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철 논설위원
아침햇발
지난번 ‘아침햇발’에서 열린우리당 사람들한테 ‘한나라당에서 배워라’고 썼더니 비유가 탐탁잖다고 지적하는 독자들이 적잖았다. ‘한나라당도 지난 두 차례의 대선 이후 상당한 어려움을 겪었지만 당 간판을 바꾸거나 쪼개지 않고 나름대로 반성하고 때를 기다리니까 결국 다시 지지율이 오르지 않았느냐. 인기 없다고 스스로 만든 당을 뛰쳐나가거나 깨자는 것은 명분이 없다.’는 글의 논지를 부정해서가 아니었다. 한나라당한테 과연 진정으로 배울 만한 게 있느냐, 이제 더는 이른바 수구 꼴통이 아니라고 할 수 있느냐는 본질적인 물음이었다.
누구도 답하기 참 어려운 질문이다. 끊임없이 터져 나오는 공천비리와 부패 연루 사건, 성추문 등을 보면 여전히 낡은 정치집단에서 벗어나지 못한 것 같고, 반면에 지방선거 돈 공천 의혹을 스스로 사법당국에 고발하는 것 등을 보면 많이 변한 것 같기도 하다. 종합부동산세 시행을 두고 세금폭탄이니 뭐니 하면서 반대할 때는 소수 기득권층만 대변하는 것 같고, 반값 아파트와 반값 등록금제를 앞장서 외칠 때는 서민의 대변자 같다. 또 대북 지원을 퍼주기라고 공격하거나 남북 정상회담 추진에 무조건 반대하는 것에서는 냉전적인 반공주의자의 냄새가 물씬 나기도 하고, 평양(박근혜 전 대표)과 개성공단(이명박 전 서울시장)을 방문하는 것에서는 미래지향적인 평화공존 분위기도 없지 않다.
공화당부터 민정당, 민자당에서 이어져 내려오는 낡은 세력과 92년 이후 총선 등 계기가 있을 때마다 수혈한 새 세력이 섞여 있는 탓이다. 이런 헷갈림과 뒤섞임이 낡은 것에서 새 것으로 변해가는 과정에서 겪는 진통이라면 그래도 좀 낫다. 그러나 발전을 위한 진통인지, 단순한 정체 내지는 후퇴의 결과인지는 솔직히 자신이 없다. 당내 색깔론 제기 등 최근의 퇴행적 행태가 올드라이트가 아니라 새로 들어온 젊은 신보수들이 주도하는 것을 보면 더 그렇다.
“친북좌파와 다를 바 없는 열린우리당 2중대”라며 고진화 의원 등을 색깔론으로 먼저 공격한 것은 뉴라이트 진영에서 데려온 유석춘 참정치운동본부 공동본부장이었다. 젊은 여성 정치인인 전여옥 최고위원도 한몫 거들었다. 원조 보수격인 김용갑 의원도 가세하긴 했지만, 색깔론 공격의 선봉은 ‘참정치’ 책임자와 당의 젊은 지도부였다.
더구나 이들은 어느날 갑자기 색깔론을 제기한 게 아니다. 둘 다 준비된 우익이다. 유 본부장은 대학교수 시절부터 극우적인 생각을 끊임없이 드러내 왔다. 전 최고위원은 “6·15 남북 공동성명이 6·15 사변”이라는 소수 반북 대결주의자들의 ‘애국’ 장외집회에 단골연사로 참석해 ‘정통 우익’들에게 인기가 높다. 이런 소신 덕에 이들은 참정치본부장에 영입되고 최고위원에 뽑힌 셈이다. 목소리가 클 수밖에 없다. 지난해 김용갑 의원의 ‘광주 해방구’ 발언 때 호남표 떨어진다며 당 윤리위에 제소하는 등 당에서 법석을 떨던 것과 달리 이번에는 공격받은 당사자 말고는 아무도 제동을 걸지 않는다.
개혁세력이 중심이 된 참여정부의 실패를 보면서 많은 국민들이 ‘꿩 잡는 게 매지 한나라당이면 어때?’라는 생각을 하는 것 같다. 한나라당의 지지율이 40%대를 지나 50%를 넘나드는 까닭이다. 여기에는 한나라당이 개혁정당까지는 아니더라도 상식을 가진 건강한 보수정당이 됐을 거라는 막연한 믿음이 깔려 있다. 건강한 보수는 폐쇄가 아닌 개방, 대결이 아닌 평화, 수구가 아닌 미래를 추구한다. 한나라당이 그런가. ‘수권 야당’ 스스로 묻고 답해야 한다. 그것은 국민의 높은 지지율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이자 책무다.
김종철 논설위원 phillki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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