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철 논설위원
아침햇발
북한은 장거리 미사일과 핵 개발의 이유로 미국의 위협을 내세우지만, 미국이 자신을 치고 싶어도 쉽게 칠 수 없다는 것을 잘 안다. 한반도를 둘러싼 국제정치 구도가 북한에 대한 미국의 전면적인 공격을 허용하지 않기 때문이다. 군사력이 다른 나라보다 월등히 강했던 한국전쟁 때도 미국은 이승만 정권의 바람과 달리 결국 38선 부근에서 군사를 멈추게 했다. 중국과 전면전을 하지 않고서는 북한을 없앨 수 없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었다. 이 구도는 지금도 여전하다.
특정 목표를 폭격하는 이른바 미국의 ‘선제 정밀공격’론도 실행 가능성이 거의 없는 것으로 이미 판명났다. 1993년 1차 핵위기 때 클린턴 정부는 폭격시 북한의 반발에 따라 발생할 무력충돌 피해를 감당할 수 없다는 판단을 내리고 포기했다. 지금도 상황은 마찬가지다. 더구나 선제공격론의 빌미는 북한의 핵 개발이다.
따라서 핵실험이 “강위력한 자위적 국방력”(10.9 <중앙통신> 보도문), “미국의 가중되는 핵전쟁 위협에 대한 적극적인 방어적 대응조치”(10.17 외무성 대변인)라는 주장은 엄밀히 따지면 맞지 않는다. 미국의 위협이 없었다는 얘기가 아니다. 91년 이전까지 전술 핵무기 배치 등 중대한 위협으로 여길 만한 요인이 있었지만, 그 위협이 핵 개발의 이유로 타당하다고 볼 수는 없다는 점이다. 더구나 오히려 핵 개발이 북한 체제를 위험에 빠뜨린 측면이 강하다. 이는 단지 군사적인 부분에 그치지 않는다. 유엔의 경제제재가 실시되고, 중국과 한국의 각종 지원이 끊어지거나 줄어들면 북한 내부에서 동요가 일어날 가능성이 높다.
핵 개발을 하면 확산을 막기 위해 미국이 협상에 나설 것이라는 북한 지도부의 계산은 최소한 부시 정부에서는 통하지 않는다. 부시 정부는 양자 회담을 내내 거부한 것은 말할 것도 없고, 중국과 한국의 노력으로 애써 만든 6자 회담에서도 북한과 ‘주고받는’ 거래를 할 의사가 없음을 분명히해 왔다. 도리어 미국은 국내외에서 반대가 심한 미사일 방어 체제를 구축하는 명분으로 삼으려 북한의 핵 개발을 방관하거나 유도한 측면도 없지 않다.
북한의 대응은 핵확산 금지조약 탈퇴(2003. 1), 핵무기 보유 선언(2005. 2), 지하 핵실험(2006. 10) 등 대미 압박의 강도를 차례로 높이는 것이었다. 이 과정에서 과거 어떤 나라도 하지 않았던 핵실험 예고까지 하면서 미국에 ‘제발 나 좀 말려 달라’고 애원했다. 체면을 중시하는 북한의 속성상 앞으로 추가 핵실험을 감행할 가능성이 높다. 그래도 미국이 움직이지 않으면 핵무기 수출 시도라는 카드까지 꺼낼지 모른다. 민족의 운명을 건 무모한 도박이다. 그런다고 부시 정부가 협상에 나설 것 같지도 않다. 핵무기 몇 개와 조악한 장거리 미사일을 직접적인 위협으로 여기지 않는다. 대신 미국 네오콘들은 북한 정권 변환의 기회가 왔다고 보고, 대북 제재의 고삐를 틀어쥐고 북한의 목을 바짝 죄고 있다.
발상과 접근법을 바꿔야 해법이 나온다. 대답 없는 미국에 모든 것을 걸 게 아니라 중국과 한국에 걸어야 한다. 먼 미국보다는 중국과 한국 등 이웃 나라한테서 얻을 게 더 많다. 이들은 북한만 변하면 껴안을 자세도 돼 있다. 스스로 변하면 일본과의 관계를 풀기도 쉽다. 그럴 때 미국은 내키지 않아도 대북 협상 테이블에 나올 수밖에 없다. 중국, 한국과 신뢰를 쌓는 길은 핵 포기다. 그 길은 멀 수 있다. 다만 그 길을 원한다면 최소한 추가 핵실험을 말아야 한다. 그것이 해결의 실마리다.
김종철 논설위원 phillkim@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