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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아침햇발] 한반도 위기와 광폭 정치 / 김종철

등록 2006-07-13 19:34

김종철 논설위원
김종철 논설위원
아침햇발
2000년 6월 남북 정상회담 이후 한때 ‘광폭 정치’란 말이 유행했다. 경의선 철도 복원과 남북 이산가족 상봉 등 굵직한 사안들에 대해 막힘없이 시원시원하게 결단하는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의 태도가 상당한 호감을 샀다. 김 위원장의 통큰 스타일은 2002년 9월 고이즈미 준이치로 일본 총리와의 정상회담에서도 나타났다. 그는 그동안 사실 자체를 부인해오던 일본인 납치 문제를 솔직하게 인정하고 사과한 뒤 재발 방지를 약속했다. 그 후 남북관계는 꾸준히 진척돼 왔으며, 북-일 관계도 가짜 유골 논란 등으로 악화했지만 대화를 위한 초석은 깔렸다.

북핵을 둘러싼 한반도 문제도 지난해 베이징 6자회담에서 9·19 공동성명으로 돌파구를 찾는 듯했다. 하지만 다시 미사일 위기로 한치 앞도 안 보이는 상황으로 변했다. 북한에 대한 유엔 제재가 논의되고, 미국과 일본의 강경파들은 북한에 대한 선제공격까지 주장하고 있다.

문제가 꼬인 직접적인 계기는 공동성명이 나온 직후 미국이 마카오 2대 은행인 방코델타아시아(BDA)를 북한의 돈세탁 연루 우려가 있는 금융기관으로 지정하면서부터다. 이 은행에 예치돼 있던 북한의 돈 2400만달러가 고스란히 묶이는 등 자금흐름이 막혔다. 북한은 금융제재를 풀지 않으면 6자회담에 나가지 않겠다고 반발했다. 크리스토퍼 힐 미국 쪽 6자회담 수석대표의 평양 초청 등 북한은 문제 해결을 위해 애썼으나, 미국은 6자회담에 먼저 복귀하라고 버텼다.

이에 북한이 들고 나온 것이 장거리 미사일 발사 카드였다. 많은 전문가들의 예상대로 미국과 협상을 노린 전형적인 벼랑 끝 전술이다. 북한은 우방인 중국의 공개적인 만류도 무시한 채 쐈다. 자신을 무시하는 미국의 거만한 태도에 일침을 놓고 전세계에 미사일 능력을 과시하고 싶었는지 모른다. 하지만 미사일 발사는 협상카드로서의 약발을 잃고 일본과 미국에 군비증강의 빌미만 줬다. 대신 북한은 군사력에서 미국, 일본 심지어 남한과도 비교가 되지 않으면서도 위험한 국가라는 국제적인 이미지만 굳히는 상황을 맞았다.

북한이 풀어야 할 핵심 과제는 바로 이것이다. ‘믿을 수 없는 나라’ ‘위험한 나라’라는 국제적인 의심을 벗어나는 일이다. 6자회담이 먼저냐 금융제재 해제가 먼저냐는 식으로 미국과 자존심을 다툴 일이 아니다. 회담의 틀이나 형식도 중요하지 않다. 신뢰를 얻는 게 먼저다. 1994년 제네바에서 일대일 핵 협상을 타결해 미국과 유일하게 맞서는 지구상의 나라라는 명성을 얻었지만, 상호 신뢰 없는 협상은 결국 ‘도루묵’이 됐지 않은가. 미국은 당시 겉으로의 ‘양보’와 달리 속으로는 북한이 망하길 바랐다.

주변국을 비롯해 국제사회가 우려하는 핵과 미사일을 경제발전과 바꿀 용의가 있다는 것을 회담에서 진지하게 보여주는 게 중요하다. 핵과 미사일은 북한의 안전보장에도 결정적이지 않다. 현재 휴전선에 배치된 장사정포만으로도 전쟁 억지력은 차고 넘친다. 국제정치적으로도 중국이 뒤에 버티고 있다. 핵과 미사일을 버려도 되고 오히려 버려야 활로가 열리는데도 과정에 집착해 시간을 끄는 것은 현명하지 않다.

위폐·마약 문제에 대해서도 근거 없다고만 버틸 일이 아니다. 일부 흔적들은 이미 나왔다. 사실을 밝혀 문제가 있다면 오히려 일본인 납치 문제처럼 통 크게 털고 가야 신뢰가 생긴다. 남한의 납북자 문제도 마찬가지다. 그럴 때 북한의 대미 협상력은 오히려 높아지며, 친구들이 늘어날 것이다. 변화와 빠른 개방이야말로 북한 체제의 안전판이며, 경제 성장판이다.

김종철 논설위원 phillki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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