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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아침햇발] 경제 위기는 올 수도 있다 / 정남구

등록 2007-03-26 17:47

정남구 논설위원
정남구 논설위원
아침햇발
돌이켜 보면 우리 경제가 가장 활기 있었던 건 1980년대 후반이었다. 한국개발연구원 분석 결과를 보면, 85~90년 사이 실질 국민소득의 연평균 증가율은 9.9%나 됐다. 물론 낮은 국제금리, 엔 강세-달러 약세, 저유가라는 이른바 ‘3저 호황’이 큰 도움이 됐다. 하지만 기업들의 적극적인 투자와 이를 뒷받침한 노동력의 공급 증가가 고성장을 이끈 핵심이다. 여기에다 규모의 경제 효과도 아직 살아 있었고, 기술 진보도 큰 몫을 했다. 그 무렵 민주화와 함께, 노동자들의 삶의 질도 빠르게 개선됐다.

외환위기 전후인 95~2000년, 국민소득 증가율은 4%로 떨어졌다. 무엇이 달라졌는가? 노동인구 증가율이 떨어진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다. 기술진보의 성장 기여도는 변함이 없었다. 그런데 규모의 경제 효과는 희미해지고, 기업 투자가 줄어든 게 달라진 점이다. 재벌의 덩치 키우기식 투자가 성장동력으로서 생명을 다한 시대를 맞은 것이다.

2000년 이후 6년 동안 우리 경제의 활기는 더 떨어져, 실질 국민소득 증가율이 3.1%로 주저앉았다. 그런데 그 사이 어떤 일이 벌어졌던가. 기업 수익이 폭증한 것이 가장 두드러진다. 외환위기로부터 조금 회복된 99년 이후 5년 동안 비금융법인의 수익은 무려 103% 늘었다. 은행 등 금융법인의 수익도 98% 늘었다. 같은 기간 명목 국민소득이 36% 늘어난 것에 견주면 놀랍다. ‘기업하기 어려운 나라’라는 기업들의 항변은 현실과 한참 달랐다.

기업들이 잔치를 벌이는 동안 노동자와 자영업자들은 고행의 세월을 보냈다. 임금 근로자 한 사람당 ‘임금 및 급여’는 같은 기간 31% 늘었을 뿐이다. 자영업자의 소득은 겨우 7% 늘어나는 데 그쳤고, 특히 영세 자영업자들에게 돌아간 몫은 4%가 줄어들기까지 했다. 가계소득이 줄어든 것은 저금리와도 관련이 있다. 가계의 이자소득은 줄었으나, 집을 사느라 가계가 부채를 늘리면서 이자부담은 커졌다. 이자 수입에서 지출을 뺀 가계의 순이자 수입은 99년 30조원에서 2004년 18조원으로 12조원이나 줄었다. 반면, 돈을 빌려쓰는 기업들의 이자 부담은 크게 줄었다.

삼성 이건희 회장이 얼마 전 “4~5년 뒤 경제위기가 올 수 있다”고 말한 것이 여러 말을 낳고 있다. 놀랄 것 없다. 최근 기업 수익이 줄어들고 있는 것이 이번 위기론의 뿌리다. 비금융법인의 수익은 2005년 1.47% 줄었고, 지난해엔 8%나 줄었다. 몇 해 동안의 수익 잔치에 길들어 있던 기업들이 엄살을 부리는 것뿐이다. 고임금을 탓하는 소리가 또 나오는 것도 예상할 수 있는 일이었다. 물론 근거가 없다. 임금근로자 1인당 임금은 2005년에 3.45%, 작년에 2.99% 늘어, 소비자 물가 상승률을 겨우 웃돌았을 뿐이다.

기업들은 ‘먼저 기업이 돈을 벌어야 투자가 살아나고, 고용도 늘고, 경제성장도 할 수 있다’고 주장해 왔다. 그런데 기업들이 많은 돈을 벌었음에도 경제의 선순환은 왜 일어나지 않는가? 기업들이 고용 및 임금조정으로 쉽게 돈을 버는 데 중독돼 있기 때문이다. 수익을 내는 데 시간이 걸리고 위험이 따르는 투자에 적극 나설 이유가 없었던 것이다. 재벌들은 출자총액 제한제도 같은 규제를 탓하지만 재벌의 영토 확장이 경제성장에 도움이 되는 시대는 지났다. 고용을 줄이고 임금을 낮추는 것도 내수소비에 부메랑이 될 뿐이다. 임금을 줄여서 수익을 키울 수 있다는 향수에 젖어 있는 건 기업들이다. 기업들이 그 향수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면, 경제위기는 진짜 올 수도 있다.

정남구 논설위원

jej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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