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재훈 국제부 기획팀장
아침햇발
북한의 미사일 발사 이후 북핵 문제가 더욱 꼬여가고 있다. 미국 독립기념일 오후에 강행한 미사일 발사가 지난해 11월 이후 교착상태에 빠졌던 판을 흔들고 세계의 눈귀를 끌어낼 목적이었다면 일단 성공적인 이벤트였다고 할 수 있겠다. 그러나 방코델타아시아의 동결계좌에서 돈을 찾고 북-미 직접대화를 노린 것이었다면 실패작이다. 조지 부시 미국 행정부의 태도는 오히려 강경 쪽으로 더 굳어졌다. 유엔 안보리 결의안이란 무기까지 손에 쥐게 됐다. 6자 회담 복귀를 거듭 촉구하고는 있으나 무게는 추가적 대북 압박 쪽으로 옮겨가고 있다. ‘악의적 무시’가 대북 봉쇄 쪽으로 기울고 있는 것이다.
북한에 한가닥 위안이 있다면 미국이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로 세계 곳곳에서 터지고 있는 다른 국제문제들 때문에 추가적 군사 옵션을 취하기 어려운 처지에 빠졌다는 점이다. 이스라엘의 레바논 침공으로 현재 미국의 관심은 온통 이스라엘에 쏠려 있다. 언론들도 안보리 논의 때 호들갑스럽던 보도 태도는 간 데 없고 북한 문제는 거의 언급도 하지 않고 있다. 콘돌리자 라이스 국무장관의 동북아 순방이 취소된 것도 이런 배경에서다. 부시 행정부는 북한 문제가 더 위기로 가는 것만은 피하면서 조용하게 제재의 고삐만 당기겠다는 심산이다.
이런 상황에서 북한이 당분간 6자 회담에 복귀할 가능성은 거의 없어 보인다. 중국의 설득도 거부하고 결의안 이후 태도변화 기대를 ‘개꿈 꾸지 말라’며 비난했던 북한이다. 정부가 5자 회동(담)을 얘기하는 이유도 이런 상황 때문이다. 하지만 아직 명칭·의제 등도 정해지지 않았다.
최근 워싱턴을 찾은 고위당국자는 장기공백으로 말미암아 6자 회담이 유명무실해지는 것을 막고, 5자라도 모이는 것이 상황관리에 도움이 된다는 판단을 하고 있다고 추진배경을 설명했다. 대북 압박이 아니라 9·19 공동성명의 이행방안을 먼저 논의해 북한이 회담에 복귀할 경우 논의를 빨리 진전시켜 외교적 해결의 기회를 살리자는 뜻도 있다고 덧붙였다.
워싱턴 한쪽에선 북한의 미사일 발사로 6자 회담은 사실상 끝장났다는 관측도 나돈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 정부의 5자 회동 추진은 뭔가를 해야 한다는 압박감에서 나온 궁여지책처럼 보인다. 그러나 우리 정부의 이런 ‘착한’ 의도를 북한이 알아줄까? 6자 회담도 기실은 5자가 북한을 설득하고 압박하는 틀이다. 6자 회담이 안열리는 상황에서 5자 회동은 우리 정부보다는 미국 정부가 원하는 틀일 수 있다. 미국 의도대로 대북 압박에 대한 논의가 우선될 수밖에 없다. 부시 행정부의 2기 외교정책이 가뜩이나 유화적이라고 비난하는 보수 강경파들에겐 좋은 도구로 이용될 수도 있다. 이를 잘 알고 있는 중국이 5자 회동에 동의할지는 미지수다. 5자 회동이 열릴 경우, 명분과 체면을 중시하는 북한의 6자 회담 복귀는 더욱 멀어질 수도 있다.
이제까지보다 더한 교착상태가 예상되는 국면에서 우리의 외교적 운신 폭이 크지 않다는 건 안타깝지만 현실이다. 안보리 결의안 채택 때 미·일은 한국을 중국편이라 분류하고 자신들 논의과정에서 배제했다. 장관급 회담의 조기 종결로 남북대화 채널도 가동하기 힘든 상태다.
그렇다 해서 이 눈치 저 눈치 보며 동요할 이유는 없다. 중심기조를 유지하면서 차분하게 주체적으로 밀고나갈 일이다. 우선 시급한 일은 교착국면을 완전 파국으로 몰고갈 북한의 미사일 추가발사 등 도발적 행동을 막는 것이다. 그래야 회담 조귀복귀라는 북한의 새로운 전략적 선택을 끌어낼 기회라도 살릴 수 있을 테니까.
류재훈 워싱턴 특파원 hooni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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