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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삶의창] 6월 항쟁과 대선 / 임범

등록 2007-06-15 18:09수정 2007-06-21 13:52

임범/영화 프로듀서
임범/영화 프로듀서
삶의창
<밀양>의 이창동 감독이 <박하사탕>을 만든 직후인 1999년에 이런 말을 했다.

“(70~90년대 우리 현대사에 대한 느낌도 <박하사탕>의 주인공인 영호의 내면과 같은가’라는 질문에) 한 개인 내면의 변화가 같은 기간 한국사회의 변화와 일치한다는 생각을 했다. 지금은 70년대 말보다 지혜도 늘고, 풍족해졌다. 그러나 많은 것을 잃었다. 옳지 않은 것에 분노하면 썰렁해진다. 그런 분위기에서 2000년을 말한다. 옛날에는 분명히 나쁜 것이 있어서 옳은 게 있었다. 지금은 옳은 것도, 나쁜 것도 없다.”

이 말은 ‘옛날에 있었던 나쁜 것’ 즉 적에 대한 분노가 아니라 ‘옳았던’ 우리, 혹은 옳은 것도 나쁜 것도 없는 지금의 공동체에 대한 자조의 표현에 가까웠다. 그런 그에게, 2002년 대선 당시 노무현 후보는 공동체에 대한 희망을 다시 살려놓았던 것 같다. 노 후보 지지 활동을 했고, 당선 뒤엔 문화부 장관도 맡았다. 그 경험이 공동체에 대한 그의 생각에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 알기 힘들지만, 영화감독으로 돌아와 만든 <밀양>에서 ‘밀양’이라는 소도시 공동체는 아들 잃은 신애의 고통 앞에 무기력하거나 무심하다.

6월 항쟁 20돌을 맞아 언론들이 특집 기사를 내놓고 있다. “제도 면에서 민주주의는 발전했으나 분배 면에선 여전히 많은 숙제를 남기고 있다”는 기사들의 결론은 맞는 말이고, 그런 점에서 확실히 발전은 있다. 그러나 그 20년을 돌이켜 볼 때 우리 공동체가 희망적이냐고 누가 내게 묻는다면, ‘예’라고 답하지는 못하겠다. 원칙과 명분을 중시하고, 그걸로 공과 사를 구분하는 태도는 퇴보해서 나아지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고 할까.

그런데 6월 항쟁은 10돌, 20돌 등으로 주기를 나눠 돌이켜 볼 때마다 특수한 사정이 따라붙는다. 바로 대통령 선거다. 87년 6월 항쟁 직후 대통령 임기를 5년제 단임으로 정해 개헌을 하고 선거를 했으니, 5년 단위로 되새겨 보려 할 때마다 바로 몇 달 뒤에 대선이 다가와 있게 된다. 그래서 6월 항쟁을 기념하는 기사뿐 아니라 토론회도 곧 있을 대선 구도에 대한 언급으로 이어진다. 그 때문일까. 아니, 꼭 그런 기념행사들이 아니더라도 87년 이후로 공동체에 대한 희망을 대선에 거는 태도들이 계속 있어 왔던 것 같다.

하지만 87년 이후 많은 이들을 실망시켜온 게 바로 대통령 선거이기도 했다. 87년, 92년, 97년 대선 때마다 같은 편끼리 싸우고 적과 동침하는 일이 되풀이됐다. 원칙과 명분이 훼손돼온 것도 이런 일들을 통해서였다. 옛 ‘민주세력’은 공중 분해돼 이 당, 저 당으로 흩어져 들어갔다. 그래도 야합과 반목은 전술적으로 용인이 되는 듯했다. 훌륭한 대통령을 뽑으면 6월 항쟁의 염원을 최대한 근사치로 이룰 수 있을 거라는 기대감 때문이다. 노무현 후보는 이렇다 할 야합도 없이 그 기대감에 힘입어 당선됐다. 그러나 이라크 파병, 한-미 자유무역협정 체결 등은 최소한 그 기대감과는 거리가 있는 것이었다.

대통령은 매우 중요한 자리고, 선거는 민주주의의 꽃이 분명하다. 그러나 이라크 파병에서 보듯 대통령이 할 수 있는 일에도 한계가 있다. 또 그는 견제받아야 할 1순위 권력자다. 나로선 더는 공동체의 희망을 대통령에게 걸고 싶지 않다. 누가 대통령이 되더라도 민주주의를 담보하는 시민사회의 기제들이 제 기능을 할 수 있도록 하는 게 더 중요해 보인다. 다가오는 2012년, 6월 항쟁 25돌 때엔 언론, 검찰, 경찰, 금감원, 시민단체 등 민주주의를 지탱할 견제 장치들이 제대로 작동하는지, 과거에 비해 얼마나 나아졌고 지금 걸림돌은 뭔지를 짚어보는 행사들이 많았으면 좋겠다.

임범/영화 프로듀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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