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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아침햇발] 노 대통령과 헤어지는 이들에게 / 정남구

등록 2007-05-10 18:30

정남구 논설위원
정남구 논설위원
아침햇발
노무현 대통령이 우리 경제를 망쳤다고 누군가 비판한다면 그는 참 억울할 것이다. 나도 기꺼이 몇 가지는 변호할 수 있다. 우선 참여정부 초기인 2003~2004년 극심한 내수침체는 김대중 정부 시절 신용카드 버블의 후폭풍이었지 그의 탓이 아니다. 신용카드 소비 급증으로 2001년 3.8%이던 성장률은 2002년 7.0%로 높아졌다. 그것이 정권 재창출을 위한 무리수였다고 해도, 노 대통령에게 책임을 묻기는 어렵다.

최근 몇 해 동안 국민총소득(GNI) 증가율이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을 크게 밑돌아 체감경기가 아주 나빴던 것도 그의 탓만은 아니다. 누가 대통령이었든 국제유가 급등을 막을 순 없었다. 외국인들이 우리나라에서 많은 돈을 벌어가는 것도, 외환위기 이후 몇 해 동안 은행을 포함한 우량기업 주식을 그들이 헐값에 살 수 있게 해준 데서 비롯했다.

집없는 이들의 가슴에 피멍이 들게 한 집값 급등도 세계적인 유동성 과잉, 김대중 정부 시절의 주택경기 부양정책에 뿌리가 있다. 물론 그 관성을 참여정부가 과소평가한 것은 잘못이다. 초기 대응 실패는 집값 상승을 더 부채질했다. 어쨌든 이 부분은 노 대통령 스스로도 잘못을 인정했다. 거센 비판을 감수하며 보유세를 강화하는 등 주택관련 제도를 재정비한 점도 평가해야 공정하다.

노 대통령이 옛 지지자들에게 손가락질 받는 이유는 따로 있다. 양극화, 빈곤화로 가는 흐름을 방치한 것이다. 요컨대 국민의 정부의 자산만 승계하고 부채는 나몰라라 한 것이다. 참여정부 4년 동안 비정규직 노동자는 쉼없이 늘었고, 계층 간 소득격차는 더 커졌다. 자영업자는 가게 문을 닫느라 바빴다. 청년실업도 여전하다. 그것이 시장의 효율성을 살리는 과정에서 생겨나는 어쩔 수 없는 부작용이라면, 사회적 안전망을 더 확충하고 복지 지출을 늘려 뒷감당이라도 해야 하는데, 거꾸로 가기까지 했다. 소득세와 법인세를 낮춰 부자들의 세금은 깎아줬다. 신용불량자들은 고리대금업자의 먹잇감이 되게 놔뒀다. 한때 원내 과반수 의석을 가졌으니 힘이 없었다고 변명할 수는 없을 것이다. 코스피지수가 1000 넘게 올랐지만, 가계로 가야 할 몫이 기업으로 집중된 까닭이 크니, 자랑할 일만은 아니다.

노 대통령이 내민 마지막 카드가 낡은 수출지상주의인 것은 차라리 희극이다. 지난해까지 참여정부 4년 동안 우리나라 수출은 연평균 19%나 늘었다. 4년 만에 두배가 늘어났으니, 실로 폭발적인 증가다. 하지만 서민의 삶은 더 어려워지기만 했다. 그럼에도 노 대통령은 동시다발적인 자유무역협정 확대로 수출을 늘리면 된다는 식의 위험한 처방에 ‘올인’ 한다. 수출 대기업과 외국인 투자가들은 환영할 일이나, 과속 개방의 융단폭격은 양극화, 빈곤화를 한층 심화시킬 것이다. 소비자들은 좀더 싼값에 외국 물건을 살 수 있겠지만, 일자리를 잃거나 임금이 줄면 무슨 소용인가.

경제문제 해결에는 만병통치약이 없다. 또 어떤 정책이든 효과를 내는 데는 꽤 시간이 걸린다. 지금 우리에게 절실한 것은 성장과 분배의 극심한 불균형을 고쳐나가는 것이 무엇보다 시급하다는 공감이다. 경제주체들이 사람에 투자하는 일의 중요성을 깨닫는 게 시작이다. 노 대통령의 인기가 땅에 떨어지자 그와 결별하는 옛 동지들이 많다. 그들이 먼저 할 일은 권력을 나눠가졌던 사람으로서 정치적 책임을 고백하고, 앞으로 추구할 정책 방향을 분명히하는 것이다. 대통령과 헤어진다고 해서, 참여정부가 국민한테 진 빚으로부터 당신들이 자유로울 순 없다.

정남구 논설위원

jej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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