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해 | 한겨레말글연구소 연구위원·경희대 교수
사는 게 가짜 같을 때가 있다. ‘가짜’는 ‘진짜가 아닌 것’이다. 맞다. 하지만 어떤 게 진짜가 아니어야 가짜라고 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진짜 총’의 자격은? 총의 모양을 띠고 손잡이와 방아쇠가 있고 쇠로 만들었으며 총알이 날아가 사람을 죽이는 데 쓴다. 그렇다면 ‘가짜 총’은 모양은 같더라도 사람을 죽이는 기능이 없거나 플라스틱으로 만든 것이리라.
하지만 인간의 상상력은 무한대. 모양이 달라도 ‘가짜 총’이 될 수 있다. 강도가 ‘지갑을 내놓지 않으면 쏴 버릴 거야’라고 하면서 뒤통수에 총 대신 볼펜을 들이댄다면, 지갑을 꺼내지 않을 재간이 없다. 볼펜이 총. 주먹을 쥔 채로 엄지와 검지를 곧게 뻗어 ㄴ자를 만들어 ‘빵’ 하고 소리를 내면 총이 된다. 손가락이 총. 모양이 달라도 ‘진짜 총’인 경우도 있다. 007시리즈에서 제임스 본드에게 온갖 무기를 만들어주는 큐(Q)는 겉보기엔 우산인데 총알이 발사되는 총을 선물한다. 우산이 총.
사람의 필요에 따라 만들어 쓰는 것에는 ‘가짜’보다는 ‘인공’이나 ‘인조’라는 말을 쓴다. 진짜가 아니라는 점에서 가짜가 분명하지만, 인간이 계획적이고 인위적으로 이 세계에 개입한다는 걸 강조한다는 점에서 인간적 의지가 묻어난다. 인공위성, 인공관절, 인공강우, 인공폭포, 인조잔디…. 모두 원래의 것과는 다르지만, 기능이 비슷하고 인간 세계를 확장한다는 점에서 환호하기도 한다. 게다가 ‘인공호흡’은 얼마나 간절한 인간적 몸부림인가.
나고 죽는 게 자연의 본질인데, ‘인공’은 그런 성격이 없다. 낡아 폐기할 뿐, 죽지 않는다. 그렇다면 사람의 힘으로 만든 ‘인공지능’이 ‘인간지능’의 무엇에 육박하고 있는지 묻는 것은 인간의 본질을 묻는 것과 다르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