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오피니언 칼럼

[아침햇발] 대통령의 실패 / 김종철

등록 2007-01-01 17:06

 김종철 논설위원
김종철 논설위원
아침햇발
대통령 선거의 해가 밝았다. 1987년 민주항쟁으로 되찾은 뒤 다섯번째 선거다. 연말까지 여러 우여곡절이 있겠지만, 지금 거론되는 여러 인물 가운데 한 사람이 나라의 최고 통치자인 대통령으로 선택될 것이라는 사실 하나만은 분명하다. 20년 전만 해도 날짜가 정해져도 정말 선거가 있을지, ‘어른’이 점지한 새 후계자가 깜짝 나타나지 않을지 등등 모든 게 늘 조마조마했던 데 비하면 엄청난 발전이다.

이제 국민들은 대선을 일종의 정치 게임으로 보면서 느긋하게 즐기고 있다. 부정선거나 선거 폭력 등 후진적인 풍경은 거의 사라졌으며, ‘누구는 절대 안 된다’는 거부정서도 찾기 어렵다. 민주주의가 제도나 국민 의식에 이처럼 빨리 안착한 사례는 세계사적으로도 드물다.

그러나 87년 이후 합법적이고 정통성 있는 정부를 이끌었던 전·현직 대통령 네 사람은 모두 실패한 대통령으로 평가받는다. 권위주의에서 민주주의로 넘어가는 과도기를 담당했던 노태우 전 대통령을 비롯해 최초의 문민 시대를 열었던 김영삼 전 대통령, 역사적인 첫 정권교체를 이뤘던 김대중 전 대통령은 모두 화려한 등장과는 반대로 막판에 사실상 식물 대통령으로 전락했으며, 지금도 국민들한테 손가락질을 받고 있다. 노무현 대통령도 예외가 아니다. 그는 전임자들과 달리 권력형 비리가 없었음에도 훨씬 빠른 레임덕을 맞았다. 스스로 표현한 ‘동네북’ 처지를 남은 1년 동안 탈출할 가능성도 적어 보인다. 나중에 역사적인 평가는 달라지겠지만, 지금으로서는 참혹한 성적표다.

대통령의 실패는 본인뿐 아니라 나라를 봐서도 매우 불행하다. 문제는 이러한 실패가 민주화 이후 20년 동안 계속되고 있다는 점이다. 물론 상당한 원인이 대통령 본인의 능력과 자질 부족에서 비롯됐을 터이다. 결단력이 부족한 리더십과 비리·부패 구조에 물든 통치(노태우 전 대통령), 남의 머리에 의존한 무능과 철학 부재(김영삼 전 대통령), 폐쇄적이고 권위적인 리더십(김대중 전 대통령), 품위 없는 언행과 갈등형 리더십(노무현 대통령)은 각 정권을 추락시킨 직접적인 이유였다.

하지만, 지난 20년의 역사는 정권의 실패를 대통령 리더십에만 돌릴 수 없다는 것을 웅변한다. 부드러움과 강함, 통합형과 권위도전형, 엘리트 선호와 대중 선호 등 다양한 리더십을 번갈아 선택했지만, 그 결과는 어김없이 통치의 난맥과 좌절로 결말지어졌기 때문이다. 사실 완벽한 리더십이란 없다. 다만 그 시대, 그 사회가 원하는 최선의 리더십을 국민들이 선택할 뿐이다.

그렇다면 대통령의 잇따른 실패는 현재의 정치제도가 지닌 구조적인 요인에서 나온다고 봐야 하지 않을까. 87년 이후 거의 매번 나타나는 분점 정부(대통령 소속 정당과 의회 다수당이 다른 것)와 이로 말미암은 대통령과 국회의 지속적이고 감정적인 대립, 국회의 잦은 교착 상태는 대통령과 관계없이 나타나고 있다. 대통령제와 내각제적인 요소가 엉거주춤하게 결합된데다 취약한 정당제도 때문이라는 점이 학문적으로 잇따라 밝혀지고 있다. 또 대통령 단임제가 5년 간 책임정치를 뒷받침하기보다는 차기가 없는 대통령의 빠른 레임덕을 부르는 데 더 기여한다는 사실도 드러났다. 독재자가 출현할 가능성을 최대한 막으면서 각 정치세력 간의 이해를 절충하는 선에서 급하게 만든 이른바 ‘87년 헌정 체제’의 결과다. 5년 뒤 다음 대통령이 성공하고, 민주주의가 한 단계 더 전진하도록 하려면 이런 근본적인 문제에 대한 해결책이 이번 대선 과정에서 논의돼야 한다.

김종철 논설위원

phillkim@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오피니언 많이 보는 기사

윤석열이 연 파시즘의 문, 어떻게 할 것인가? [신진욱의 시선] 1.

윤석열이 연 파시즘의 문, 어떻게 할 것인가? [신진욱의 시선]

“공부 많이 헌 것들이 도둑놈 되드라” [이광이 잡념잡상] 2.

“공부 많이 헌 것들이 도둑놈 되드라” [이광이 잡념잡상]

‘단전·단수 쪽지’는 이상민이 봤는데, 소방청장은 어떻게 알았나? 3.

‘단전·단수 쪽지’는 이상민이 봤는데, 소방청장은 어떻게 알았나?

극우 포퓰리즘이 몰려온다 [홍성수 칼럼] 4.

극우 포퓰리즘이 몰려온다 [홍성수 칼럼]

‘영혼의 눈’이 썩으면 뇌도 썩는다 5.

‘영혼의 눈’이 썩으면 뇌도 썩는다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