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8월20일 서울 용산역광장에서 열린 전국이주노동자대회에 참여한 이주노동자들. 강창광 선임기자 chang@hani.co.kr
“한국의 드라마나 케이팝 등에 매료돼 한국에 왔겠지만, 현실은 그렇게 아름답지 않습니다. 한국에 되도록 오래 머물지 않길 바랍니다. 취업을 하면 돈 모아서 최대한 빨리 한국을 떠나세요.”
캐나다 출신으로 서울의 한 대학교에서 교직원으로 근무했던 한 이주민은 올해 초 한국 취업을 희망하는 외국인 유학생들을 대상으로 하는 특강에 강사로 나서서 이렇게 말했다. 그는 캐나다의 한 공립대학을 졸업하고 한국에서 대학 교직원으로 15년 넘게 근무했지만 끝내 한국 사회에 적응할 수 없었다. 외국인 계약직 노동자라는 이유로 노동조합에 가입할 수 없었고 개별적으로 임금협상을 할 때마다 귀국을 고민했다고 한다. 그의 분노가 폭발한 건 코로나19 유행 때였다. 정부는 수차례에 걸쳐 긴급재난지원금을 지급했지만 영주권자와 결혼이민자를 제외한 대부분의 이주민에겐 주지 않았다. 그는 결국 한국을 떠났다. “캐나다에서 살았더라면 가족을 떠나지 않아도 됐고, 안정적인 연금을 받으며 살 수 있었을 텐데 후회된다”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법무부의 외국인 정책은 ‘우수 인력 유치’와 ‘불법(미등록) 체류자 엄정 단속’ 두가지로 요약된다. 법무부는 특히 미등록 체류자 단속을 강화하고 있다. 올 한해 세차례에 걸쳐 정부합동단속을 실시했고, 단속 때마다 수만명의 이주민을 추방(또는 자진출국)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미등록 체류자는 계속 늘고 있다. 정부 1차 합동단속 시기였던 3월의 국내 미등록 체류자는 41만4045명(법무부 통계월보 기준)이었지만 10월 기준으로는 43만389명이다.
노동계에선 한국 노동시장에서 수요가 있기 때문에 미등록 체류자 수가 줄지 않는다고 분석한다. 우다야 라이 이주노동자노조 위원장은 “정부가 강하게 단속해도 미등록 체류자가 계속 증가한다는 사실은 한국 정부의 외국인 정책이 실패했음을 방증한다”며 “단속·추방이 아닌 체류권을 보장할 수 있는 방법을 고려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정부는 국내에 이미 거주하는 43만여명의 미등록 체류 이주민을 두고 내년에 16만5천명의 이주노동자를 추가로 데려오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입국한 이주노동자들은 전국에 배치되는데 한국인과의 융화 등 적응에 어려움을 겪는 일이 적지 않고 기한이 지나 추가로 미등록 체류자가 되는 경우도 많다. 법무부 자문기구인 이민정책위원회 소속 한 위원은 “일단 이주노동자를 데려와서 지방자치단체에 뿌려주고 이후 발생하는 문제는 기업과 지자체의 재량에 맡기자는 분위기”라고 전했다.
상황이 엄중하지만 정부 대응은 안이하다. 지난해 11월25일 출범한 법무부 이민정책위원회는 최근까지 단 한차례의 회의도 열지 않다가 올해 국정감사에서 이런 지적을 받은 뒤에야 한차례 회의를 열었을 뿐이다. 올해 초 법무부는 업무보고에서 ‘상반기 중 이민 정책의 컨트롤타워가 되는 이민청을 설립하겠다’고 했지만 아직까지 설립안도 내놓지 못했다. ‘재한외국인 처우 기본법’에 따라 법무부 장관이 5년마다 수립하는 4차 외국인정책 기본계획(2023~2027년)도 감감무소식이다.
법무부는 정책 목표대로 외국인 우수 인력을 유치하고 미등록 체류자를 줄일 수 있을까? 남은 시간이 많지 않다.
이재호 법조팀 기자 ph@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