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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아침햇발] 대의와 대세 사이 / 김종철

등록 2007-05-24 17:11

김종철 논설위원
김종철 논설위원
아침햇발
이른바 범 여권 통합이 또다시 관심이다. “내가 속한 조직의 대세를 거역하는 정치는 하지 않겠다”는 지난주 노무현 대통령의 광주 무등산 산상 연설 때문이다. 이 발언이 광주에서 나왔다는 점과 연설 대상자가 노사모 회원 등 주로 자신의 지지자들이었다는 점에서 여권 통합에 대한 노 대통령의 생각에 변화가 있는 것 아니냐는 관측들이 나오고 있다. 실제로 청와대 관계자 등 노 대통령 주변에서도 무등산 연설에 상당한 의미를 부여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통합과 관련한 노 대통령의 그동안 언급에 비춰 ‘대세’를 꺼낸 무등산 연설이 눈에 띄는 것은 사실이다. 그간 노 대통령은 지역주의로 돌아가는 통합 즉 민주당과의 통합에 반대한다는 일관된 견해를 보였다. 얼마 전에는 이런 자신의 ‘대의’에 따라, 열린우리당을 해체하자는 등의 주장을 한 정동영, 김근태 전 의장을 직접 공격하기도 했다.

정말 노 대통령이 대의(지역주의 반대=열린우리당 사수)에서 대세(통합) 쪽으로 방향을 선회한 걸까. 내 생각에는 아니다. 산상 연설만 보더라도 자기 나름의 ‘대의’가 노 대통령의 여전한 신념이다. 그는 “지역주의로 돌아가는 통합은 적절치 않고 그것이 대의”라고 말했다. 따라서 통합론은 “폭풍우가 몰아치면 돌아가거나 배를 잠시 피신시켜야” 하는 달갑지 않은 상황일 뿐이다. 대의와 대세를 이분법적으로 보고 있는 것이다.

이런 인식으로는 대세가 아예 형성되기 힘들다. 통합이 대의라고 한목소리로 강조해도 현실적인 지분문제 등으로 통합을 이루기란 쉽지 않다. 하물며 열린우리당의 사실상 대주주가 ‘민주당=지역주의 정당’이라는 등식을 가슴 속에 지니고 있는데 현실적인 통합세력인 민주당이 통합에 동의하겠는가. 민주당 쪽은 참여정부의 핵심세력, 즉 친노그룹은 배제해야 한다는 목소리만 더 높일 뿐이다. 이렇게 되면 무조건 통합을 주장하는 그룹의 설 자리는 없어진다. 영남에서 득표력을 가진 친노그룹을 빼고 갈 수도 없고, 그렇다고 호남 지지도가 높은 민주당을 제외해서는 통합이라고 할 수 없다. 노 대통령이나 민주당 어느 한쪽이 물러서지 않는 한 통합은 계속 지지부진하고 지리멸렬할 수밖에 없다.

그러면 왜 노 대통령은 대세론을 수용하겠다고 한 걸까. 한마디로 별 가능성이 없기 때문이 아닐까. 지금이야 친노그룹 배제론을 주장하는 박상천 민주당 대표가 안팎에서 공격을 받고 있지만, 이 문제가 어느 정도 해결되는 순간 화살은 민주당과의 통합을 반대하는 노 대통령과 직계그룹으로 날아가게 된다. 통합의 저항세력으로 비쳐 자칫 왕따를 당할 수도 있다. 대세에 따르겠다는 의사 표명은 이에 대한 사전 차단막이 될 수 있다.

오히려 나는 대세를 따른다고 했는데 당신들이 ‘질서있게’ 합의를 이뤄내지 못하지 않았느냐는 항변거리가 된다. 그렇게 되면 친노파의 독자적인 정치적 존립도 가능해진다. 질서있는 통합이 만약에 이뤄지면 따라가면 되고, 무산되면 그것대로 대의 명분을 쥐고 열린우리당을 존속시키면 된다. 그 경우 참여정부에 대한 올바른 평가를 명목으로 외곽에서 현재 세력을 키우고 있는 ‘참여정부 평가포럼’까지 합세할 수 있다. 대의 속에서의 ‘대세론 수용’이야말로 명분과 실리를 다 쥘 수 있는 카드다.

남들이야 어떻게 생각하든 노 대통령과 그의 추종자들은 친노파만 남더라도 열린우리당이 존속하면 정치적 ‘성공’이라고 생각하는 듯하다. 노 대통령의 복심인 유시민 전 보건복지부 장관은 퇴임하면서 <중앙일보>와 한 기자회견에서 “열린우리당이라는 배는 수리하면 여전히 목표를 향해 갈 수 있다”고 말했다. 노 대통령의 이런 구상이 실현될지 좌초할지 지켜볼 일이다.

김종철 논설위원phillki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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