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 알파벳의 첫 글자인 알파(α)는 ‘처음’이란 상징에서 여러 의미가 파생한다. 동물행동학에서는 집단 내 우두머리 개체를 ‘알파’라 칭하고 천문학에서는 특정 별자리에서 가장 밝은 별에 ‘알파’란 이름을 붙인다. 소프트웨어 개발에서 ‘알파 버전’은 초기 개발 단계, 즉 ‘도전과 혁신’을 뜻하기도 한다. 수학에서는 미지수다.
2016년 3월, ‘알파고’가 등장해 이세돌 9단을 이겼을 때 인간이 느낀 복잡한 심경도 이 ‘알파’라는 단어와 무관하지 않았다. 당시 이세돌 9단은 알파고와의 대국에 대해 “인간과 인공지능 대결의 첫걸음”이라고 말했다. 영국의 천재 소년 데미스 허사비스가 2010년 세운 인공지능 개발사 ‘딥마인드 테크놀로지’가 2014년 구글에 인수돼 ‘구글 딥마인드’가 된 뒤 내놓은 작품이 알파고였다.
알파고 이후 바둑계에는 인공지능 바람이 불었다. 2018년 5월 페이스북도 ‘엘프고’를 공개했고 릴라제로, 미니고 등이 널리 쓰였다. 알파고와 이세돌 9단의 대결 당시 에릭 슈밋 구글 회장은 “경기가 끝난 뒤 인간은 더 똑똑해지고 더 나은 세상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바둑 기사들도 더 ‘스마트’해졌지만 오묘한 부분이 있다. 실력은 늘었지만 창의성은 줄어 “개성은 없어도 되지만 약점이 있으면 안 된다”는 새로운 ‘알파의 기준’이 작동하기 시작했다.
2023년은 7년 전 이세돌 9단만 단독으로 경험할 수 있었던 충격과 전율을 전세계 대중이 함께 느낄 수 있었던 첫해였다. 지난해 말 출현한 ‘챗지피티’(ChatGPT)가 누구나 할 수 있는 ‘대화’(Chat)의 형태로 ‘인공지능과의 대국’을 경험할 수 있게 해줬기 때문이다. 올해가 충격을 경험한 ‘시작점’이었다면 내년부터는 ‘인공지능 사용이 일반화되며 현실세계에 변화를 주는 세상’이 될 가능성이 높다. 알파고가 그러했듯 말이다.
새로운 세계가 열리며 새로운 세대도 온다. 2010년 이후 출생자들인 알파 세대다. 한동안 모든 분야의 열쇳말로 떠올랐던 ‘엠제트(MZ: 밀레니엄 세대와 제트(Z) 세대를 합친 말) 세대’ 이후에는 ‘알파 세대’가 언급될 것이다. 알파벳의 끝(Z)에서 새로운 시작(A)으로 나아가는 물결이다. 새로운 물결의 맨 앞에는 스마트폰과 엘티이(LTE), 인공지능을 시작점으로 하는 세대가 가장 앞에 선다.
임지선 빅테크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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