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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아침햇발] 태극전사와 에우제비우 / 김종철

등록 2006-06-20 18:40

김종철 논설위원
김종철 논설위원
아침햇발
월드컵 축구 역사상 가장 유명한 대회 중 하나는 1966년 영국 월드컵이다. 혜성처럼 나타난 북한은 걸출한 공격수 박두익을 앞세워 조별 리그에서 이탈리아를 이기는 등 파란을 일으켰다. 이탈리아 팀은 귀국 뒤 팬들로부터 썩은 토마토 세례를 받아야 했다. 북한은 8강에서 맞붙은 강호 포르투갈과의 경기에서도 전반 25분 만에 무려 3골을 넣어 리버풀 구디슨 파크의 5만 관중을 열광시켰다. 그러나 ‘흑진주’에우제비우 다 실바 페헤이라가 이들 무명의 아시아 축구 영웅들을 침몰시켰다. 브라질의 펠레와 더불어 당시 세계 축구계를 이끌었던 에우제비우는 혼자서 무려 4골을 잇달아 넣어 경기를 역전시켰으며, 마지막 다섯번째 골도 결정적인 도움을 줬다.

그는 지금도 포르투갈 축구의 전설이자 희망이다. 후배들에게 영감을 주고 기운을 북돋우고자 포르투갈 대표팀 경기가 있을 때마다 거의 대부분 모습을 드러낸다. 42년 포르투갈의 식민지였던 아프리카 모잠비크의 로렝소마르케스에서 태어나 지역 클럽에서 축구를 배웠다. 빼어난 실력에 반한 리스본의 명문 클럽인 벤피카가 61년 그를 납치하다시피 스카우트했다. 이듬해인 62년 그는 귀화해 포르투갈 국가대표 유니폼을 입었다. 첫 아프리카 출신 귀화 선수였다.

에우제비우 이후 축구에서만큼은 인종 화합, 문화 교류가 활발히 이뤄졌다. 대부분의 나라에서 귀화인이나 이민 2세들이 대표팀에서 뛰고 있다. 이들은 검고, 누렇고, 흰 인종들이 어울려 한 나라를 이루고 있는 세계화된 지구촌을 대표한다. 독일 월드컵에 출전한 32개국 가운데 단일 혈통으로만 구성된 팀은 우리나라가 거의 유일하다. 인종 화합으로 98년 월드컵 우승컵을 거머쥐었던 프랑스는 지단(알제리)과 비에라(세네갈), 트레제게(아르헨티나) 등 대부분이 이민 또는 귀화 선수들이다. 프랑스 대표팀은 관용과 화합을 의미하는 톨레랑스의 상징이다.

24일 우리와 맞붙을 스위스는 코소보 알바니아계인 베라미와 터키계의 야킨 등 대표팀의 절반 가량이 ‘세컨즈’로 불리는 이민 2세들이다. 포르투갈팀에는 브라질에서 온 이방인 데쿠가 제2의 에우제비우로 맹활약하고 있다. 게르만 단일주의가 강한 독일도 폴란드계인 클로제와 포돌스키, 가나 출신의 골잡이 아사모아 등이 주공격수 자리를 꿰차고 있다. 차범근씨가 분데스리가에서 활약할 때 ‘차붐’도 귀화를 권유받았다. 동양적인 전통이 우리와 비슷한 일본 대표팀에도 피붓빛이 다른 이방인이 있다. 2002년에 이어 올 월드컵에도 뛰고 있는 브라질 태생의 알렉스가 그다. 94년 라모스, 98년 로페스에 이어 세번째다.

우리나라도 신의손(샤리체프·경남에프시 문지기 코치) 등 귀화 선수나 샤샤 등 외국인 선수에게 태극마크를 다는 방안을 한때 검토한 적이 있지만, 성사되지 못했다. 이전에 다른 나라 대표팀으로 한차례라도 뛰었으면 귀화한 나라의 대표가 될 수 없다는 피파 규정 탓도 있지만, 한민족 순혈주의 분위기가 여전히 강했기 때문이다.

축구 대표팀의 인종과 피부색이 다양할수록 포용성과 개방성이 더 강한 ‘열린 사회’인 것은 우연의 일치가 아니다. 에우제비우는 최근 한 인터뷰에서 “축구는 스포츠 이상을 의미한다. 젊은이들이 자기를 계발하는 방법이자 모든 사람을 위한 소통의 매개체”라고 말했다. 제2의 하인스 워드, 제3의 에우제비우가 태극전사로 뛰는 인류 소통의 장면을 언제쯤이면 볼 수 있을까.

김종철 논설위원 phillki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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