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용현 24시팀 기자
아침햇발
대전교도소 수번 436 윤영훈(30)이 〈한겨레〉에 편지를 보냈다.
“저는 미국에서 경영학석사(MBA) 학위를 받고 귀국했습니다. 미국 친구들이 제 귀국의 의미(=감옥행)를 알고 있었기에, 눈물과 포옹으로 안타까워하던 모습이 눈에 선합니다. 몇몇 회사에서 일자리를 주선해줬고 결혼하자는 아가씨들도 있었지만, 조용히 한국으로 돌아와 법을 준수하는 시민으로서 제 무죄를 주장하기로 했습니다. … 재판장님께 불구속 상태에서 제 자신을 변호할 수 있도록 선처해 달라고 부탁드렸으나 법정구속이 됐고, 보석 신청도 기각됐습니다. 도망할 염려가 있다는군요. 도망갈 사람이 자진해 한국에 돌아와 법정에 섰다면, 해외토픽감이 아닐까 합니다.”
그는 왜 돌아왔던가. 1.6평 철창만이 기다리는 조국에. 나는 답장을 쓴다.
“미국법을 공부하면서 의아했습니다. 중요한 판례에 여호와의 증인이 자주 등장해서요. 대표적인 것은 1943년 ‘웨스트 버지니아주 교육위원회 대 바넷’ 사건입니다. 연방대법원은 국기에 대한 경례를 거부하면 퇴학에 처하는 교육위원회 규정을 위헌으로 선언했습니다. 로버트 잭슨 대법관의 아름다운 판결문을 보세요.
‘개인을 존중하고 문화적 다양성을 이루자면 그 대가로 때론 일탈적인 행위를 허용해야 하는데, 국기에 대한 경례 거부처럼 사회에 미치는 해악이 적은 경우는 대수롭지 않은 대가라고 할 것이다. 그러나, ‘남과 다를 수 있는 자유’가 사소한 문제에만 적용된다면, 이는 자유의 그림자에 불과하다. 현존 질서의 심장부에 가닿는 중대한 사안에까지 ‘남과 다를 수 있는 권리’를 보장하느냐가 실질적 자유의 기준인 것이다.’
이처럼 여호와의 증인은 미국 기준에서도 사회 상규나 현행 법의 테두리를 넘어 자유와 권리의 한계를 시험하곤 했지요. 문제는 미국 법원의 태도인데, 이들의 ‘문제적 행동’을 보편적 자유와 권리를 한걸음씩 확장시키는 법률적 계기로 삼은 것입니다. 특히 양심과 표현의 자유 영역에서 그랬지요. 호별방문 행위를 금지한 법규에 위헌 선고가 났는데, 이로써 획득된 표현의 자유는 소송을 낸 여호와의 증인뿐 아니라 정치적 선전이나 상업 광고에도 적용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당신과 같은 ‘양심적 병역거부자’를 위한 판결은 없었을까요? 그 답은 한 미국 공무원이 당신을 위해 법원에 제출한 탄원서에 적혀 있군요. ‘베트남 전쟁 중에 징집명령을 받고 종교적 이유로 면제를 신청하자 병원에서 대체복무할 기회가 주어졌습니다.’ 그뿐입니다. 31개 나라에 이런 제도가 도입됐고, 심지어 독일은 헌법에까지 하나의 권리로 명시했습니다.
그러나 당신은 지금 종교적 양심을 지키기 위해 갇혀 있습니다. 대체복무제 법안이 국회에 상정돼 있다지만, 정치인들은 표가 안 되는 소수자 인권에 관심이 별로 없다는 걸 아실 겁니다. 가장 빠른 해법은 미국의 경우처럼 기본권 옹호라는 사명에 충실한 ‘좋은 판사’들을 만나는 것이겠죠. 9년 전 꼭 이맘때 세상을 떠난 윌리엄 브레넌 미국 연방대법관 같은 사람 말입니다. 그가 남긴 아름다운 문장 중 하나입니다.
‘적법절차라는 법 원칙은 국가기관이 누군가를 공정하게 대했는지, 그의 존엄성을 존중했는지를 묻는다. … 공직자라면 열정을 가져야 한다. 서민들의 꿈과 절망을 함께 느끼려는 열정을, 관료의 시각으로 재단된 현상 이면에 숨쉬는 삶의 맥박을 이해하려는 열정을.’ 돈과 술과 골프에 절어있는 법관들에게 해주고픈 말입니다. 퇴임 뒤 변호사로 돈벌이에 나선 대법관·헌법재판관들에게 해주고픈 말입니다. 허, 참! 이런 천박한 법률가들이 지배하는 세상에 당신은 뭘 믿고 돌아온 건가요?” 박용현 24시팀 기자 piao@hani.co.kr
‘적법절차라는 법 원칙은 국가기관이 누군가를 공정하게 대했는지, 그의 존엄성을 존중했는지를 묻는다. … 공직자라면 열정을 가져야 한다. 서민들의 꿈과 절망을 함께 느끼려는 열정을, 관료의 시각으로 재단된 현상 이면에 숨쉬는 삶의 맥박을 이해하려는 열정을.’ 돈과 술과 골프에 절어있는 법관들에게 해주고픈 말입니다. 퇴임 뒤 변호사로 돈벌이에 나선 대법관·헌법재판관들에게 해주고픈 말입니다. 허, 참! 이런 천박한 법률가들이 지배하는 세상에 당신은 뭘 믿고 돌아온 건가요?” 박용현 24시팀 기자 pia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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