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중언 도쿄 특파원
아침햇발
“우리나라와 향토를 사랑하는 동시에 다른 나라를 존중하고 국제사회의 평화와 발전에 기여하는 태도를 기른다.”
일본 연립여당인 자민당과 공명당이 지난달 중순 내놓은 교육기본법 개정안의 핵심 조항이다. 한마디로 애국심을 가르치자는 얘기다. 직접적 표현을 피하기 위해 ‘마음’이 아니라 ‘태도’라는 말을 쓰고, 우리나라 외에 향토와 다른 나라, 국제사회도 집어넣는 것으로 타협했다. 매우 상식적인 이 문구를 도출해내기 위해 양당이 3년 동안 69차례나 머리를 맞댔다는 사실은 선뜻 이해가 가지 않는다. 로널드 도어 런던정경대 명예교수의 지적처럼, 이 문제가 문구마저 세세하게 곱씹어야 하는 정치쟁점이 되는 것은 외국에서 볼 때 이상하기 그지없다. 우파 성향 〈요미우리신문〉은 애국심을 가르치는 것을 부정적으로 보는 나라는 일본밖에 없다는 볼멘소리를 하기도 했다.
우파 세력이 전전의 군국주의 교육을 전후 민주·평화주의 교육으로 돌려놓은 ‘교육의 헌법’인 교육기본법에 손을 대려는 이유는 간단하다. 어린이의 머릿속에 국가에 대한 인식을 확고하게 심어놓겠다는 것이다. 이들은 모든 교육문제의 원인을 애국심 결핍으로 돌리면서, 헌법과 함께 교육기본법 개정을 양대 핵심 과제로 삼아 총력 공세에 나섰다.
시민단체 등은 애국심의 강요를 우려해 ‘개악’ 저지에 안간힘을 쏟고 있다. 자민당 우파는 애국심이란 단어를 고집했지만, 공명당은 군국주의·전체주의 교육으로 회귀하는 인상을 준다며 끝내 반대했다. 시민단체들은 법으로 정해 애국심을 강요하는 것은 양심의 자유를 해치며, 강제되는 애국심은 자국 중심의 편협한 내셔널리즘을 강화할 따름이라며 개정 자체를 거부한다.
이들의 ‘애국심 알레르기’에는 1999년 제정된 국기·국가법의 선례도 상당히 작용하고 있다. 당시 자민당 지도부는 법률을 만들더라도 강제하지는 않겠다고 공언했다. 그러나 국가주의 교육의 선봉장인 도쿄도 교육위 등은 바로 이 법을 무기로 입학·졸업식 때마다 국기게양·국가제창을 감시한다. 매년 몇백명의 교사들이 국가인 기미가요 제창 때 기립을 거부했다가 무더기 징계를 받는 사태가 되풀이돼 왔다. 징계가 강화되자 기미가요와 발음이 흡사한 개사곡을 부르거나, 학생들의 그림을 전시해 일장기가 보이지 않게 하는 등 다양한 형태의 ‘소극적 저항’도 연출된다.
일본 ‘애국심 소동’의 와중에서 대한해협 건너편의 한국을 바라보면 별천지나 다름없다. 월드컵이 초읽기에 들어가면서 나라사랑이 철철 넘쳐흐르는 느낌이다. 그런데도 나라 꼴은 왜 이 모양일까 하는 생각이 들 때도 있다.
대한민국이란 이름으로 모두가 하나되는 모습은 참 보기 좋다. 각박한 경쟁과 고달픈 삶에 억눌린 답답함을 광적인 응원을 통해 날려버리고 싶은 생각도 간절하다. 그에 비례해 애국심이 ‘양날의 칼’이란 사실도 한층 선명하게 다가온다. 평소 이웃과 더불어 자신이 속한 작은 공동체들을 아끼는 마음이 뒷받침되지 않는 애국심은 맹목적 국가주의로 변질할 가능성이 짙다. 특히 국가 대항 스포츠 경기처럼 다른 나라와 한판 붙을 때만 불타오르는 애국심은 위험도가 더 높다.
일본 우파가 한국의 열광적 응원 장면이 방영될 때마다 “한국을 보라”고 소리치는 것은 한번쯤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대한민국”을 목이 터지라 외치는 시청 앞 광장의 붉은 물결은, 우리가 가장 경계해온 일본 우파의 국가주의 열망을 솟구치게 만드는 최고의 흥분제다. 애국심 불어넣기에 안달하는 이들에게, 우리의 애국심은 순수한 나라사랑이지만 너네는 뒤틀린 내셔널리즘이라고 말하기란 쉽지 않다.
박중언 도쿄 특파원 parkj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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