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부 장·차관, 이해찬 총리
최대한 선별하자는 4% 지지
“과외 등 막으려면 더 두텁게”
청와대·여당은 7% 주장 ‘팽팽’
안병영 장관 “더는 힘도 없고…”
갑자기 퇴장하면서 사표 내놔
교육관료 주장 관철…개혁 무산
일류대 이기주의 등이 그 배경
경로별 입시·교사별 평가 등
개혁 위해 수능등급제 하잔 건데
결국 등급제만 남는 ‘최악 결과’
이럴 바엔 등급제도 안 했어야
2004년 10월28일 서울 세종로 정부청사에서 안병영 교육부 장관이 중3학생들이 입시를 치르는 2008학년도 대입제도 개선방안을 발표하고 있다. 강창광 선임기자 chang@hani.co.kr
2004년 8월26일(목) 제주 지역혁신 토론회 가는 비행기에서 천호선 비서관이 오더니 대통령이 문재인 수석과 나를 찾는다고 해서 앞칸으로 갔다. 입시제도를 의논하러 부른 것이었다. 노무현 대통령이 “이번 대입제도 안은 교육혁신위와 교육부가 잘 협의해서 만든 거 아닙니까?” 묻기에 내가 답했다. “예. 그렇습니다. 처음에는 양자 간 견해차가 컸는데 수없이 협의한 끝에 중간쯤 합의해 만든 안입니다. 그리고 어제 교사별 평가를 중장기적으로 도입한다는 표현을 넣어달라고 안병영 장관에게 요청했더니 처음에는 난색을 보이다가 결국 넣었습니다. 이해찬 총리도 찬성하면서 한 5년 준비하면 가능할 거라고 합니다.”
“아 그 문제를 놓칠 뻔했는데 잘 챙겨줘 고맙습니다. 교과별 평가보다 교사별 평가가 옳은 방향 아니겠습니까. 다양성, 창의성을 살리는 교육이 가능하니까요”라며 노 대통령이 수긍했고, 문재인 수석도 동의했다. 내가 “지금처럼 교과별 평가를 하면 과외가 위력을 발휘하고, 여러 교사 중 제일 ‘농땡이 교사’가 가르친 범위에서 출제하게 되므로 열성을 갖고 가르치는 교사들의 사기를 죽이게 됩니다. 교사별 평가가 확실히 더 좋은 방법입니다”라고 다시 한번 강조했다.
수능 9등급 문제도 화제에 올랐다. 노 대통령이 “9등급은 좋은데, 하려면 그냥 9분의 1씩 자르면 될텐데 무슨 4%, 7%로 복잡하게 하느냐. 결국 일류대에 봉사하겠다는 것”이라고 하니 문재인 수석도 동감을 표시했다. 내가 이렇게 말했다. “스카이(SKY) 대학이 웬만한 수준이면 입학시켜 잘 키울 생각을 해야 하는데 욕심을 부리는 게 문제입니다. 알짜 중의 알짜만 뽑아가겠다는 욕심에서 1등급을 4%로 최소화하자는 주장을 합니다. 논술, 면접 그런 것도 사실 다 필요 없고 과외만 부추길 뿐입니다. 교육부는 4%, 7%가 교육이론에 있다고 주장하는데 교육학자에게 물어보니 아니라고 합니다. 지나친 변별력에서 벗어나는 게 과외 줄이기의 핵심입니다.” 이런 대화를 주고받는 사이 비행기가 제주공항에 도착했다.
8월27일(금) 12시 안병영 장관과 점심을 먹었다(왕돌잠). 안 장관이 “김민남 교수는 사람은 참 양심적이고 좋은 분인데 정책 마인드가 없어서 힘들다. 전성은 위원장하고는 아무 문제 없다”고 말했다. 장관 이야기를 들으니, 교육부 관료들의 개혁파 솎아내기가 참으로 집요하구나 싶었다. 정책 마인드가 없는 게 아니고 정책 철학이 다른 것이다. 양심적인 김민남 선임위원은 깨끗이 사표를 던졌다. 그러면서 개혁이 좌초했다.
9월14일(화) 10시 최병선 신행정수도위원장 임명장 수여식 뒤 차를 마시며 노 대통령이 말했다. “전임 김안제 위원장은 참 아깝다. 쓸데없이 6·25 직전 애치슨 라인을 연상시키는 ‘방어선’ 운운해서 서울시민들 불안케 하는 바람에 낙마했다. 윤덕홍 장관도 아깝다. 운이 없어서 네이스 때문에….”
9월30일(목) 9:30 수석회의(집현실)에서 이원덕 사회수석이 2008년 대입제도 공청회 결과를 보고하자, 노 대통령이 “내신 중심 기조로 가고 논술, 면접은 학교교육 중심으로 출제해 과외가 필요 없도록 유도해야 한다”고 말했다. 내가 “각 대학이 논술, 면접을 강화하면 2008년 입시제도와 모순이다. 대학은 지나친 변별력 요구를 자제해야 하고, 논술, 면접은 장차 없애는 것이 옳다”고 주장했다. 문재인 수석도 “대학이 논술, 면접을 통해 내신의 변별력을 무력화하고 실질적으로 고교등급제 효과를 노린다”고 비판했다. 노 대통령이 “내신 비중을 높이는 것이 옳고, 9등급 정도면 변별력은 충분하지만 대학에 입시 자율권을 주는 게 옳다는 국민 공감대가 있어 논술, 면접을 없애기가 쉽지 않다. 앞으로 연구 검토하자”고 결론내렸다.
‘참교육을 위한 전국학부모회’ 소속 학부모들이 2004년 10월5일 서울 종로구 청운동 새마을금고 옆 공원에서 2008학년도 이후 대입제도 방안의 개선을 촉구하는 단식농성에 들어가기에 앞서 구호를 외치고 있다. 이들은 ‘수능 9등급제’와 ‘교과단위 평가’를 중심으로 하는 2008년도 이후 대입제도 방안과 관련해 ‘수능을 폐지하거나, 등급을 5등급 이하로 조정하고, 반인권적인 고교등급제를 시행한 대학을 특별감사할 것’ 등을 요구했다. 한겨레 자료사진
10월25일(월) 오후 5:10~7:20 2008년 대입 수능 9등급 중 1등급의 두께를 정하는 회의가 열렸다(총리 공관). 이해찬 총리, 한덕수 국무조정실장, 이기우 총리 비서실장, 교육부에서는 안병영 장관, 김영식 차관, 이수일 학교정책실장, 이종갑 대학지원국장, 그리고 전성은 위원장, 박도순 교수, 청와대에서는 문재인, 이원덕과 내가 참석했고, 열린우리당 정봉주 의원이 이례적으로 참석했다. 전성은 위원장이 평소 스타일과 달리 강하게 1등급 4%를 반대했다. 박도순 교수도 의외로 강하게 7%를 주장했다. 문재인 수석이 지방 거점국립대에도 1등급이 갈 수 있도록 7%로 하자고 주장했다. 정봉주 의원이 국·영·수 세 과목 모두 1등급 받는 수험생은 5천명에 불과하다며 7%를 강하게 주장했다. 국회 교육위 소속 열린우리당 의원 9명 중 조배숙 의원만 빼고 모두 7%를 지지한다고 말했다.
나는 참석자 중 유일하게 1등급 11%(1/9 균분)를 주장했다. 서울대 임종철 교수의 ‘서울대 입학생도 4등급 중 1등급(상위 25%)이면 충분하다’는 주장을 인용했다. 1등급을 작게 정할수록 과외가 늘어날 것이니 크게 잡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안병영 장관, 김영식 차관, 이수일 실장, 이기우 총리 비서실장은 1등급 4%를 주장했다. 이해찬 총리는 안 장관 주장 지지를 표명하고는 다른 약속이 있어 자리를 떴다. 결국 ‘교육부·총리실 4%’ 대 ‘청와대·국회 7%’의 대결이 됐다.
총리가 나간 뒤 얼마 안 돼 이원덕 사회수석이 중립을 선언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4%, 11%는 논리적으로 근거가 있지만 7%는 근거가 약하다. 이 문제는 부총리가 책임지고 결정하시라.” 그러자 안 장관이 흥분한 어조로 말했다. “더는 능력도 없고 기력도 없고…. 이것밖에 할 이야기가 없습니다.” 하더니 인사도 없이 벌떡 일어서 나가면서 “이 수석 나 좀 봅시다”라고 했다. 모두 장관이 갑자기 왜 저러나 의아해 쳐다봤다. 조금 뒤 돌아온 이원덕 수석이 말하기를 안 장관이 미리 써온 사표를 주기에 놀라서 만류했는데 기어코 찔러주고 가버렸다고 한다. 장관이 나한테도 불만이 많더라고 했다. 안 장관은 윤덕홍 장관 후임으로 온 지 1년1개월 만에 이렇게 사퇴했다. 안 장관은 평소 온화하고 합리적이지만 때로는 감정적으로 흘러 대화, 타협이 안 됐다. 나라를 위해 더 좋은 방안을 찾는 과정에 의견 차이가 있는 것인데, 그런 것을 못 견뎌 하는 것 같았다.
이런 우여곡절 끝에 2008년 대입제도에서 교육혁신위가 제안했던 경로별 입시, 교사별 평가, 교육이력철 같은 개혁적 제안이 죄다 무산됐다. 이런 개혁을 위해서는 수능 비중을 낮추려 등급제로 바꾸자고 한 것인데, 교육혁신위 제안을 교육부가 몽땅 거부하면서 수능 등급제만 남았다. 당시 서울대 경제학부 이준구 교수가 수능 등급제를 비판하며 점수제가 낫다는 글을 써 사회적 반향을 불러일으켰는데 그 지적이 맞다. 개혁의 본체는 사라지고 그 부속품인 수능 등급제만 받아들여 최악의 결말을 맞았다. 수능 1등급 두께도 교육부가 원하는 대로 4%로 갔다. 세칭 일류대의 엘리트주의에 봉사하고 과외를 부추기도록 한 명백한 실패다. 결국 일류대의 이기주의와 교육부의 보수주의가 우리나라 교육개혁의 장애물이다.
안병영 장관은 사표를 던지면서까지 교육부 관료들 주장을 관철했다. 김영삼 정부 때 개혁적이던 안 장관이 참여정부 때 왜 달라졌는지 알 수 없다. 윤덕홍 장관이 계속 자리를 지켰더라면 교육혁신위의 개혁적 입시제도가 탄생했을 가능성이 매우 컸다. 그래서 네이스(NEIS·학교행정정보시스템) 파동으로 장관을 흔들었던 전교조가 원망스럽다. 참여정부의 교육혁신위는 큰 뜻을 품고 역사상 최초로 올바른 교육개혁 방향을 잡았으나 허망한 좌절로 끝났고, 그 선봉장이었던 김민남 교수는 억울하게 밀려났다. 다음 진보정부는 참여정부의 실패를 거울삼아 그런 실수를 반복하지 않기 바란다.
필자 이정우: 1950년 대구에서 나고 자랐다. 1974년 서울대 경제학과 학·석사를 마친 뒤 1983년 미국 하버드대학에서 경제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1977~2015년 경북대 경제학과 교수로 재직한 뒤 명예교수를 맡고 있다. 2003~05년 참여정부 초대 정책실장, 정책기획위원장 겸 정책특보를 지냈다. 공정하고 평등한 사회를 만들고자 끊임없이 공부하는 경제학자를 자임하고 있다. ‘참여정부 천일야화’ 제목은 그의 친필이다. opinion@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