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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아침햇발] ‘한국정치 연구그룹’ 만들자 / 김종철

등록 2006-12-11 18:54수정 2006-12-11 18:57

김종철 논설위원
김종철 논설위원
아침햇발
새 이라크 해법을 내놓은 미국 의회의 ‘이라크 연구그룹’(ISG)은 미국의 성숙한 민주주의 문화와 지혜를 잘 보여준다. 보고서 내용이 아니라 지도자들이 국가 과제를 풀어가는 방법을 두고 한 말이다. 당파적인 계산으로는 수렁에 빠진 정부를 내후년 대선 때까지 몰아붙이는 게 더 유리할텐데도 민주당은 공화당의 연구그룹 구성 제의를 선뜻 받아들였다. 양당의 주요 인사 10명은 글자 그대로 머리를 맞대고 초당적인 방안을 찾아 정부에 건의했으며, 조지 부시 대통령은 수용할지를 고민하고 있다. 행정부와 의회, 여당과 야당 두루 득이 되는 상생(윈-윈) 정치다.

한국 정치는 어떤가? 대결하고 교착하는, 끝내는 정치인 모두 불신받고 외면당하는 ‘상살 정치’다. 대통령과 국회, 여야가 일마다 부딪치고 싸운다. 전효숙 헌법재판소장 후보자 인준 문제가 그랬고, 이재정 통일부 장관과 송민순 외교부 장관 임명도 대립했다. 연말 임시국회의 발목을 잡고 있는 사학법 재개정 논란도 마찬가지다.

이런 ‘교착 정치’는 일시적이거나 어제오늘의 현상이 아니다. 본격적인 연원을 따지면 1988년 여소야대의 13대 국회까지 거슬러 올라갈 수 있다. 야당의 힘이 세지면서 국회가 대통령 권력을 견제하는 것을 넘어 심지어 무력화할 수 있다는 것을 처음으로 깨달았던 것이다. 많은 정치학자들은 실제로 대통령 권력과 국회 권력이 다른 분점정부(여소야대)를 불안정한 국정운영의 원인으로 꼽고 있다. 얼마 전 노무현 대통령도 당원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지역주의에 바탕한 여소야대 현상이 일상화된 것을 구조적인 문제로 들었다. 다 일리가 있다.

하지만 분점정부가 아닌 여대야소 상태에서도 정국 교착이 자주 나타난다. 한국정치가 맞닥뜨린 진짜 위기다. 열린우리당이 ‘강력한’ 여당이었던 17대 국회 초반에 국가보안법 폐지 등 4대 입법이 좌절되고, 이번 정기국회에서 여당과 3개의 군소야당이 헌재소장 인준 표결처리에 합의했음에도 한나라당의 반대로 무산된 것은 대표적인 사례다. 제1야당이 당론으로 특정 안건을 비토하기로 결정하면 이를 해결할 뾰족한 방법이 없다. 과거에는 여당이 힘으로 날치기나 강행처리를 했지만, 국회법 개정 등으로 이제는 그런 위법적 국회운영은 불가능하게 됐다.

따라서 정국 주도권은 ‘자연스럽게’ 다수당이나 제1당이 아니라 강경노선을 견지하는 제1야당에게 넘어갔다. 그러나 과거 흔했던 여당의 독주 못지않게 야당의 주도권 행사도 의회 민주주의에 대한 위협이며 적신호다. 더 큰 문제는 이런 상황이 앞으로도 별로 개선될 기미가 없다는 점이다. 내년 대선에서 만약 한나라당 후보가 이겨 정권 교체가 되더라도 야당이 주도적으로 여권의 정국운영을 막는 상황은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오히려 그때 제1야당은 여당 때 자신들이 당했던 어려움을 앙갚음하려 들지도 모른다.

갈등을 재생산하는 악순환의 고리를 끊어야 할 때다. 이는 내년 대통령 선거나 정계개편보다 더 중요하고 시급한 과제다. 국가와 국민을 위해 어떻게 정치가 기능해야 하는가 하는 국가 거버넌스와 관련돼 있기 때문이다. 지금 해법을 찾아 정치권 전체가 치유에 나서지 않으면 정치인이나 국민, 국가 모두 피해자가 될 수밖에 없다.

새출발을 위한 첫걸음으로 ‘한국정치 연구그룹’(PSG)을 만들면 어떨까. 새정치(열린우리당)와 참정치(한나라당)를 기왕 추구하고 있으니 뜻을 모으는 것은 쉬워 보인다. 새 규칙과 정치문화에 대한 합의가 나오면 정치지도자들이 국민 앞에서 정치협약을 맺는 것이다.

김종철 논설위원


phillki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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