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남구 논설위원
아침햇발
양심적 지식인과 대학생, 화이트 칼라가 중심에 선 1987년 6월 항쟁은 우리 현대사에 26년 동안 이어진 군인권력 시대를 끝장냈다. 그것은 마치 주기적인 쿠데타로 권력을 움켜쥔 조선의 훈구세력을 선비들이 밀어내고, ‘이성의 정치’ 시대를 연 것과 비슷하다.
그러나 권력 관계의 큰그림은 그리 쉽게 바뀌지 않는 법이다. 사림의 집권기에도 소수 양반 엘리트가 권력을 독점했듯, 돈과 지연·학연으로 맺어진 소수 엘리트에게 권력이 집중돼 있기는 지금도 마찬가지다. 정책 차이보다는 출신지와 학맥을 시멘트로 하여 만들어진 정당들의 권력다툼은 조선말 붕당정치 수준을 크게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결선투표 없는 대통령제와 소선거구 국회의원 선출제도는 지역주의를 구조화해, 정권변화가 집권 지역기반 변화 이상의 큰 의미를 주지 못했다.
물론 6월 항쟁 이후 달라진 점이 분명히 있다. 상장사 지분을 40% 가까이 가진 외국자본이 권력 핵심에 보이지 않게 똬리를 튼 것이 그 하나다. 재벌과 관료, 독점 언론이 여전히 권력 핵심을 차지하고 있지만, 일부 주변부 엘리트들이 권력 배분에 참가할 수 있게 된 것도 달라진 점이다.
외환위기를 거치고 살아남은 재벌기업과 금융기관의 정규직 노동자들은 6월 항쟁의 대표적인 수혜자라 할 만하다. 그들에겐 ‘노조’라는 아직 쓸만한 무기가 있다. 안정된 고용에다 김대중 정부 들어 처우가 개선된 교사를 포함한 공무원, 공기업 직원들도 비슷하다. 민주주의의 진척임엔 틀림없다. 하지만 그들뿐이다. 그 밖의 사람 대부분에게 외환위기 10년은 재앙일 뿐이었다.
땅이라는 기댈 언덕이 있고, 상대적으로 지원을 많이 받는 농민은 그나마 나은 편이다. 지역구 중심의 국회 구성이 농민들에게는 조금 도움이 됐다. 하지만, 청년 실업자와 반실업자들, 대책없이 밀려난 고령자들, 기업이 언제든 부품 바꾸듯 버릴 수 있는 단순 노무직의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그야말로 ‘저주받은 자들’이 되었다. 시장의 힘은 독재권력만큼이나 광폭했으나, 그들에게 경쟁에 참여할 수 있는 기회를 공평하게 주고, 응분의 보상을 받게 할 제도적 장치는 거의 발전하지 못했다. 아무도 그 비용을 치르려하지 않았고, 비용을 분담하게 할 어떤 힘도 조직되지 못한 탓이다.
‘바보’ 노무현을 대통령으로 만들고, 탄핵으로부터 지킨 것은 6월이 남긴 마지막 불꽃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노 대통령은 이미 갈라진 ‘노조’와 ‘저주받은 자들’을 하나로 묶지는 못했다. 그는 재벌, 고위관료, 외국자본의 특권을 깎아내는 것을 일찌감치 포기했다. 독점 언론과의 싸움은 정치적 수사에 가까웠다. 특권 세력 대신, 그가 노조를 싸움 상대로 삼으면서 6월의 상속자들은 마침내 뿔뿔이 흩어졌다. 노조는 적이 되었고, 저주받은 자들은 도리어 고성장 시대의 향수에 젖어들었다. 갈 곳 없어진 노 대통령은 ‘지역주의와 싸운 정치인’이란 이름을 밑천 삼아, 또 하나의 작은 지역기반을 만들고자 기웃거리기도 했다.
진보의 힘은 연대에서 나오지만, 연대는 품앗이가 아니다. 자신보다 핍박받는 이들을 위해 기꺼이 자기 이익을 일부 희생할 줄 아는 이들만이 희망있는 연대를 만들 수 있다. 모두가 자신의 이득에만 목을 맬 때, 진보는 뒷걸음질을 친다. 희망은 지금 아득하다. 역사의 물줄기는 바야흐로 바뀌려하고 있다. 6월 항쟁 스무돌을 앞둔 지금, 김광규 시인이 4·19 혁명 18년 뒤에 쓴 <희미한 옛사랑의 그림자>가 자꾸만 귓가에 맴돈다. “부끄럽지 않은가, 부끄럽지 않은가 ….”
정남구 논설위원jej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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