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용현 24시팀장
아침햇발
그들의 머릿속에 들어가보지 않았으니 알 수 없는 일이다. 그들의 존재가 의식에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
얼마 전 네살배기 아들놈이 폐렴에 걸려 입원했는데, 경비 아저씨가 당신 일인 양 걱정을 해줬다. “애는 어때요? 어린애가 입원까지….” “곧 괜찮아지겠죠.” 고마움을 표시하고 지나치려는데 다시 발길을 붙잡는 아저씨의 목소리. “그런데, 저…. 이것 좀 해주시죠.” 서명용지를 내민다. 아파트 세금을 깎아달라는 탄원서 부류였다. 삶의 질 6년 연속 세계 1위인 노르웨이를 포함해 북유럽 나라들이 세금을 많이 거둬 훌륭한 복지국가를 만든 데 부러움을 느껴온 나로선 동의하기 어려운 탄원이었다. 그러나 조금 전 아들을 걱정해주던 아저씨의 표정이 채 망막에서 사라지기도 전이었다. 우리집 호수의 서명란이 비어 있으면 그에게도 무언가 불이익이 올 것 같았다. 솔직히 내게 돌아올 소소한 이익이 잠시 머릿속을 맴돈 것도 사실이다. “다른 분들도 다 하셨거든요.” 아저씨가 계속 쳐다봤다. 볼펜을 들었다.
누군가 그 서명용지를 보고 “평소 말과 소신은 어디 가고 결국 네게 이익이 오는 쪽으로 행동했구나”라고 따진다면, 나는 여러가지 설명을 하고 싶을 것이다. 그러나 그 변명의 상황은 스스로에게도 매우 구차하게 느껴질 것 같다.
나라의 중대한 정책에 영향을 끼치는 사람이라면 어떨까. 어떤 정책을 만들고 집행한 결과 수많은 사람들이 고통받고 불행에 빠지게 된 반면, 극소수의 사람들은 그 혜택으로 부유하고 행복해졌다. 그런데 그 정책 결정자는 혜택받은 극소수에 속해 있다. “다수를 행복하게 하겠다던 말과 소신은 어디 갔느냐”고 따진다면, 그도 여러가지 설명을 하고 싶을 것이다.
그러나 변명은 역시 구차할 터. ‘정책 실패의 혜택’을 누리는 정책 결정자들은 몇가지 유형 가운데 하나로 낙인찍힐 뿐이다. 의도적으로 제 이익을 앞세웠거나, 의도적이지는 않지만 제게 이익이 되는 방향으로 설득당했거나, 아니면 그저 무능했거나. 어느 경우든, 그가 나라의 정책 결정자일진대 그냥 넘어갈 수 없는 일이다. 무능의 경우를 빼고는, 비록 뇌물을 챙기지 않았더라도 엄연한 ‘부작위의 부패 스캔들’이라 할 만하다.
이런 과격한 논리에 찬동해줄 이를 찾아보니 드물었다. 다행히 2300여년 전으로부터 하나의 대답이 왔다. “개와 돼지가 사람이 먹을 양식을 먹되 단속할 줄 모르며, 길에 굶어죽은 시체가 있어도 창고를 열 줄 모르고, 사람들이 굶어죽으면 말하기를 ‘내가 그렇게 한 것이 아니요, 흉년 때문이다’ 하니, 이 어찌 사람을 찔러 죽이고 말하기를 ‘내가 그렇게 한 것이 아니요, 병기 때문이다’라고 말하는 것과 다르겠습니까? 왕께서 죄를 흉년에 돌리지 않으시면 천하의 백성들이 왕께 올 것입니다.”(<맹자> 양혜왕 장구 상)
부작위의 혹정에 대한 질타다. 서민이 살 집을 땅부자들이 독식하고 집 없어 길 헤매는 이 즐비해도, 이를 바로잡지 않고 백성의 투기심리를 탓하는 공직자들에게 맹자는 뭐라 말할까. 더구나 그들이 강남의 금값 아파트를 소유하고 있다면.
부동산뿐인가. 사교육을 근절하겠다고 이런저런 정책을 내놓으면서, 귀한 자녀들에게는 수준 높은 사교육을 제공해주는 공직자들, 생활고로 한 가족이 동반자살까지 하는 복지 후진국에서 ‘세금 폭탄’이란 말만 나오면 꼼짝 못하는 공직자들, 늘 부자 편에 서 있는 정당과 언론…. 이들이 서민의 자리로 내려와 더불어 눕고 더불어 먹으며 더불어 이야기하는 세상이 오지 않는 까닭은 무엇일까.
그들의 머릿속에 들어가보지 않았으니 알 수 없는 일이다. 그들이 존재의 요구에 굴복한 탓인지, 아닌지.
박용현 24시팀장
pia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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