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남구 논설위원
아침햇발
마크 트웨인이 그랬던가? “거짓은 진실이 신발을 신기도 전에 지구를 반 바퀴나 돌 수 있다”고. 최근 몇몇 신문과 인터넷 매체가 보도한 ‘초등생 2.5% 성경험’ 기사는 그의 말이 틀리지 않다는 것을 보여주는 본보기가 될 듯하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얼토당토않은 오보다.
이 기사는 〈세계일보〉가 4월11일치에 “초등생 2.5% ‘성관계 경험’, 4~6학년 조사 … 중학생보다 높아”란 제목으로 처음 보도했다. 포털 사이트에 올라온 기사에는 [단독]이란 표시까지 붙어, 누리꾼들의 호기심을 자극했다. 이튿날 〈조선일보〉도 “초중고생 47% ‘음란물 본 적 있다’”를 제목으로, “1062명 대상 조사 … 초등생 2.5% ‘성경험 있다’”를 부제로 뽑아 같은 사안을 보도했다.
언론 보도는 건강사회를 위한 보건교육연구회(건사연) 등이 11일 열린 한 토론회에 맞춰 낸 보도자료를 인용한 것이다. 건사연 등은 초등 4~6학년생, 중학생, 고등학생 등 모두 1062명을 대상으로 자기 기입식 설문조사를 해, 한길리서치에 넘겨 분석한 결과라고 밝혔다. 보도자료는 “이성 친구와 성관계 해 봤다 3.1%”, “초등학생의 경우에도 무려 2.5%에 이르렀다”고 돼 있어 이것만 보면 기사가 맞는 것처럼 보인다.
그런데, 보도자료는 허점투성이다. 초등학생 표본 수가 몇인지, 각 질문에 대한 응답자가 몇인지가 없다. 신뢰수준 설명도 없다. 검증이 필요한 자료였다. 한길리서치의 원자료를 보면, 의문이 조금은 풀린다. 우선 초등 고학년생이라지만, 표본은 4학년이 4명, 5학년이 49명, 6학년이 288명이다. 초등 고학년이라기보다 6학년 이야기다. 그렇다고 해도 내용이 쉬 믿기지 않는다. 이성 친구와 어느 정도까지 신체접촉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느냐는 물음에 ‘성관계까지 가능하다’는 대답은 6학년 응답자 237명 가운데 0.9%(2명)뿐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초등생 성경험 2.5%’의 진실은 무엇일까? 이성 친구와 손잡기 등의 신체접촉을 해 봤다는 초등생은 56명이었다. 그 가운데 ‘성경험이 있다’고 대답한 비율이 2.5%라는 게 진실이다. 조사대상 초등생 가운데 딱 2명, 지역별 가중치를 적용해 1.4명 가량이 그런 대답을 했을 뿐이다. 표본 전체로 보면, 초등생 가운데 성경험이 있다고 대답한 비율은 0.3%에 불과하다. 그것이 “(전체) 초등학생 2.5%가 성경험”으로 둔갑한 게 사태의 전말이다. 중학생, 고등학생의 경우도 언론에 보도된 수치가 잘못됐음은 물론이다.
리서치 회사 쪽도 오해를 낳게 한 책임이 있다. 한길리서치가 건사연에 보낸 ‘성관계 장소’에 대한 분석 결과를 보면, 초등학생 가운데 성경험이 있다고 대답한 사람이 341명 중 13명(3.8%)으로 돼 있다. 특히 5학년은 49명 중 4명으로, 비율을 계산하면 8.2%라는 어이없는 수치가 된다. 한길리서치 쪽은 “뭔가 오류가 있었던 것 같다”고 밝혔다.
건사연은 “학생들의 건강문제에 효과적으로 대처하려면 보건교과 설치로 체계적인 보건교육을 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는 것을 설득하려고 이 조사를 했다. 그런 목적의식이 너무 앞서 조사결과를 잘못 읽었을 것이다. 검증 없이, 선정적인 내용만 앞세운 언론도 진실을 호도하는 데 일조했다. ‘통계는 새빨간 거짓말’이란 소리가 나오게 되는 것은 대개 이런 일 때문이다. 한-미 자유무역협정이 가져올 이득에 대한 장밋빛 통계들이 요즘 넘쳐난다. 그것들은 그대로 믿어도 될지, 생각해 보는 계기로 삼아야겠다.
정남구 논설위원
jej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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