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태호 정책금융팀 기자
아침햇발
“반장 나와!”
중학교 3학년 때였다. 체육시간에 아이들 몇이 줄을 제대로 못 서자, 선생님은 나를 불러냈다. ‘엎드려 뻗쳐’를 시키더니, 몽둥이로 엉덩이를 몇 대 때렸다. 억울하지 않았다. 그 시절엔 흔한 일이기도 했거니와 내 잘못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기자가 됐다. 가끔 기자가 뭇매를 맞는 일을 본다. 촌지수수, 신분을 이용한 횡포, 이권개입 등. 그때마다 인터넷에는 기자들을 싸잡은 비난과 폭언이 쏟아졌다. 억울했다. 도매금으로 넘어가는 게. 그러나 곰곰 생각했다. 한국사회에서 기자는 또하나의 권력이다. 그 권력이 제대로 쓰이지 않을 때, 사회는 이지러진다.
줄곧 기업 쪽만 출입하다 처음 재정경제부에 나가 과장을 찾아갔을 때다. 미로 같은 사무실 한쪽 구석 책상 하나가 과장 자리다. 에어컨 대신 선풍기가 돈다.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 사람, 여기 왜 있나?” 하는.
재경부 직원이면 학교 때 전교 일등은 도맡아 했던 이들이다. 과장이면 40대 중후반, 대기업 친구들에 견주면 월급은 절반도 안 된다. 공무원 좋다는 게 ‘정시 출퇴근’인데, 날밤 새는 일이 허다하다. 한 1급 공무원은 이렇게 말했다. “사람마다 지향하는 바가 다르지 않으냐? 내 손으로 만들고 집행한 정책이 공공의 이익으로 나타날 때, 그 보람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다.” 광고카피 같은, 지극히 교과서적인 답변이지만, 틀린 말은 아닐 것이다. 그러나 그가 ‘보람’이라 생각하는 일이 다른 이에겐 ‘권력’으로 비칠 수도 있다. 또하나, 궁금증이 안 풀리는 건 왜 재경부는 유독 상하위 군기가 셀까, 다들 똑똑한 사람인데 왜 사안을 보는 시각은 늘 똑같을까 하는 점이다. 엘리트 동질성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혹 권력과 관련된 건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인다.
요즘 재경부 분위기는 말이 아니다. 모피아라는 음습한 이름을 재경부 대신으로 일컫는 일이 잦다. 대한민국 최고 엘리트인 재경부 직원들이 돈 몇 푼에 영혼을 팔았으리라곤 믿지 않는다. 외환은행 매각에 대한 감사원 발표 다음날, 곧바로 반박자료를 낸 건 그만큼 떳떳하고, 그만큼 억울하다는 표현일 수 있다. 그러나 국민들의 눈길은 곱지 않다. 재경부가 막강한 ‘힘’을 지녔고, 그 힘이 국민 아닌 다른 쪽에 많이 쓰이고 있다는 생각을 하기 때문이다.
결국 신뢰를 회복할 길은 그 힘을 어떻게 할 것이냐 하는 데서 찾아야 할 것이다. 그런데 최근 웬만한 일은 먼저 나서지 않고, 책임질 일은 하지 않으려 한다는 소리가 왕왕 들린다. 재경부답지 않다. 재경부가 언제부터 ‘삼미슈퍼스타스의 마지막 팬클럽’이 됐단 말인가? 그러려면 차라리 재경부를 떠나는 게 낫다.
200년 전 선배 공무원은 〈목민심서〉에서 후배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한밤중 주고받은 뇌물도 아침이면 드러난다. 세상에서 지극히 천하고 하소연할 곳 없는 자는 백성이지만, 세상에서 무겁기가 높은 산과 같은 자도 또한 백성이다. 백성을 잘 받들면 세상에 무서울 것도 못할 것도 없다”고.
젊은날 율곡이 도산서원에 이틀 머문 뒤 떠날 때, 퇴계는 글 한 편을 써줬다. “사람의 마음가짐에서 귀한 것은/ 속이지 않는 데 있고/ 벼슬하여 조정에 나아가게 되면/ 공을 세우려고 일 만들기를 좋아해선 안 된다.” 이이가 세상을 떠났을 때, 집에 수의를 만들 천조차 없어 친구들이 도와줬다. 영구가 한양을 떠나던 밤, 통곡하는 시민들의 횃불이 수십 리에 이어졌다.(이 글이 묵묵히 일하는 공무원들에게 또다른 상처가 되지 않길 바란다.) 권태호 정책금융팀 기자 ho@hani.co.kr
젊은날 율곡이 도산서원에 이틀 머문 뒤 떠날 때, 퇴계는 글 한 편을 써줬다. “사람의 마음가짐에서 귀한 것은/ 속이지 않는 데 있고/ 벼슬하여 조정에 나아가게 되면/ 공을 세우려고 일 만들기를 좋아해선 안 된다.” 이이가 세상을 떠났을 때, 집에 수의를 만들 천조차 없어 친구들이 도와줬다. 영구가 한양을 떠나던 밤, 통곡하는 시민들의 횃불이 수십 리에 이어졌다.(이 글이 묵묵히 일하는 공무원들에게 또다른 상처가 되지 않길 바란다.) 권태호 정책금융팀 기자 h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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