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수정 / 르포작가
삶의창
우연히 한 사람과 이야기를 나누었다. 여자는 길가 의자에 앉아 있었다. 생활임금 쟁취를 위한 선전과 증언을 한다는 기사를 인터넷 신문에서 읽고 나갔던 터다. 누군가 ‘말’을 한다는데 듣는 이도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행사를 준비하는 사람들이 보이지 않아 여자 옆에 앉았다. 누굴 기다리지도, 잠시 쉬는 것도 아닌 모습에 마음이 가 말을 건넸다. 금세 오랜만에 만난 친구가 되었다.
열일곱에 노동자가 되어 서른 뒷줄에 선 여자는 주로 봉제공장에서 일했고, 일거리가 없을 땐 식당에 나갔다. 얼마 전만 해도 봉제공장 노동자였다. 열댓 명이 일하는 공장에서 혼자 완성 일을 맡았다. 실밥을 다 땄는지, 때가 묻었는지, 단추와 라벨이 잘 달렸는지, 땀수가 고르게 박음질됐는지, 치수가 제대로 뽑혔는지 살피면서 불량을 골라냈다. 때 묻은 건 빨아서 늘어나지 않게 다림질 하고, 일일이 개켜 포장하고 상자에 담는 일까지가 그이 일이었다. 듣다 보니 이 분야 전문가다. 하루에 옷 천 장을 감당했다는데, 얼마나 신경을 곤두세워 일했을까. 수출 물량이라고 더 정성껏 일했지만, 불량을 너무 잘 찾아내 일자리를 잃었다.
임금은 일당제로 2만3천원. 토요일은 5시 퇴근, 국경일도 나가고, 일요일만 쉬었다. 바쁠 땐 일요일도 없지만, 일당을 더 쳐주진 않았다. 그게 전부였다. 점심도 그 돈으로 사먹어야 했다. 불가능하진 않지만, 늦게 돌아와 한숨 자고 다시 일 나가는 처지에 날마다 도시락을 챙기는 건 쉽지 않다.
한 달 받는 돈을 따져보니, 26일로 치면 59만8천원, 하루도 안 쉬고 일해야 69만원이다. 그마저 밀리는 일이 잦았다. 아직 두 달치 임금을 못 받았다. 이 달 안에 준다는 말만 믿고 기다린다. 사장도 돈에 쪼들리더라고 여자는 이해해 준다. 참, 누가 누굴 이해해 주어야 하는지.
올해 최저임금은 시급 3480원, 일급 2만7840원이다. 월 72만원 조금 넘는다. 한 달이 며칠 더 늘어나지 않는 한 여자는 최저임금을 손에 쥘 수 없다. 법으로 보장했다지만 상관없고, 억울하게 당해도 항의하거나 구제받을 길을 모른다. 그저 다른 일자리를 찾아 정보지를 뒤적이며 전화번호를 누를 뿐.
59만원도, 69만원도, 72만원도 한 사람이 살기에는 빠듯하다. 사글세로 살면 못해도 이삼십만원은 나가고, 공과금이 적게 나와도 몇 가지 합치면 돈 10만원은 되고, 차비, 점심값, 먹을거리 따지다 보면 벌써 저 돈을 넘어선다. 아파도 안 되고, 문화는 접근 금지다. 학교 다니는 아이가 있다면 어찌 해 볼 도리가 없다. 급식비라도 제때 챙겨주면 다행이다. 50% 깎아주는 얼음과자 하나 사주는 일도 바들바들 떨어야 할지도 모른다. 몇 킬로 안 되는 쌀을 팔아 품에 안고 오면서 눈물겹게 삶에 고마워해야 할는지도….
그래서 여자는 어린 아들과 떨어졌다. 남편과 사별하고, 일자리도, 돈도 불안정해 당분간 시어머니가 맡았다. 한 사람이 아무리 갖은 애를 써서 일해도 새싹처럼 파릇파릇 자라나는 아이 하나 먹이고 입히고 재우고 가르치며 함께 살 수 없는 세상이라면, 그 세상은 거짓이다.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생활임금기획단 사람들이 와서 지나가는 이들한테 전단을 나누어주었다. 두 장을 얻어 하나씩 가졌다. 2008년 최저임금은 월 93만6320원은 되어야 한다고 쓰여 있다. 물론 사용자 쪽은 ‘동결’을 주장한다.
두 시간 넘게 여자한테 들은 ‘말’은 지나간 시절 이야기도, 특별한 소수가 겪는 이야기도 아니다. 대다수 저임금 노동자가 처한 절박한 오늘이다. 박수정/르포작가
두 시간 넘게 여자한테 들은 ‘말’은 지나간 시절 이야기도, 특별한 소수가 겪는 이야기도 아니다. 대다수 저임금 노동자가 처한 절박한 오늘이다. 박수정/르포작가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