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태호 정책금융팀 기자
아침햇발
공자가 제자들에게 말했다. “각자가 생각하는 것을 솔직히 말하라.” 제자들은 나라와 백성을 위해 일하고 싶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잠자코 있던 증석은 이렇게 말했다. “늦은 봄날, 봄옷을 차려 입고 들놀이를 했으면 합니다. 아이들 몇 명과 함께 섞여, 물가를 거닐고 바람을 쐬고 노래를 부르며 돌아올까 합니다.” 공자는 무심코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나도 너와 똑같은 생각이다.”(〈논어〉)
계백은 김유신과의 마지막 결전을 앞두고, 부하들과 함께 죽음으로써 조국 백제에 대한 마지막 충성을 다하려 한다. 그런데 문득 “엄니”를 부르며 흐느끼는 병졸 ‘거시기’를 본다. “누군가 이 싸움을 전할 사람 하나쯤은 있어야겠지.” 계백은 거시기를 고향으로 돌려보낸다. 그리고 얼굴에 피칠갑을 한 백제군은 장렬히 전사한다. 영화는 거기서 끝나지 않는다. 끝없이 펼쳐진 호남 또는 나주평야에서 거시기가 “엄니~”를 외쳐 부르고, 논일하던 엄니(전원주)는 아들을 얼싸안고 기뻐한다. 나라는 망했는데 말이다.(영화 〈황산벌〉)
아들이 정치활동을 한다는 이유로 파혼당하자, 최운혁의 어머니는 땅을 친다. “김구가 되면 어떻고, 여운형이 되면 또 어떻고, 이승만이 되면 또 어떠니? 나라가 두 동강이 나면 어떻고, 세 동강이 나면 또 어떠냐? 그게 우리하고 무신 상관이 있니?”(드라마 〈서울, 1945〉)
이 순간, 책을 읽던 지하철 한켠에서, 컴컴한 영화관에서, 그리고 거실에서, 가슴이 일렁였다. ‘공자도 피곤한 사내였구나’ ‘나라는 망해도 밥은 먹어야 하는구나’ ‘사람들에게 중요한 건 가족이지, 나라가 아니구나’ 하는 생각이 무슨 ‘깨달음’처럼 다가왔다.
역사는 공자, 계백, 그리고 최운혁이 만들어 왔겠지만, 삶은 어머니 모시고 농사 짓던 이름없는 ‘거시기’들, 장바닥에서 국수 말던 최운혁 어머니가 이어온 것 아닌가? 산다는 건 대의명분, 우국충정을 위한 ‘수단’이 아니라, 여행스케치 노래가사 같은 건 아닐까?
선거날 아침, 무정부주의자처럼, 허무주의자처럼 참 불온한(?) 말을 한다. 선거는 이미 끝났다고들 한다. 그래서인지, 후보들이 마지막 유세를 펼치는데, 건네는 명함을 건성으로라도 받는 사람은 셋에 하나도 안 된다. “태상의 정치는 백성들이 임금이 있다는 사실을 모르는 것”(〈노자〉)이라 했는데, 분명 지금이 ‘태상의 정치’는 아닐 터인데. 이를 무관심, 정치 냉소주의로 폄하할 수 있을까? ‘선거의 일상’이 되고 있는데.
이제 1987년 같은 선거를 맞을 수 없을지도 모른다. 예전 선거는 우리들에게 때론 ‘모든 것’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그저 ‘한 부분’일 뿐이다. 아이 키우기 힘든 세상이라며 ‘저출산’으로 저항하듯, 아무리 기다려도 ‘백마 타고 오는 초인’이 오지 않는다면 ‘안 오는가벼’ 하며, 무릎 먼지 툭툭 털고 사람들은 광야를 떠난다. 목 놓아 울어본들 내 입에 뜨거운 밥숟가락 대신 넣어주는 사람 없는 차가운 사회에서 살아가려면 ‘쿨’해야 하니까. 누가 이긴들, 누가 진들, 내 삶이 휙휙 달라질 만큼 세상이 호락호락하지 않다는 것도 너무도 잘 알아버렸다.
한편으론 자업자득이라 한숨을 내쉴 법도 하지만, 한편으론 사회가 그만큼 다원화하면서, 사람들이 가족과 같은 ‘작은 것’의 소중함을 느껴가는 긍정적인 신호로 받아들일 부분은 없을까?
사람들은 이제 ‘사막을 아름답게 하는 그 어딘가에 있는 우물’(〈어린왕자〉 중)을 강금실이나, 오세훈이 아닌, 어쩌면 공자가 소망했던 늦봄 나들이에서 찾는 건 아닐까? 사족. 그래도, 투표는 하자. 권태호 정책금융팀 기자 ho@hani.co.kr
사람들은 이제 ‘사막을 아름답게 하는 그 어딘가에 있는 우물’(〈어린왕자〉 중)을 강금실이나, 오세훈이 아닌, 어쩌면 공자가 소망했던 늦봄 나들이에서 찾는 건 아닐까? 사족. 그래도, 투표는 하자. 권태호 정책금융팀 기자 ho@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