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재훈 워싱턴특파원
아침햇발
지난 14일 한-미 정상회담이 성과가 있었다, 없었다 말들이 많다. 하지만 악화일로의 대립국면으로만 치닫던 북한 핵 문제의 외교적 해결방안을 모색할 약간의 시간을 벌었다는 점은 평가해야 한다. 일단 위기를 막고 한반도를 포함한 동북아의 미래 안보구도 마련을 위한 한국의 주도적 역할에 마지막 기회가 주어진 셈이다.
그렇다고 그 시간이 그리 길진 않아 보인다. 콘돌리자 라이스 미국 국무장관은 25일 “북한을 6자 회담으로 복귀시키는 마지막 시도”라고 표현하며, 6주 뒤쯤 그 현황 점검차 아시아를 순방하겠다고 밝혔다. 11월 18~19일 베트남 하노이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아펙) 정상회의가 6자 회담 재개의 성패를 가를 고비가 될 것임을 시사한 것이다. 또한 11월7일 중간선거 때까지는 미국 정책에 큰 변화가 없을 것이며, 아펙까지 6자 회담 재개 논의에 진전이 없을 경우엔 공언한 대로 제재에 나서겠다는 얘기로도 들린다.
아직까지 표면상 미국의 태도가 크게 달라진 것은 없다. 6자 회담 틀 안에서 양자 대화, 금융 제재는 6자 회담과 별개의 법집행 차원, 유엔 안보리 대북결의안 1695호 이행 등 같은 얘기는 녹음테이프를 틀어놓은 것 같다. 워싱턴엔 ‘못 믿을’ 북한에 대한 제재를 당장 밀어붙이자는 분위기가 존재하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6자 회담 재개에 걸림돌이 될 추가제재 발표가 없었고, 회담 재개를 위한 공동의 노력에 무게를 실어주는 잇따른 발언이 이어지는 등 미묘한 변화 기미가 있다는 점은 고무적이다.
북한은 “제재의 모자를 쓰고는 회담장에 나갈 수는 없다”며 금융제제 우선 해제 주장(9월26일 최수헌 외무성 부상 유엔총회 연설)을 굽히지 않고 있다. 북한의 회담 복귀를 위해선 방코델타아시아(BDA) 문제를 돌파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은 상식이 된 지 오래다.
이 문제가 빠진다면 백약이 무효고, 접점을 찾기가 쉽지 않다. 북한과 미국을 마주앉히자면 이 문제를 우회하기보다는 정공법을 택할 도리밖에 없다. 1년을 넘게 끌어 온 미국 재무부의 조사를 빨리 끝내 위법 문제를 확인하고, 북한의 전략적 선택을 요구하는 것이다. 합법과 불법의 경계가 모호하지만, 조사가 끝나면 합법적인 돈은 북한에 돌려줘야 한다. 미국 기업은 북한과 거래를 하지 않겠지만, 다른 나라와 북한의 합법적인 거래는 풀릴 수 있다. 새 접근법에 담길 나머지 내용은 공동성명에서 담긴 말 대 말, 행동 대 행동의 순서를 정하는 것이란 점에서 오히려 그다지 어렵지 않을 수 있다.
지난해 ‘중대 제안’을 통해 6자 회담의 돌파구를 열었듯, 적극적이고 주도적인 외교가 어느 때보다 절실하다. 이번 노력이 실패하면 미국 주도의 제재에 북한이 더욱 강하게 반발하는 악순환의 고리 속에 우리도 빠져들어가 최악의 선택을 강요받게 될 공산이 크기 때문이다.
1년 넘게 조사를 질질 끄는 미국에 빨리 이 문제의 매듭을 짓도록 거듭 촉구해야 한다. 새 접근방법에 대한 관련국 사이 협의가 끝나는 대로 북한에 대해서도 강하게 요구해야 한다. 회담을 거부할 핑곗거리처럼 추가적인 요구를 내놓기보다는 “합의(공동성명)가 이행되면 우리가 더 얻을 것이 많다”고 한 북한에게도 6자 회담에서 문제를 해결하라고 모든 남북채널을 동원해 거듭 촉구해야 한다.
공동성명은 북핵 문제 해결뿐 아니라 한반도 평화체제와 동북아 다자간 안보협력 등 동북아 안보질서의 미래를 담고 있다. 한민족 공존의 미래가 6자 회담 재개와 공동성명 이행 여부에 달렸다는 점을 북한이 충분히 인식하고 동의하도록 해야 한다.
류재훈 워싱턴 특파원 hoonie@hani.co.kr
류재훈 워싱턴 특파원 hoonie@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