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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폴란드 국민이 행동으로 보여준 것 [코즈모폴리턴]

등록 2023-12-15 09:00수정 2023-12-15 09:05

2021년 10월10일 폴란드 바르샤바에서 시민들이 폴란드 국기와 유럽연합 깃발을 함께 들고 헌법재판소의 반유럽연합 성향 결정에 항의하고 있다. 바르샤바/AFP 연합뉴스
2021년 10월10일 폴란드 바르샤바에서 시민들이 폴란드 국기와 유럽연합 깃발을 함께 들고 헌법재판소의 반유럽연합 성향 결정에 항의하고 있다. 바르샤바/AFP 연합뉴스

신기섭│국제뉴스팀 선임기자

폴란드에서 13일(현지시각) 새 정부가 출범하면서 반유럽연합(EU) 성향의 권위적인 우파에서 친유럽연합 성향으로 정권교체가 마무리됐다. 새 총리는 10월15일 총선에서 30.7% 득표로 2위를 한 ‘시민연단’의 도날트 투스크 전 총리다. 지난달 16일 스페인에서 페드로 산체스 총리가 이끄는 사회노동당 정부가 재집권에 성공한 데 이어, 다시 한번 총선 1위 정당을 따돌리고 2위 정당 중심의 연립정부가 구성된 것이다.

두 나라 사례의 공통점은 우파 정당이 극우를 뺀 주요 정당들에 따돌림당해 집권에 실패했다는 것이다. 스페인의 경우는 야당인 국민당이 극우 정당인 ‘복스’와 손잡았다가 외면당했고, 폴란드에서는 8년 동안 집권해온 ‘법과 정의당’(35.4%)이 같은 처지가 됐다.

그동안 마테우시 모라비에츠키 총리가 이끌어온 폴란드 정부는 2018년부터 사법부에 대한 정치권의 개입을 강화하면서 법치주의 훼손 논란을 불렀다. 법관 지명 권한이 있는 국가사법평의회(NCJ) 위원을 하원에서 뽑도록 한 조처가 대표적이다. 이어 2019년 12월에는 대법원에 판사 징계위원회를 설치했다. 정부에 비판적인 판사들을 겨냥한 것이라는 비판이 나왔다.

이는 폴란드 국내는 물론 유럽연합 차원에서도 논란이 됐다. 유럽연합은 폴란드 정부를 유럽연합 최고법원인 유럽사법재판소에 제소했고, 사법재판소는 2019년 이후 폴란드의 사법구조 개편이 위법이라는 결정을 잇따라 내놨다.

폴란드 정부는 이런 결정들을 수용하지 않았다. 게다가 폴란드 헌법재판소는 2021년 7월과 10월 유럽연합 조약이 폴란드 헌법에 합치하지 않으며 폴란드 국내법이 유럽연합법에 우선한다는 결정 등을 잇따라 내놨다. ‘법률적 유럽연합 탈퇴’나 다름없는 결정이다.

폴란드 국민은 지켜보기만 하지 않았다. 2021년 10월10일 수도 바르샤바 등 전국 주요 도시에서는 헌재 결정을 비판하는 시민들이 폴란드 국기와 유럽연합 깃발을 들고 시위를 벌였다. 바르샤바에서만 10만명가량이 거리로 나섰다. 폴란드의 유럽연합 탈퇴 가능성을 걱정해, 유럽연합 지지를 행동으로 보인 것이다.

2020년 10월22일 폴란드 헌재가 임신중지(낙태)를 사실상 금지하는 결정을 내렸을 때도 대규모 항의시위가 벌어졌다. 올해 들어서도 6월4일과 10월1일 민주주의 수호를 위한 대규모 반정부 시위가 이어졌다. 총선을 2주 앞둔 10월1일 시위에는 100만명가량이 참여한 것으로 보도됐다.

법과 정의당과 이 당 지지자들은 이런 대규모 시위를 야당의 선동 탓으로 돌릴지 모르지만, 국민의 행동이 야당연합의 집권을 가능하게 했다는 것만은 부인하지 못할 것이다. 폴란드 국민은 유권자가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내면 정치를 얼마든지 바꿀 수 있다는 걸 다시 한번 확인시켜줬다. 총선을 넉달 앞둔 우리도 잊지 말아야 할 사실이다.

marishi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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