뒤 한국방송에서 벌어진 대표적인 일은 ①시사프로그램 ‘더 라이브’ 긴급 폐지 ②메인뉴스 포함 보도·시사프로그램 진행자 대거 교체 ③사장과 메인뉴스 앵커를 통해 연이어 이루어진 ‘불공정 방송 사과’였다. 이 중 ‘더 라이브’ 폐지를 중심으로 뜯어보자.

사장 취임 전날인 12일(일) 밤, ‘더 라이브’ 일주일 결방이 갑작스레 통지되었다. 이 수상한 결방은 며칠 뒤 일방적 폐지 결정으로 이어졌다. 그 시기 ‘더 라이브’ 제작진은 안으로는 경영진을 향해 “군사작전”, ‘시청자와의 약속을 쓰레기통에 버리는 결방사태’라며 항의했고, 밖으로는 “보다 정확한 결방 사유가 확인되는 대로 재공지하겠습니다”라며 시청자들에게 사과했다. 피해자가 피해자에게 사과하는 비극이었다.

사장이 바뀌었으니 프로그램 하나쯤 바로 날릴 수 있는 거 아니냐고? 아니다. 그렇게 못 하도록 절차가 쌓여왔다. 그 절차에 2023년 대한민국 언론 자유와 독립이 담겨 있었다.

한국방송 단체협약 제31조 “공사는 프로그램 개편 전에 제작진과 협의하고 프로그램 긴급 편성 시에는 교섭대표 노조에게 통보하여야 한다.” 의무 규정이지만, 협의도 통보도 없었다. 규정 위반이다. 단체협약 제22조 제3항 “편성·제작·보도 책임자는 실무자의 의견을 충분히 존중하며, 합리적 절차와 방식에 따라 의사결정을 내려야 한다.” 한밤중의 일방적 통보가 ‘충분한 존중’으로 인정될 수는 없다.

그뿐만이 아니다. 한국방송 방송편성규약 제7조 제3항에 따라 제작 실무자는 ‘편성·보도·제작상의 의사결정 과정에 직간접적으로 참여하는 권리’를 갖는다. 실무자는 참여 권리를 행사하긴커녕, 결정의 이유조차 듣지 못했다. 방송편성규약은 법률(방송법)에 따라 제정된 제작 자율성 보장을 위한 방파제다. 이 방파제가 ‘더 라이브’ 제작진의 말처럼 군사작전하듯 깔아뭉개졌다.

대표 시사프로그램의 긴급 결방과 일방적 폐지에 관해 한국방송 경영진은 제대로 답변하고 있나? 경영진은 결방 3일째인 15일에야 “‘대하사극 고려거란전쟁’ 등 신규 프로그램 ‘붐업’ 차원에서 ‘더 라이브’는 쉬어가게 됐다”고 제작진에게 결방 사유를 밝혔다. 침묵보다 더 나쁜 게 거짓말이다. 신임 사장 임명 대통령 재가가 떨어지던 그날 그 한밤중에 ‘붐업’ 필요성이 불현듯 생겼나 보다.

폐지 이유는 더 허술하다. “2티브이(TV)에 맞지 않는다”란다. 그럼 1티브이로 보내면 될 일이다. ‘더 라이브’는 보도·시사·다큐를 중심으로 방송하는 한국방송 1티브이에서 3년 반 넘게 방영하다 드라마·예능·교양이 중심인 한국방송 2티브이로 지난 6월 이동했다. 그 과정에서 2티브이 색깔에 맞춰 많은 변화를 시도했고, 밤 11시 편성이었음에도 준수한 시청률을 쌓아가는 중이었다. 경영진은 뭐가 2티브이와 맞지 않는지, 그 ‘맞지 않음’이 얼마나 중대하기에 4년 된 프로그램 마지막 방송도 못 하게 비명횡사시키는지 설명하지 않았다. 언론인은 질문하는 사람들 아닌가. 그 언론인들이 자기 회사에서도 답을 못 받고 무시당하는데, 도대체 어디 가서 질문할 수 있을까.

이런 사건들이 정권이 바뀔 때마다 동일하게 반복되는 것처럼 보이지만, 아니다. 지금이 최악이다. 이명박 정권 시기 정연주 사장 쫓아내고 취임한 이병순 사장 역시 당시 시사프로그램 ‘시사투나잇’을 폐지하고자 했다. 그러나 2008년 8월 취임한 이병순 사장 및 경영진이 ‘시사투나잇’을 폐지하기까지 2개월이 걸렸다. 이사회에서 승인받은 가을개편안을 통해서였고, 진행자는 “자본과 정치권력을 비판해왔다. 공영방송 시사프로그램 가치가 바로 이런 것”이라고 마지막 인사라도 할 수 있었다.

절차를 어겼고, 설명도 못 한다. 폭력이다. 정상화가 아니라 장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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