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중언 도쿄 특파원
아침햇발
북한 핵실험 사태의 최대 수혜자가 일본의 우익이라는 데는 이견이 없다. 11월 중간선거를 앞두고 집중포화를 맞고 있는 조지 부시 미국 행정부, 벼랑 끝에 내몰린 노무현 정부의 평화번영정책, 국제적 체면을 구길 대로 구긴 중국. 이들과는 대조적으로 출범 4주를 맞는 일본의 아베 정부는 여론의 거의 전폭적 지지 속에 눈엣가시인 북한을 옥죄는 제재 카드를 남발하고 있다.
일본 우익들로선 전후 60여년의 숙원을 이룰 절호의 기회를 맞았으니 희색이 만면하다. 이른바 ‘전쟁을 할 수 있는 보통 국가’로 단번에 내달릴 수 있는 여건이 조성됐다. 자위대와 북한의 무력충돌이 그 지름길이다. 북 선박 검문검색이나 미군 함정 지원에 나선 해상자위대가 북쪽과 포격전을 벌이는 상황은 충분히 예견된다. 아베 신조 총리가 그토록 주장해 온, 미군을 위해 자위대가 피를 흘리는 날이 도래할지 모른다. 그렇게 되면 자위대의 활동을 열도 방위에 묶어둔 평화헌법의 개정 논란 자체가 무의미해진다. 이미 ‘중무장한 일본군’이 한반도 주변을 누비고 있을테니 말이다.
더 화끈한 이슈는 일본의 핵무장론이다. 원조는 아베 총리의 외조부 기시 노부스케 전 총리다. 그는 취임 얼마 뒤인 1957년 “자위용 소형 핵의 보유는 위헌이 아니다”라는 주장을 폈다. 이후 우익의 핵 보유 주장은 심심찮게 터져나왔고, 아베 또한 2002년 비슷한 발언을 해 물의를 빚은 바 있다. 북한의 미사일 발사와 핵실험으로 일본 내 위기의식이 그 어느 때보다 고조된 틈을 타 또다시 고개를 든 핵무장론은 일본 정부·여당 핵심인사들의 입을 통해 잇따라 제기돼 한층 무게 있게 다가온다.
핵기술과 핵물질 등 필요조건을 모두 갖춘 일본에서 핵무장은 정치적 결단의 문제다. 1964년 중국이 핵실험을 했을 때, 대응을 고심하던 일본은 미국의 핵우산 제공과 자체 핵무장이란 갈림길에서 전자를 선택했다. 당시는 미국의 압도적 영향력 아래에 있었고, 집권 자민당에서도 온건보수가 주류였기 때문이다. 피폭 경험을 가진 일본 국민들의 강한 ‘핵 알레르기’도 큰 몫을 했다. 67년 ‘비핵 3원칙’ 선언에 이어, 75년 핵확산금지조약(NPT) 비준과 냉전 뒤인 95년의 핵확산금지조약 무기한 연장 찬성으로 비핵노선이 정착했다. 이는 핵무장보다 미-일 동맹을 통한 안전보장 확보가 국익에 도움이 된다는 주류 우파의 전략적 판단과도 합치했다. 일본은 그 과정에서 비핵보유국으로는 유일하게 플루토늄 재처리 허용이라는 ‘선물’을 챙기기도 했다.
일본의 전략적 판단과 국민감정, 국제사회의 비확산 공감대, 핵강국들의 완강한 기득권 집착 등을 종합해 볼 때 일본의 핵무장이 현실화할 가능성은 현재로선 희박하다. 특히 일본의 재무장을 부추기는 미-일 동맹은 일본의 핵무장을 억제하는 ‘병마개’ 구실도 한다. 하지만 그 마개가 언제까지나 튼실하리라는 보장은 없다. 이번 핵무장론은 일본 강경 우파가 ‘반기’를 들기 시작됐다는 신호로도 읽힌다.
당장은 발등의 불인 북핵 위기 해소에 전력을 쏟아야 할 것이다. 그러나 일본의 핵무장론이 본격적으로 부상한 이상, 방치해선 안 된다. 일부에서 나오는 ‘핵에는 핵으로’라는 맞불 발상은 동북아 ‘핵 도미노’만 재촉할 우려가 크다. 남북한에 일본까지 포함한 새로운 비핵지대화 구상이 유력한 대안이 될 수 있다. 일본의 대표적 반핵단체 피스데포가 10년 전부터 내놓은 ‘3+3 제언’은 그 논의의 토대가 되기에 충분하다. 남·북·일이 핵을 포기하는 대신, 핵강국 미·중·러가 이들의 안보를 보장하는 게 핵심이다.
박중언 도쿄 특파원 parkj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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